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누리는 FIFA의 월드컵 비즈니스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것은 전 세계 축구팬만이 아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알짜 수익 사업이다. 이번 월드컵은 예상 순수익만 무려 11억 달러에 달한다.

FIFA는 440g짜리 축구공(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 하나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주식회사 FIFA’의 요구에 머리를 조아린다. 유엔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보다 회원 수가 더 많은 ‘지상 최대의 다국적 조직’ FIFA의 월드컵 비즈니스를 해부해 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중계권을 둘러싼 국내 지상파 방송 3사의 갈등이 끝내 법정 분쟁으로 비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중계권을 단독으로 사들인 SBS가 주요 경기에 대한 독점 중계 등을 고집하자 KBS와 SBS가 뒤늦게 2006년 3사 사장단 합의 파기를 문제 삼아 형사 고발에 나선 것이다. 한국과 북한, 일본의 동반 본선 진출로 월드컵 열기가 한껏 달아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방송사들의 감정싸움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월드컵은 엄청난 광고 수익이 걸려 있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방송 3사는 광고로만 652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이 4강에 오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한 달 남짓인 짧은 기간에 1377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아공서 ‘1조 순익’…냉혹한 ‘머니머신’
불황 모르는 지상 최대의 다국적기업

방송 3사의 날 선 다툼을 지켜보는 축구팬들의 마음은 씁쓸하지만 사실 ‘중계권’은 최근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FIFA의 월드컵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금고 잔액이 단돈 30달러뿐이던 적자투성이 FIFA는 TV 중계권료를 수십 배로 끌어올리는 재주를 부리며 가장 수익성 높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남아공서 ‘1조 순익’…냉혹한 ‘머니머신’
현재 FIFA는 현금성 자산만 15억 달러에 달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수많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1974년 이후 35년째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뒤숭숭하던 지난해에도 FIFA는 전년보다 6% 늘어난 1억96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FIFA 역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FIFA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단순하다. 단일 상품인 축구를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이벤트를 통해 전 세계에 파는 구조다. FIFA는 월드컵과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를 장악하고 있다.

TV 중계권에서 스폰서 기업 결정까지 모두 FIFA가 독점권을 행사한다. FIFA의 이름으로 돈을 벌어 주최국과 참가국에 나눠 주는 방식이다. FIFA의 핵심 수익원은 두말할 나위 없이 TV 중계권료다. 거대 다국적기업들이 거액을 내고 FIFA 스폰서가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중계방송 화면에 자사의 로고를 노출시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 효과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축구 경기 90분 동안 경기장 내 A보드가 등장하는 시간은 평균 7~8분에 그치지만 월드컵 기간에 64게임이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수십억 명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무려 8시간 이상 광고를 내보내는 셈이 된다.

게다가 시청자들이 갈수록 TV에 나오는 CF 광고에 싫증을 내며 곧바로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경기 도중 등장하는 후원사들의 로고에는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지난해 FIFA의 매출 구조를 보면 경기 관련 매출이 10억2200만 달러로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이 중 중계권료 수입이 6억5000만 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FIFA는 입금된 연도를 기준으로 회계장부에 이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 금액이 곧바로 남아공 월드컵의 전체 중계권료 수입 규모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FIFA는 이번 월드컵의 중계권료 수입이 최소 27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남아공서 ‘1조 순익’…냉혹한 ‘머니머신’
FIFA의 중계권 장사 수완은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현재 ‘주식회사 FIFA’의 최고경영자(CEO)는 제프 블래터 회장이다.

그는 1904년 창설된 이후 상업적 수익에 의존하지 않고 대회 입장 수입만으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던 FIFA를 철저한 비즈니스 조직으로 탈바꿈시킨 주앙 아벨란제 전 회장의 오른팔이었다. 아벨란제 밑에서 FIFA 사무총장을 17년 동안(1981~98년) 맡았다.

1974년 취임한 아벨란제 전 회장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부터 경기장 광고판 판매를 시작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는 월드컵의 상업적 가치 강화를 내걸고 개최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가 갖고 있던 마케팅 권한을 회수해 FIFA가 직접 관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는 아디다스와 일본 광고 회사 덴츠가 함께 설립한 스포츠 마케팅 전문 대행사 ISL이 월드컵 마케팅을 독점 대행했다.

월드컵 중계권 패키지 판매로 ‘돈방석’
FIFA President Joseph Blatter reacts during a press conference 14 May 2002 in Zurich. Blatter rejected accusations of corruption and hit back at his opponents for orchestrating a set-up to stop him standing for re-election at the head of world football's governing body. Defending his four years in office, Blatter told journalists that he would be presenting a more detailed written rebuttal to accusations made by general-secretary Michel Zen-Ruffinnen 03 May to FIFA's executive committee.      AFP PHOTO  EPA-KEYSTONE / MICHELE LIMINA



<저작권자 ⓒ 2002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FIFA President Joseph Blatter reacts during a press conference 14 May 2002 in Zurich. Blatter rejected accusations of corruption and hit back at his opponents for orchestrating a set-up to stop him standing for re-election at the head of world football's governing body. Defending his four years in office, Blatter told journalists that he would be presenting a more detailed written rebuttal to accusations made by general-secretary Michel Zen-Ruffinnen 03 May to FIFA's executive committee. AFP PHOTO EPA-KEYSTONE / MICHELE LIMINA <저작권자 ⓒ 2002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사무총장 시절 블래터 회장은 TV 중계권료를 FIFA의 핵심 수익원으로 키웠다. 처음 컬러 TV 생중계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 때 시작됐지만 중계권료는 1980년대 초까지 FIFA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었다. 당시 핵심 돈줄은 다국적기업들의 공식 후원 계약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세계경제 침체로 기업 후원 계약에 어려움을 겪자 블래터는 방향을 바꿔 각국 방송사에 파는 중계권료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FIFA는 1982년 스페인 대회부터 참가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렸고 1998년 프랑스 대회부터는 32개국으로 확대했다.

FIFA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2년 새로운 판매 전략을 도입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중계권을 패키지로 묶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중계권의 희소성을 높임으로써 가격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FIFA의 전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중계권료는 무려 28억 스위스 프랑(약 2조2240억 원)으로 폭등했다. 이는 이전에 열린 3개 월드컵 대회의 중계권을 모두 합친 금액의 수 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과거 FIFA는 전 세계에 축구를 보급하기 위해 단기적인 수입은 줄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월드컵을 공영방송이 중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하계 올림픽의 TV 중계권료가 10억 달러를 돌파한데 자극받아 노골적인 상업화로 돌아섰다. FIFA는 “축구만큼 완벽한 TV 소프트는 없다”며 “올림픽이 10억 달러라면 월드컵의 가치는 10억 달러 이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방송사들이 FIFA에 지불하는 월드컵 중계권료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190만 달러에 불과하던 중계권료는 그 후 3500만 달러(2002년 한·일 월드컵), 2500만 달러(2006년 독일 월드컵)로 뛰었다. SBS가 패키지로 구입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중계권료도 각각 6500만 달러, 75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FIFA는 더 많은 중계권료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중 플레이도 서슴지 않는다. 남아공 월드컵 중계권을 놓고 영국 BBC와 협상을 벌이면서 동시에 민영 방송인 스카이TV와도 접촉했다. 그 결과 FIFA는 중계권료를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보다 30~50% 더 받아냈다.

FIFA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월드컵의 상품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경기장에서 축구의 매력이 최대한 나올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쾌적한 관람 환경과 최상의 화면을 위해 경기장의 좌석 수에서 방송 여건까지 엄격한 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다. 심지어 사진기자들이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 방법까지 고민한다.

FIFA는 거액의 후원금을 낸 스폰서 기업들이 독점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서는 A보드는 다른 경기들과 다르게 매우 선명한 느낌을 준다. 현수막을 이용해 인쇄하지 않고 일일이 유성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로고가 TV 화면에 보다 선명하게 나오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또한 일반 기업들이 월드컵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한다. 경기 중에 사용하는 컴퓨터나 복사기, TV 등 모든 사무기기 중에 FIFA의 스폰서가 아닌 제품들은 일일이 상표를 가리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Aerial view of Berlin's TV Tower, the main structure of which has been made to look like a football 23 May 2006, ahead of the 2006 FIFA Football World Cup hosted by Germany from 09 June to 09 July. AFP PHOTO DDP/JOHANNES EISELE     GERMANY OUT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erial view of Berlin's TV Tower, the main structure of which has been made to look like a football 23 May 2006, ahead of the 2006 FIFA Football World Cup hosted by Germany from 09 June to 09 July. AFP PHOTO DDP/JOHANNES EISELE GERMANY OUT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FIFA의 기업 스폰서 제도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초점은 참여 기업의 권리를 극대화해 가격을 높이는 것이다. FIFA는 남아공 월드컵부터 스폰서 구조를 ‘FIFA 파트너’, ‘월드컵 스폰서’, ‘지역 공급자’ 등 3종류로 변경했다.

새롭게 만든 FIFA 파트너는 월드컵 경기는 물론 FIFA가 개최하는 모든 경기와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누리는 일종의 ‘귀족 클럽’이다. 아디다스·코카콜라·에미레이트항공·현대차·소니·비자카드 등 6개 기업만이 여기에 들어가 있다.

이들 기업이 FIFA에 낸 후원금 액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월드컵 스폰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대해서만 마케팅 권한을 갖는다. 맥도날드와 버드와이저 등 8개 기업이 스폰서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지역 공급자로는 5개 남아공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FIFA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공공장소 전시권(Public Viewing)’과 인터넷·모바일 중계권이다. 공공장소 전시권은 2002년 월드컵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길거리 응원과 관련이 있다.

인터넷·모바일 중계권에 눈독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처음 적용된 개념으로 도입 때부터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길거리 응원처럼 공공장소에서 월드컵 경기 장면을 상영할 경우 참가 인원에 따라 1000~1만4000달러까지 공공장소 전시권료를 FIFA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단체 응원을 준비했던 유통 업체들이 줄줄이 행사를 취소하는 소동이 벌여졌다.
Germany's Miroslav Klose attempts a header at goal against Poland's Artur Boruc during their Group A World Cup 2006 soccer match in Dortmund June 14, 2006.  FIFA RESTRICTION - NO MOBILE USE   REUTERS/Thomas Bohlen  (GERMANY)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Germany's Miroslav Klose attempts a header at goal against Poland's Artur Boruc during their Group A World Cup 2006 soccer match in Dortmund June 14, 2006. FIFA RESTRICTION - NO MOBILE USE REUTERS/Thomas Bohlen (GERMANY)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공공장소 전시권은 또 한 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FIFA가 이번에는 2006년보다 훨씬 엄격하게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후원사가 없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 비상업적 행사일 경우에는 공공장소 전시권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인터넷TV(IPTV) 보급이 확대되면서 모바일과 인터넷 중계권도 주목받고 있다. FIFA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부터 인터넷·모바일 중계권 계약을 별도로 체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FIFA의 지나친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축구의 상업화가 끔찍하다”며 “축구가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형 사업이라는 점을 FIFA가 보여줬다”고 성토했다. FIFA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피파의 은밀한 거래’를 쓴 영국의 저널리스트 앤드루 제닝스는 FIFA에 ‘저돌적인 수익 머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FIFA의 비즈니스 논리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FIFA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33억 달러 매출에 10억~11억 달러의 순이익을 자신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