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매체는 연일 ‘신음하는 서민 경제’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전세난, 제2의 신용대란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와중에 한쪽에서는 유통업계와 금융업계 등에서 VVIP를 유치하기 위해 마케팅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통큰치킨’ 하나에도 몇 시간씩 긴 줄을 늘어서는 서민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VVIP 마케팅, 일명 ‘귀족 마케팅’은 이미 업계에서 ‘돈 되는’ 장사로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갈수록 마케팅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남들과 똑같기를 거부하는 부자들의 심리 때문이다. 웬만한 서비스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VVIP들을 감동시키는 마케팅이라면 어디에 적용해도 ‘통’할 수밖에 없다. 지금 귀족 마케팅을 다시 논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1%를 위한 ‘쇼’ 귀족 마케팅의 진화
귀족 마케팅이 국내에서 처음 가시화된 건 지난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시절이다. 한쪽에서는 가계가 파산하고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상류층을 위한 귀족 마케팅이 성행하는 모습이 경제 불황 속 기업들의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 모시기 경쟁이 치열한 요즘과 닮아 있었다. 서민들은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귀족 마케팅이라니, 단편적으로만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들여다보면 기업들의 생존 전략과 닿아 있다.

‘파레토 법칙’이라는 게 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가 밝혀낸 것으로 전체 인구 중 20%에 해당되는 소수의 계층이 80%의 소득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80%에 해당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20%의 소득을 나누어 갖는다는 뜻으로 일명 ‘2080 법칙’이라고 불린다.

이 ‘2080’ 비율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데 ‘20%에 해당되는 소수의 VIP 고객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뜻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들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VVIP 마케팅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VVIP를 위한 시장은 경기를 타지 않지 않아 기업은 VVIP 고객 확보와 함께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는 “귀족 마케팅은 늘 존재했지만 경기가 좋을 때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나쁠 때는 상대적으로 더 부각돼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하며 “귀족 마케팅은 경제 상황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데, 다만 사람들이 자기 상황에 따라 지각적으로 느끼는 게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귀족 마케팅은 패션·금융·건설·자동차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으며 각 분야의 VVIP들이 다른 분야와 연동되기도 한다. 즉 명품 패션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이 금융권에서도 VIP로 대접받고 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또는 주택)에 거주하며 고가의 자동차를 타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명품 백 하나를 갖기 위해 ‘명품계’를 하는 젊은 층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들을 VVIP 고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1%를 위한 ‘쇼’ 귀족 마케팅의 진화
귀족 마케팅은 기업의 생존 전략

귀족 마케팅은 유통업계에서 가장 치열하다. 최근 백화점 업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 해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는 VIP 고객이 갈수록 증가 추세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액 구매자의 증가와 함께 전체 매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백화점들은 VVIP 고객들만을 위해 더욱 특화된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VVIP 고객의 확보가 곧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객을 유치하고 이동을 막기 위한 마케팅 방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남들과 똑같기를 거부하는 부자들의 속성상 획일화된 서비스를 ‘지양’하고 일대일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정한 VVIP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귀족 마케팅이 더 특별한 장소, 더 럭셔리한 이벤트로 희소성을 강조하며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감성 중심’ 마케팅으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다.

또 하나의 트렌드는 명품이 일반화되면서 VVIP처럼 되고 싶은 일반인들의 심리를 활용한 ‘준 귀족 마케팅’, 즉 매스티지(masstige) 시장이 점점 확대 추세라는 점이다. 가격은 명품보다 저렴하면서 만족도는 명품 못지않은 매스티지 상품을 소비하면서 소비자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심리적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명품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VVIP들은 보다 더 ‘고급’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모델하우스조차 아무에게나 오픈되지 않고 예약을 받아 공개하는 일부 럭셔리 아파트나 진짜 ‘귀족’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한정판 명품을 선호하는 것이 진짜 VVIP들의 심리다.

그런데 바로 이 ‘귀족 마케팅’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 몇 가지 있다. 한동철 교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로 귀족 마케팅이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한 교수는 “귀족 마케팅은 부자들과의 ‘관계’를 지향하면서 만족은 높여주고 불만은 해소해 주며 친구처럼 접근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물론 일반 세일즈는 VVIP를 상대로 한 세일즈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 게 문제지만 ‘관계’ 지향적 마케팅을 통해 한 번 소비가 두 번이 되고 소비자의 가족들로까지 확대되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 하나 귀족 마케팅의 특징은 고객에게 충성한다는 점이다. 한 교수는 “VVIP를 상대하는 한 보험 세일즈맨이 고객의 요청에 따라 자기 스케줄을 조정해 함께 유럽 여행을 가더라”는 일화를 들려주며 고객 충성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들은 한 번에 쉽게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부자는 10번을 만나야 1번 성사될까 말까 한데 일반을 상대로 세일즈를 하는 사람들은 2~3번에 끝내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작년 국세청 자료를 보면 일반을 상대하는 세일즈맨 중에 연 수입 1000만 원이 안 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이 귀족 마케팅을 배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