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금리 그리고 환율

시장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물가 상승이 가파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물가 상승률은 작년 9월 3%를 돌파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지난 3월 4.7%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한은의 물가 관리 목표인 3±1%를 크게 초과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작년 7월 9일 첫 번째로 금리를 올린 후 네 차례나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더욱이 작년 11월부터는 두 달에 한 번꼴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물가는 당분간 잡힐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이를 두고 금리 인상을 주장해 온 일부 사람들은 한은이 물가가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면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경기가 살아나면서 소득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산되는 사과의 개수는 일정한데, 소득이 높아지면서 그것을 사먹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과 값이 오르게 되는 식이다. 소비자 측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둘째는 소비가 늘지 않더라도 생산자 측이 가격을 올리는 경우다. 공급이 줄어들거나 원가 상승 요인이 큰 경우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사과가 흉작이 들어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게 된다. 또는 사과 농사에 필요한 농약이나 비료 값이 급등하면 생산원가가 오르게 돼 사과 출하 값을 따라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 측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면 금리 인상이 효율적 대응 방법이 될 수 있다. 금리를 인상하면 자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면서 소비를 자제하게 되고, 대출이 많은 사람들은 대출이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갚느라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7월 소비자심리지수가 112를 기록한 후 매월 떨어져 올해 3월에는 98까지 급락했다. 더욱이 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올 들어 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금리 인상이 물가를 잡는 유효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나타날까. 현재의 물가 상승은 소비가 늘어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생산원가가 올라서 생긴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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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물가 급등은 생산원가 상승 때문

실제로 생산자 물가는 작년 9월 4%를 돌파한 후 지속적으로 올라 3월에는 7.3%를 기록하고 있다. 통상 생산자 물가가 오르면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가 따라 오르기 때문에 향후 물가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한다. 물론 금리를 인상하면 생산자 물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소비가 줄면 생산자 측도 원가 개선이나 이익 축소 등을 통해 공급가를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메커니즘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현재의 생산자 물가 상승은 국내 요인보다 해외 요인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3월 기준으로 국내 소비자물가는 겨우(?) 4.7%가 올랐다고 하지만 국제 유가는 같은 기간 동안 42%나 상승했고, 심지어 원면 149%, 옥수수 101% 등 작년보다 두 배 이상 오른 원자재도 있다. 한국에서 아무리 금리를 인상하고 이에 따라 소비가 위축돼도 해외에서 이미 가격이 오른 후 들어오는 원자재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물가를 잡기 힘든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나마 쓸 수 있는 금리 인상 카드도 이제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시장이 개방된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주요국의 금리 수준을 무시할 수 없다. 금리가 싼 A국과 금리가 비싼 B국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국가 간 자본 이동이 쉽다고 하면, 금리 차익을 노린 A국의 투기 자금들이 금리 차익을 노리고 B 국으로 자금이 대거 이동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연 3% 이자를 주는 A은행과 연 7%를 주는 B은행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3%를 주는 A은행에서 자금을 빼서 7%를 주는 B은행에 예금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의 금리 수준이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B은행의 자금 사정이 위태하다면 그 은행의 위험성에 따라 생각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축은행의 금리가 시중은행의 금리보다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간의 금리 차이도 마찬가지다. 국가 위험도(country risk)를 감안해 금리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나라의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하면 고금리 정책을 써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고, 그 나라의 정치·경제가 안정됐다면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심리 때문에 다소 금리가 낮아도 해외 자금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 위험도를 감안한 한국의 적정 기준금리는 어느 정도일까. 경제나 정치 상황이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2001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지난 10년간 기준금리를 살펴보면 미국이 2.3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74%로 우리나라가 1.44% 정도 높은 수준이다.

이 정도 금리 차이가 컨트리 리스크라고 그동안 시장은 판단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미 간 기준금리 차이는 2.75~3.00%에 달해 지난 10년간 평균 금리 차이의 두 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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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하면 핫머니 활개

표에 나타나 있듯이 한미 간 금리 차가 가장 많이 났던 때는 국제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9일부터 그달 27일까지 3.50%다. 그나마 보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만 이런 차이가 났던 것이다.

기준금리 차가 3.00%를 넘었던 적은 2002년 11월 6일부터 2003년 5월 13일까지 6개월, 2003년 6월 25일에서 7월 10일까지 보름간, 그리고 2008년 4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7개월 등 지난 10년간 총 1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지는 0.25~0.50%에 불과하다. 더구나 최근 신용 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려면 아직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역시 지진과 쓰나미, 원전 피해 등으로 경제 피해가 상당해 기준금리를 올릴 형편이 못 된다. 결국 이것은 올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여지가 한 차례에서 많아야 두 차례 정도밖에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판단을 무시하고 우리나라만 계속 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국제 투기 자금(hot money)이 대거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그들이 채권에 투자하든, 주식에 투자하든 상관없이 원화로 환전해야 하며 이 와중에 상당 부분의 환율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수출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바로 직결되는 것이다.

이때 만약 외환 당국이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대거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중에 있는 달러를 매집하기 위해서는 원화를 풀어야 하는데, 이는 유동성 증가로 이어지게 돼 물가 상승 압력과 함께 시중 실질금리 인하 효과를 가져온다. 결국 물가를 잡기 위해 올렸던 금리가 돌고 돌아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은 금리 인상이 아니라 환율 인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정책도 수출 기업에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섣불리 빼들 수 없는 칼이다. 결국 현재의 물가 문제는 국내 요인보다 해외 요인에 기인하므로 섣부른 대응은 오히려 화를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부나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할 때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