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스트림적 사고가 필요한 때
미국에서 중소형주 투자의 대가로 불렸던 랄프 웰저는 1970년부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30년 동안 에이콘 펀드를 운용했다. 펀드 출범 시점에 1만 달러를 투자한 후 그가 은퇴할 때 돈을 찾았다면 130만 달러를 벌었을 것이다. 무려 130배의 수익이다. 웰저의 투자 아이디어 중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다운스트림(downstream)적 사고’다.다운스트림은 말 그대로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말하는데,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의 등장이나 새로운 경제 현상이 등장하면 해당 신기술이나 경제 현상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냉방기기인 에어컨의 등장을 예로 살펴보자.
1930년대까지 미국의 휴스턴·애리조나·피닉스 같은 곳들은 미국인들이 가장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여름 날씨가 몹시 무더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어컨의 등장으로 이들 지역 삶의 환경이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다.
에어컨이란 신제품의 등장으로 언뜻 보기에는 미국의 대표적 에어컨 회사인 캐리어가 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최종 승자는 이들 지역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 주택과 쇼핑센터를 지은 사람, 레스토랑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웰저의 저서 ‘작지만 강한 기업에 투자하라’에서 인용). 이머징 마켓 소비자 지갑이 열리는 방향에 주목
웰저의 다운스트림적 사고를 현시대에 적용해 보자.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흐름을 보일 트렌드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이머징 마켓의 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늘어나고 소비 성향이 높아진다. 도시화가 진척되고 삶의 질도 전반적으로 나아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등장하겠지만 이런 추세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가 있었고 1997년 말 외환위기도 발생했다. 일시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가 늘고 삶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인도·브라질과 같은 나라 사람들의 소득이 늘면서 그들의 지갑이 열리는 방향은 어디일까. 이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즉, 다운스트림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까운 예로 중국인들의 관광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울 시내 호텔들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린다. 우리나라 기업만 이런 혜택을 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KFC는 미국에서 맥도날드에 비하면 경쟁력이 없지만 중국 시장의 선전으로 실적이 좋아졌다. 세계적인 명품 업체들은 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상하이나 홍콩에 아시아 본부를 설치했다.
이런 식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접근하는 펀드 상품들이 국내에도 몇 개 출시됐고,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그레이트 컨슈머나 에셋플러스의 글로벌 리치 투게더와 같은 해외 펀드 상품이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들어진 대표적인 상품들이다. 게다가 이런 펀드들에는 상대적으로 하락장에서 강한 소비재 기업들이 포트폴리오에 편입돼 있어 변동성도 낮은 편이다.
과도한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당분간 의미 있는 성장세를 구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깊이 있는 경제 지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빚을 많이 진 사람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는 당분간 부채를 갚아 나가야 한다. 당연히 빚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선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하지만 저축률이 높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점차 생활이 안정되면 소비를 늘리기 시작한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 등의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런 큰 흐름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이머징 마켓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는 곳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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