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발표회 수싸움
“쏘나타 신차 발표회 언제 하나요?” “그게, 잠정적으로 9월 17일로 되어 있기는 한데,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공문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장소는 정해졌나요?” “장소도 확정되지 않았어요.”지난 9월 10일 현대자동차 홍보팀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잠정적인 날짜까지 불과 7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날짜와 장소가 불투명한 상태다. 당일 이벤트도 장소에 맞춰야 하니 모든 것이 사실상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현대차에 따르면 원래 쏘나타(프로젝트명 YF)의 신차 발표회는 9월 9일 한강변의 ‘마리네 제페’에서 이뤄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8월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의선 부회장이 주관하는 첫 신차 발표회인 만큼 VIP 초청 행사로 계획을 바꿀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자동차 측은 상황이 바뀌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VIP 초청 행사라고 하면 예전 제네시스, 에쿠스 신차 발표회를 떠올려 봤을 때 총리 및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전경련 회장 등 정·재계 VIP들이 대거 출동하는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초특급 VIP들을 같은 시간, 한 장소에 모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차 측은 “VIP급의 초청은 아니고 사회 저명인사 정도로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이 같은 일이 생기는 이유는 자동차 업계의 신차 발표가 예전과 다른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치열해지는 내수 시장 수성을 위해 신차 발표도 경쟁 차종의 발표 시기에 따라 조정되기 때문이다. 신차 발표가 1주일 만에 갑작스레 결정되기도 하는 만큼 장소도 오래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호텔이 아니라 아침고요수목원, 클럽 플래툰, 선상 식당 마리네 제페 등 단기간에 섭외가 가능한 곳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지난 7월 8일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 11시와 12시 30분으로 나누어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신차 발표 행사가 각각 1시간 동안 이어졌다. 현대차 측은 친환경 차량의 콘셉트를 강조하기 위해 대자연 속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신차 발표 후 차량 시승이 이뤄졌다. 가평의 시골길을 10km 정도 달렸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없어 자동차 담당 기자들이 좋아하는 최고 속도 테스트도 이뤄지지 못한 아쉬운 시승이었다.현대차가 이렇게 행사를 한 데는 1주일 전 판매를 개시한 르노삼성의 뉴SM3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뉴SM3는 7월 판매량 5792대, 8월 5145대를 기록하며 국내 자동차 판매 5위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구형의 판매량인 1411대(6월)보다 4배가 늘어난 것이다. 현대차 아반떼는 8월에도 9168대를 판매해 여전히 판매량 1위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현대차도 이런 뉴SM3의 존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모로 보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뉴SM3의 스펙(객관적 지표)만 봐도 사전에 충분히 준중형 시장에 파란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뉴SM3의 출시 1주일 만에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를 내놓았다.시장과 언론의 관심이 한국 최초로 일반 판매에 나선 하이브리드카에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세제 지원 등 정부와의 합의가 미처 이뤄지지 않았고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카에 추가 세제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발표가 뒤이어 나왔다.8월 판매량 집계에서 현대·기아차는 78.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여전히 내수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회사 측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8월부터는 그간 하지 않았던 아반떼의 TV CF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면 당신은 지금 최우수 작품상의 시상 소감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아반떼 두 대가 춤을 추듯 무대를 누비는 CF다.8월 25일 투싼ix의 신차 발표회는 정확히 GM대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출시 6일 만에 이뤄졌다. 장소는 서울 신사동의 ‘플래툰’. 호텔이 아니라 클럽하우스에서 신차를 선보인 것이다.‘마티즈 크리에이티브’도 디자인, 성능을 봤을 때 기아자동차 모닝을 충분히 위협할 만하다. 모닝은 7, 8월 월간 판매량 2위를 할 정도로 기아차의 효자 상품이다. 모닝은 그간 국내 유일한 1리터 배기량의 경차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이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라는 강력한 적을 만난 것이다. 게다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신차인데다, 영화 ‘트랜스포머2’에 출연하며 GM대우의 뒤처진 브랜드 이미지를 극복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투싼ix의 경우도 신차가 가지는 의미에 비해서는 행사가 조촐한 느낌이었다. 투싼은 현대차 라인업 중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으로 투싼ix도 이를 염두에 둔 전략 차종이다.뉴SM3의 대항마인 아반떼의 신차 출시는 2011년으로 예정돼 있다. 대항마가 요원한 가운데 현대차는 9월 말 예정이었던 쏘나타 신차(YF)의 출시를 9월 9일로 당겨 3~4분기 판매량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세웠다.항간에는 소비자들이 “SM5를 사러 갔다가 실내 공간도 더 넓고 신차인 뉴SM3를 산다”는 말도 있듯이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SM5를 이번에 확실하게 압도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쏘나타의 신차 발표일은 1주일 이상 연기됐지만, 현대차는 9월 1일부터 사전 예약을 받는 등 쏘나타에 올인하고 있다. 아파트 입구 등에 붙은 영업사원의 전단을 보면 사전 예약을 취소해도 계약금을 물지 않는 등의 조건으로 중형차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에서는 YF 쏘나타 사진이 화제다. 눈여겨볼 점은 스파이샷이 아니라 TV CF 캡처 사진이라는 점이다. 사진들도 차량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화각에 맞춰져 있어 현대차의 사전 마케팅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차량의 모양새도 모른 채 사전 예약을 할 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진 공개는 마케팅의 일환이라는데 무게가 쏠린다.현대차 측은 “과거에는 무조건 호텔에서 했지만, 올해는 경기 상황을 봐가며 일반인 신차 발표회를 열지 않고 보도 발표회만 하고 있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도 고려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차를 선보일 필요성도 커졌다”고 설명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