key word 11 융합·컬래버레이션
최근 수년간 기술과 기업 경영 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융합’이다. 유선과 무선의 융합, 인터넷과 통신의 융합, 방송과 통신의 융합, 이종 산업 간의 융합 등 어딜 가도 융합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통합적인 접근을 하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 파악조차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스마트 그리드만 해도 전자회사에서 건설 업체까지 수십 개 업종의 기업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추진한다.융합이 대세로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견줘 사회는 엄청나게 풍요해졌지만 소비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좀 더 새롭고 좀 더 편리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러한 수요를 따라잡으려면 다양한 산업 분야의 융합이 필수다. 예술과 기업의 만남도 확산
컬래버레이션(협업)은 이처럼 거센 융합 흐름에 대한 대응책이다. 기업들은 다양한 업체들과 열린 협업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융합이 가장 먼저 화두로 떠오른 곳은 정보기술(IT) 분야다. IT가 여러 제조업과 융합하면서 대한민국 산업의 지형도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 산업은 ‘스마트 조선’으로, 자동차 산업은 ‘스마트카’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조선소 네트워크(SAN)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중공업은 SAN을 앞세워 2011년 77척의 선박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SAN은 네트워크를 통해 선박 내 엔진, 항법 시스템, 센서, 제어기 등 수백 개에 달하는 선박 장치를 제어하고 위성을 통해 원격으로 선박 모니터링과 제어를 가능하게 하는 조선 분야 IT 융합 솔루션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IT 융합 기술이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텔레매틱스를 통해 차량 원격 진단, 교통 흐름과 속도 모니터링, 자동 충돌 방지 등 첨단 스마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IT 융합은 비단 제조업만이 아니다. 의료와 섬유, 농업 등 거의 모든 산업군에서 IT 융합이 확산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의료 영상 정보 제공 서비스, 수술용 로봇 등이 주목받는다.
소비재 분야에서는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초기에는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이나 루이비통과 손을 잡았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해외 거장들과 레이디 가가나 비욘세 같은 외국 스타들이 주를 이뤘지만 점차 국내 신진·중견 예술가들로 확산되는 추세다. 협업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자동차 업체 BMW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과 ‘아트카 컬래버레이션’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는 제프 쿤스와 협업한 ‘BMW M3 GT2’로 큰 화제를 불렀다. 싱글 몰트위스키 맥켈란도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병을 꾸미는 프로젝트를 2년에 한 번씩 진행한다. 국내에서는 하이트진로가 ‘하이트 컬렉션 스페셜 에디션’을 내놓았다. 국내 현대미술가 이동기와 최윤정·여동헌 작가의 작품을 맥주병 라벨에 인쇄한 한정판이다.
패션 업체들도 앞다퉈 유명 스타나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란셀은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협업해 ‘BB’ 백을 선보였다.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에스콰이아가 협업에 적극적이다. 이 업체는 작년 봄·여름 시즌 제품으로 강준영·김민경·김보림·황형신 등 신진 작가와 협업한 일러스트를 담은 팝 아트 쇼퍼백을 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소비재 기업들이 예술가들과 협업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를 통해 제품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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