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웃소싱 업계의 글로벌 드림
‘글로벌화’의 결과로 탄생한 인도 정보기술(IT) 업계가 자체 ‘글로벌화’에서 나서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더 이상 기존 선진국 시장에만 의존해선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이머징 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1차 글로벌화 물결로 돈을 번 인도의 IT 아웃소싱 업체들이 새로운 성장 기반을 찾아 아시아와 남미의 신흥국으로 사업을 넓혀가고 있다”고 전했다.이러한 변화는 인도 IT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출장 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도 IT 기업인 타타컨설턴트서비스(TCS)의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CEO는 지난해 10월 CEO가 된 후 뉴욕과 런던 등 선진국으로의 출장 일정을 줄이고 대신 중국, 베이징과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 초엔 남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와 브라질의 상파울루,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와 중동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금융 위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뉴욕과 런던의 대형 금융사와 기업들이 인도 IT 업계의 주 고객층이었다. 이들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콜센터 등 비핵심 업무를 인도 IT 전문 기업들에 아웃소싱해 왔다. 그 결과 인도 IT 업계의 매출은 지난 1998년 4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엔 590억 달러로 10년 새 15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 여파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IT 분야의 지출을 크게 줄이면서 급성장 추세가 꺾였다. 인도소프트웨어서비스산업협회(NASSCOM)는 오는 3월 끝나는 2009~2010 회계연도의 성장률이 높아야 7% 정도 수준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인도 IT 업계는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지타 굽타 NASSCOM 부회장은 “금융 위기는 인도 기업이 성장 잠재력이 큰 신흥시장에 보다 빨리 진출하도록 만든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IT 기업 위프로의 K R 락시미 나라야나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선진국 경제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난 2년간 중국·이집트·필리핀에 영업센터를 열었고 브라질과 루마니아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인도 IT 기업들의 신흥국 진출이 단지 금융 위기에 떠밀려서만은 아니다. 기존 고객인 다국적기업들이 개도국과 신흥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다 보니 따라가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NASSCOM과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20년께엔 인도 아웃소싱 업체들의 IT 및 비즈니스 서비스 매출의 25%가 소위 신흥 경제 대국인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서 나올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이 여전히 인도 IT 업계 매출(수출 기준)의 60%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매출 성장 속도는 신흥국이 훨씬 빠르다. 인도 IT 업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2004년과 2008년 사이에 연평균 42.1% 성장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의 매출은 연 28.7% 늘었다.인도 IT 대기업 인포시스 경영진이 장기적으로 회사의 매출 기반 가운데 미국의 비중을 65%에서 40%로 줄이고 중동·아시아·남미의 비중을 12%에서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S 고팔라크리슈난 인포시스 CEO는 “미국 시장도 계속 커지겠지만 신흥시장에서 더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인도 기업들은 신흥국 진출을 통해 향후 IBM이나 액센츄어 등 다른 IT 업계 리더들과도 겨뤄보겠다는 ‘꿈’도 키우고 있다. 굽타 부회장은 “인도 기업들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선 신흥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인도 IT 기업들의 신흥시장 진출이 만만하지는 않다. 선진국에선 숙련된 프로그래머들을 저임금으로 쓸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인도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이 저렴한 신흥국에선 가격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렵다. 또 많은 신흥국가들은 영어 이외에 다른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도 IT 기업들은 이러한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각국에 진출하면서 현지인의 채용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문화와 성향을 가진 현지 근로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인도 경영진의 능력에 대한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박성완 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