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입문’ 어떻게
“부농을 꿈꾸는 커다란 농장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또한 그렇다고 마냥 전원생활만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직 나이가 있는 만큼 그저 내가 소화해낼 수 있는 규모로 둘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뭘 경작할지,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내가 결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귀농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귀농 희망자는 이와 같이 귀농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귀농에 대한 정보 교류 카페의 열기가 뜨겁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그늘이 짙던 올해 3월 포털 사이트 다음 ‘귀농사모(cafe.daum.net/refarm)’ 카페는 주간 순방문자가 5만 명을 넘으며 다음 카페 중 상위 16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카페는 귀농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귀농을 감행하고 농업기술 관련 전문 지식이나 토지 매입에 대해 묻고 답하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모여 있다. 하루 50여 명 이상 신규 가입하는 회원들을 살펴보면 30대부터 60대까지 공무원·주부·회사원·요리사 등 연령과 직업이 다양하다. 가입 절차 중 회원들의 주요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 화훼, 축산, 약초, 버섯 재배, 과수원, 미생물, 유기농장 등으로 전통적인 벼농사보다 최근 웰빙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국내 농업계는 전반적인 농업 침체, 해외 농산물 개방에 따른 국내 농산물의 경쟁력 악화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농업계에 개별적으로 많은 인력과 자본이 유입되면서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춰지고 있다. 즉, 귀농에 뜨거운 관심이 몰리고 있고 정책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이 발표한 ‘귀농·귀촌 종합대책’에 따르면 귀농 열기의 배경은 최근 악화되고 있는 고용 상황에 따른 하나의 탈출구로 나타났다.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은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활동한 베이비붐 세대의 50대와 40대 후반이 주류다. 이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일정한 자산과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귀농 가구 수는 총 2218가구로 2007년(2384가구)보다 소폭 줄어들었지만 2006년(1754가구), 2005년(1240가구)과 비교할 때 ‘귀농 러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북에 485가구가 정착해 가장 많았고 전북(385가구), 경남(373가구), 전남(289가구) 등의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경기 침체를 겪은 1998년과 지난해에 귀농 건수는 다른 해에 비해 현격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이러한 귀농 증가 추세에 따라 정부는 농촌에 새로운 인력 영입을 위해 ‘귀농·귀촌 종합대책’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귀농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추경예산에 191억 원을 확보하고 일선 농협에 귀농·귀촌 종합센터를 지난 5월 설립했다. 센터에는 전문 상담가가 배치돼 귀농 준비를 도와주며 귀농과 관련한 정부 정책과 지원 사업, 교육 등 서비스를 통합한 시스템도 운영된다. 그리고 영농정착자금을 기존 농업인과 같은 조건인 연리 3%에 1인당 2000만~2억 원 수준으로 융자해 준다. 주택 구입 자금도 연리 3%로 200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귀농 희망자는 통합 교육 정보 시스템(www.agriedu.net)에 접속하면 귀농 전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귀농 가정이 일반적으로 겪는 경험에서부터 품목 재배 기술까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천안연암대학, 한국농업대학,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 등 대학교에서는 2개월의 농업 실습 합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실제 귀농 전 농사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자치단체들은 귀농 러시에 따라 관할 지역 내 인구가 유입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귀농자 지원 조례 등을 제정해 영농 정착금, 농지 구입 자금, 출산 장려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지난 1997년 이후 귀농이 본격적으로 지속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농업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끈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성공 귀농의 특징은 과수·축산·밭작물 등 전통적 농업 외에도 농산물 가공업·유통업·농업기술 및 장비 개발 등 농업과 관계된 다양한 부문에 걸쳐 신개념이 도입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지난 2006년 경북 예천에 귀농한 한상준 씨는 전통 양조 식초로 지난해 8500만 원의 소득을 올린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서울에서 벤처기업 직원이었던 한 씨는 우연한 기회에 초산균의 효능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식초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리 전통 식초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귀농을 결심했다.직장 생활을 하며 귀농을 준비, 주말이면 국내 식초 양조하는 곳에 달려가 배우고 식초에 대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3년여간의 귀농 준비를 마치고 2006년 귀농을 감행, 그동안 연구한 곡물 식초를 특허 및 상표등록하고 본격적인 농산물 가공업 비즈니스에 돌입했다. 현재 이 전통 식초를 한 해 약 15톤 양조하며 매년 매출이 배로 늘고 있다.하지만 한 씨는 “이 사업을 하면서 식품위생법 규정에 의한 가공업소 기준을 충족하기에 자금이 한정적이었고, 제품 완성 후 판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많은 귀농인들이 농산물 가공 기법이나 유기농산물 재배 농법 등 새로운 농업기술을 개발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천군 농업기술센터의 이상철 생활육성담당은 “귀농인들이 겪는 어려운 점은 농산물 유통”이라며 “따라서 작물 유통을 돕고 기술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농촌진흥청(www.rda.go.kr) 조사(2007년)에 따르면 도시 거주인 중 은퇴 후 농촌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겠다는 의사를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10명 중 6명 정도인 64.1%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귀농을 결심했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정착해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전남 농업기술원 박민수 원장은 “귀농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가장 열악한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라며 “농업에 무지한 자신을 깨우치면서 묵묵히 나가야 하는 자기 고행과 같다”고 말한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