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동산 키워드

2010년은 건설 부동산 업계에 시련의 한 해였다. 해외 건설과 4대강 등 토목 부문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죽을 쒔다. 무려 3년간의 부동산 경기 장기 침체로 한계에 도달한 건설사와 시행사들이 속출하고, 쌓여만 가는 미분양 아파트는 부메랑이 돼 건설 업계의 목을 조이고 있는 형국이다.

연말이 다가오자 밑을 모르고 계속 떨어지던 집값이 일부 지역에서 멈춘 가운데 전셋값이 치솟아 서민들의 삶이 고달파지고 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희망의 소식만 들려오길 기대하며 지난 1년간의 동향을 키워드로 살펴본다.

(1) 지방엔 ‘떴다방’…수도권은 썰렁
자이 충무로 모델하우스에 미분양 아파트 상담고객들이 늘고 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061001..
자이 충무로 모델하우스에 미분양 아파트 상담고객들이 늘고 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061001..
올해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지방 간 분양 시장의 온도 차가 컸다. 이전에는 ‘수도권은 청약 과열, 지방은 미달’이란 타이틀로 신문 지면을 장식했는데 올해는 사정이 바뀌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방 분양 아파트는 최고 50 대 1이 넘는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까지 등장했다.

GS건설이 11월 부산 우동에서 분양한 ‘해운대 자이’는 1순위 접수에서 최고 58 대 1, 평균 23 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10월에 분양된 대우건설의 ‘당리 푸르지오’도 평균 7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방의 청약 열기에 부동산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수도권에서는 ‘청약률 제로(0)’ 단지가 나오는 등 여전히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 11월 분양된 ‘용인 마북 e편한세상’은 3순위 접수까지 청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우건설의 ‘수원 인계 푸르지오’는 110가구 모집에 19명만 신청하는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지방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분양가가 주변보다 싸고 수요층이 두터운 소형 위주여서 인기를 끌었지만 수도권은 분양가가 비싸고 주택 크기가 커 실수요자들이 외면해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2) 치솟는 전셋값

국민은행의 전국 주택 가격 조사에 따르면 전국 전셋값은 지난해 2월부터 22개월째 꾸준히 상승했다. 전국 평균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56.8%로 2006년 4월의 57.1%에 근접했다. 전셋값이 2000만∼3000만 원 이상 오른 곳이 많으며 강남 일부에서는 2억 원 이상 오른 곳도 있다.

문제는 전세난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집값의 추가 하락을 기대한 실수요자들의 전세 선호 현상도 전세난을 부추겼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가 업계 최초로 연간 부동산 관련 키워드 검색 순위를 조사한 결과 올 한 해 부동산 관련 검색어 1위는 ‘전세’가 차지할 정도다.

내년에는 입주 물량이 적어 전세난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집없는 서민들만 힘들게 됐다. 내년 전국 입주 물량은 19만~20만 가구 정도로 올해보다 40% 가까이 감소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건설사들이 아파트 신규 공급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주택 물량을 단기간에 늘리기도 어려워 정부도 사실상 전세 대책에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3) 도시형 생활주택 투자 열풍

도시형 생활주택은 1~2인 등 소규모 가구용이다. 앞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1∼2인 가구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일종의 ‘미니 주택’으로 단지형 다세대(85㎡ 이하)·원룸형(12~30㎡)·기숙사형(7~20㎡)으로 나뉜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전용면적 50㎡ 이하 소형 주택을 30만 채 공급하기로 했다.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되자 매달 현금 임대 수익을 낼 수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 대비 높은 임대 수익을 누릴 수 있어 부동산 침체기의 블루오션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최근 역세권 등지에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도시형 생활주택의 인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4) 보금자리주택 사전 청약

수십 년 동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있던 곳을 풀어 짓는 서민용 집이 보금자리주택이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70∼80% 선이다. 서울 항동, 인천 구월 등 3차 지구 사전 청약을 받은 결과 최대 10.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 보금자리주택의 인기를 재확인했다. 정부는 최근 4차 보금자리주택 계획을 발표했으며 내년에 21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건설 업계는 보금자리주택이 민간 분양 시장을 위축시켜 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신규 분양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적체된 수도권 민간 미분양 주택 수도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 업계는 정부가 그린벨트를 싼값에 사들여 저렴하게 주택을 분양한다면 민간 주택 건설 업체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잠실일대 신축 재건축 아파트
/김병언 기자 misaeon@ 20091215..
잠실일대 신축 재건축 아파트 /김병언 기자 misaeon@ 20091215..
(5) 8·29 부동산 대책

정부는 8월 29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고 보금자리 사전 물량을 축소하는 등의 부동산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올해 말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는 2년간 연장하고 취득·등록세 감면도 1년 더 연장했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임대 사업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종부세 비과세 등 세제 지원 요건도 완화된다. 올해 말 종료되는 취득·등록세는 50% 감면이 1년 더 연장된다.

그러나 8·29 대책의 효과는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지방에서 온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 일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세난으로 대책이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마저 제기될 정도다.

(6) 부동산 폭락론 vs 바닥론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자 부동산 폭락론과 바닥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폭락론자들은 “한국의 아파트 가격에는 거품이 끼어 있어 가격 하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부동산은 더 이상 부의 축적 수단이 될 수 없다”며 “주택 가격이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주택 구입을 늦추라”고 권고한다.

이들은 또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집 구매 수요가 얇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35∼54세의 주택 구매 수요층이 2011년 이후 감소해 집값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바닥론자들은 외국인 등 외부에서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고 있고 1∼2인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신규 주택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더 이상 집값이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2018년부터 인구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도권은 2022년까지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거품론자들의 논리에 반박하고 있다. 최근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집값이 꿈틀거리자 바닥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처럼 현재 부동산 시장에는 폭락론과 상승론이 혼재하고 있어 실수요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7) 해외 건설 최대 실적

건설 업계에 좋은 소식도 있다.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뉴스다.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11월 말 기준으로 653억 달러.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랜트 산업이 밑바탕이 됐다.

올해 말까지 700억 달러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91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실적을 30% 이상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해외 건설 수주액은 우리 건설 업체가 1965년 해외시장에 처음 진출한 이후 누적 수주액 4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해외 건설 가운데 전체 해외 건설 수주액의 80% 이상을 차지한 플랜트의 비중이 가장 크다. 글로벌 금융 위기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오일 머니를 등에 업고 플랜트 수주액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