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9일 오전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 과천 정부청사 내에 있는 각 부처 기자실에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유는 조선중앙TV·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 등 북한의 주요 매체들이 이날 오전부터 낮 12시 ‘특별방송’을 할 예정이라고 연달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들 매체는 이날 오전 10시 “오늘 12시에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특별방송이 있겠습니다”라고 첫 예고를 날린 데 이어 오전 10시 23분, 10시 30분에 특별방송을 거듭 안내했다. 조선중앙TV는 평일에는 통상 오후 5시부터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날은 오전 9시부터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재추대 등을 ‘중대방송’ 형식으로 예고한 뒤 발표해 왔다. 특별방송을 예고한 적은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전했을 때 한 차례뿐이다. 이 때문에 ‘특별방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김정일이 죽었다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기자실에 돌기 시작한 이상한 소문
결국 기자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조석 2차관과 기자단과의 오찬이 잡혀 있었는데 12시에 시작한 오찬은 12시 40분에 서둘러 끝났다. 조 차관은 그날 최대 이슈였던 알뜰주유소와 관련해선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조 차관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기자들 휴대전화로 계속해 김정일 사망과 관련된 연락들이 왔기 때문이다.
12월 19일 오후부터는 갑작스러운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전 부처가 비상 대기 태세에 들어갔다. 행정안전부는 비상근무 4호를 발령했고 이에 따라 공무원들은 예정됐던 휴가를 모두 취소했다. 과별로 최소 1명이 남아 24시간 비상근무를 시작했고 각 부처별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대응 태세를 점검했다. 24시간 비상근무 순서를 정하기 위해 각 과별로 사다리 타기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공무원과 기자들이 잡아 놓은 저녁 송년회 자리도 잇따라 취소됐다. 농림부는 12월 19일로 예정했던 송년회를 29일 점심으로 변경했고 고용부(19일)와 통상교섭본부(20일), 지경부(22일)와 공정위(22일)도 잇따라 송년회를 취소했다. 재정부도 12월 27일로 잡았던 송년회를 취소하고 26일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정일 사망으로 군과 공무원에 비상이 걸리면서 연말 관가의 경기는 썰렁하다 못해 아예 얼어붙었다. 송년 대목을 기대했던 음식점 사장들은 “김정일이 하필이면 성수기에 죽었다”며 울상이다. 정부 부처가 일제히 비상근무 지시를 내리면서 청사 주변 몇 안 되는 도시락집만 호황을 맞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행히 재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처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길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정일 사망이 발표된 지 이틀째인 12월 21일, 비상경제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강호인 재정부 차관보는 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금융시장 상황은 김정일이 죽었다고 발표된 날 당시 잠시 출렁거리다가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는 듯하다”며 “국제 금융시장도 북한 변수보다 유럽 또는 미국의 글로벌 경제 상황이 더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국내 금융시장을 보면 김정일 사망 소식 직후 일시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환율이나 주가는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전 수준으로 화복한 상태다. 외국인도 이틀 연속 순매수세를 보였다.
강 차관보는 “대북 악재에 대한 체감 리스크는 연평도나 천안함 때보다 낮다는 게 무역협회 등의 의견”이라며 “에너지 수급 불안도 없고 두바이유는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