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법정 황당 실수담

[경매] 초보자일수록 입찰표 미리 써 둬야
“2009타경 33085번 최고가 응찰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최고가 응찰자는 49억3990만 원에 응찰하신 송파구 잠실동에 사시는 김OO 씨입니다.”

엄숙하기만 한 법정에 ‘와~’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울린다. 조용했던 경매 법정이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순간이다.

이 사건의 최고가 응찰자로 지목된 김OO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49억3990만 원이라니….사연은 이렇다. 해당 아파트는 두 차례 유찰돼 감정가의 51.2%인 4억1600만 원에서 경매가 진행됐는데 김OO 씨가 ‘4억9399만 원’을 쓰려다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여 10배 가격에 응찰하게 된 것이다.

이 사례가 황당한 유머 시리즈나 거짓말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경매 법정에서 이런 사례는 더 이상 화제에 오르지도 못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경매 전문 업체 지지옥션이 최근 5년간 재경매되는 건수를 조사했더니, 매년 1만 건 이상이 낙찰 이후 다시 경매에 부쳐지고 있었다.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여 응찰

시세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주택 가격 하락에다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로 매수세가 감소하면서 처분이 어렵게 되자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채무자가 늘고 있다. 이들의 집이 경매 신청돼 경매 물건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의 발길이 경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주변에서 ‘경매가 돈 된다’는 말만 듣고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준비 없이 덤벼든 초보자들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도 갈수록 느는 것이다.

입찰표를 쓸 줄 몰라 구경 온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자신의 응찰 금액을 공개해 버리는 아주머니도 있고, 응찰하러 가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게시판 공고 내용도 보지 않은 채, 경매 절차가 취소·취하·변경된 물건에 입찰표를 제출하는 사람도 있다.

또 사건번호만 쓰고 물건번호를 기재하지 않아 단독 입찰했는데도 무효 처리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잘못 쓴 입찰표를 버리지 않고 볼펜으로 지운 뒤 수정해 제출했다가 2위 입찰자에게 낙찰의 기쁨을 고스란히 넘겨준 사례도 있다. 거의 매일 경매 법정에서 이런 실수들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매] 초보자일수록 입찰표 미리 써 둬야
취하·변경된 물건에 입찰표를 제출했거나 수정된 입찰표를 넣은 사람은 무효 처리되기 때문에 다행히 입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0’을 하나 더 쓴 사람은 유효하게 처리돼 꼼짝없이 10배의 잔금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가 6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49억3990만 원에 낙찰 받은 이 사람은 잔금을 납부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입찰 보증금으로 납부한 4160만 원은 법원에 몰수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경매 법정의 분위기에 휩쓸려 평정심을 잃어버린 데서 나온다. 사실 사람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경매 법정에선 제정신을 차리기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초보자들은 미리 법정에 가서 입찰표를 받아 작성한 후 해당 입찰일에 제출하는 것이 좋다. 꼭 당일에 입찰표를 써서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입찰표는 경매가 열리는 날에 가면 누구나 무료로 구할 수 있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투자가 경매의 첫 시작이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