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 ‘굿마더’ 이오진 대표

프랑스에서 출발한 광고인으로서의 삶이 벌써 20년. 광고대행사 ‘굿마더’ 이오진 대표는 프랑스와 영국, 한국을 두루 경험한 광고인이자 ‘글로벌 시티즌’이다. 참신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유수의 광고상을 수상했지만 크리에이터로서의 자기 평가에는 아직도 냉정하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2개를 동시에 준비하느라 분초를 다투던 시점에 그를 만났다. 그러나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을 것이란 예감은 5분의 대화만으로도 어긋나기에 충분했다.

이 대표는 최고경영자(CEO)이자 ECD (Executive Creative Director: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근사한 가죽 케이스에서 꺼내주는 명함 대신, 그는 만나자마자 커다란 종이 뭉치부터 들었다. 쿠폰을 나눠주듯 한 장씩 뜯어 주는 이색적인 명함에,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이내 웃음이 났다. ‘펀(fun)’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펀’하고도 가벼운 접근이었지만, 지금까지 명함첩 속에 정리한 명함 가운데 가장 독특한 디자인과 타입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함께 그것을 내미는 사람과 상황이 연상되니 결과적으로 ‘강한 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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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 ‘센서블’, 광고주 만족의 키워드

“광고주들이 신생 광고대행사를 찾을 때 기대하는 것은 새롭고 강력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전략이 뒷받침돼야 하죠. ‘굿마더’는 전략이 바탕이 되는 새롭고 강력한 크리에이티브를 제시할 것입니다.”

‘굿마더’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종합 광고대행사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광고계에서 신생 회사라는 사실은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힘’이 있는 크리에이티브와 전략이 뒷받침된다면 신생 회사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

“내일 모 증권사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이 잡혀 있고, 모레는 패션 브랜드 PT가 있기 때문에 저부터 직원들 모두가 며칠째 밤샘 작업 중입니다. 경쟁 PT는 사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인데, 전 경쟁 PT가 가장 재미있더라고요.

신규 브랜드의 론칭도 재미있지만, 광고 캠페인 전개가 잘못돼 망가진 브랜드의 이미지를 리뉴얼해 다시 세워 일으키는 작업이 가장 신나는 프로젝트예요. 어떤 종목(상품)이 됐든 최고가 아니면 PT에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PT 전날은 자기 학대를 하는 편인데 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컨디션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PT가 끝나면 바로 쓰러지긴 하지만요.(웃음)”

‘크레이지 & 센서블(Crazy & Sensible)’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굿마더’는 대부분의 광고주가 가진 두 가지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중점을 둔다. 이 대표가 설명하는 광고주의 니즈는 첫째, 효율적인 매체 집행.

둘째, 크리에이티브다. ‘굿마더’의 브랜드 핵심이자 슬로건인 ‘크레이지 & 센서블’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셈이다. 다르고, 새롭고, 강력한 크리에이티브를 함축하는 ‘크레이지’와 광고의 메시지가 소비자들이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센서블’, 이 두 가지는 ‘굿마더’가 추구하는 광고 제작의 기본이자 모토랄 수 있다.

이 대표는 20년 광고 이력 중 절반의 10년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쌓았다. 고교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것이 계기다. 프랑스 국립 응용미술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이미 ‘광고인’으로서의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프랑스 현지에서 취업하기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학교가 졸업반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취업 ‘로드쇼’에서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각계 수십 명의 전문인들 앞에서 일대일로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한 끝에 프랑스 광고업계 3위에 랭크돼 있던 광고대행사 BDDP 관계자가 함께 일해보자고 그에게 제의한 것. 순조로운 출발 후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좁았을까. 그는 8년간 적을 둔 회사를 떠나 영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프랑스 회사에 있을 때 영국으로 광고 촬영을 간 적이 있어요. 그곳 스태프들을 알 수 있는 기회였죠. 이후 칸 광고제에서 ‘마더(Mother)’라는 광고대행사 사람들과 친구가 됐어요. 원래 발품 팔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터라 영국으로 건너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마더, 테킬라 런던(Mother, Tequila London)’에서 근무하다가 1999년에 귀국했습니다.

외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분명 어렵게 얻은 기회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 외국인인 저에 대한 믿음이 깨질 때가 올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마침 한국 모 대행사가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어요. 스카우트 제의였죠. 그런데 막상 그 회사에 가보니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냥 아는 선배나 보고 가야겠다 싶어 제일기획에 들렀다가 덜컥 제일기획 직원이 됐죠.”

10여 년간 굴지의 광고상 휩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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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가 생명인 광고 제작자에게 유럽에서의 시간은 훌륭한 자양분이 돼 주었다. 비록 4여 년간은 공무원 사회(?) 같은 한국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가 손을 대는 광고는 모두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더욱이 ‘라이프 이즈 원더풀(Life is Wonderful)’이란 상큼한 슬로건으로 기억되는 KT 광고 캠페인은 ‘6전7기’의 도전 끝에 제일기획이 거머쥔 ‘대어급’ 프로젝트였다. 회사가 여섯 번 떨어진 경쟁 PT에 그를 ‘구원투수’로 투입한 결과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오진을 알린 캠페인은 많다. 화장품 ‘엔프라니’를 비롯해 ‘삼성케녹스카메라’, ‘삼성카드’, ‘CJ홈쇼핑’, ‘올림푸스 카메라’, ‘삼성 컬러&레이저프린터 레이’ 등 그는 분야를 막론한 상품 광고의 크리에이티브에 날개를 달았다. 귀국 후 국내외 광고 대상에서 10여 차례 수상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를 꼽으라면 ‘엔프라니’ 캠페인이다.

“20대를 위한 기능성 화장품 시장을 두고 쟁쟁한 브랜드들이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어요. 헤드 카피를 ‘20대여 영원하라’고 잡고 신선한 얼굴의 모델을 찾았죠. 잡지란 잡지는 모두 뒤져 ‘신애’라는 신인 모델을 발견했는데 광고주가 너무 불안해 하더군요. 그래서 신애 씨를 불러 실제로 광고를 찍어서 보여줬어요. 보고 나니까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결국 그의 예감과 고집은 ‘홈런’을 쳤고, ‘엔프라니’는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기본이요, 시장점유율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그해 뉴욕 광고제 파이널리스트 화장품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즐거운 ‘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독립 대행사를 꾸렸다. 회사명도 그가 적을 두었던 ‘마더’를 벤치마킹해 ‘굿마더’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굿마더’는 한국의 서울에 있는 광고대행사이지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매년 열리는 아시안 퍼시픽 광고제 출품작을 보면 한국의 크리에이티브가 태국이나 인도에 밀리는 실정이에요. 가깝게는 아시아에서 ‘굿마더’의 이름으로 수상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음날 경쟁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밤을 새울 준비가 돼 있다”는 그가 ‘행복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마냥 편안해 보였다.


약력 : 광고대행사 ‘굿마더’ CEO &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 영국 D&AD 회원(현). 프랑스 국립 응용미술학교(그래픽 디자인 전공), ISAP(커뮤니케이션 비주얼과정) 졸업. 프랑스 광고대행사 BDDP 아트 디렉터 & 프로듀서(1990). 영국 광고대행사 마더, 테킬라 런던(Mother, Tequila Londo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1998).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석국장(1999). 금강오길비 상무& ECD(2008).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