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 토크
정치권에서 정운찬(63·전 서울대 총장) 총리 내정자의 ‘화려한’ 인맥이 화제다. 일각에선 “대한민국에서 정 내정자만큼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단순한 마당발이라기보다 한번 맺은 인연을 깊고 길게 가져가는 스타일이라는 평이다. 술자리는 보통 2차, 3차까지 가는 ‘주당’이면서도 화기애애하고 주변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가 가는 자리마다 ‘활기찬 정운찬’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제학계의 거두인 만큼 경제·금융 관련 분야에서 탄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인물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특히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경제 관료들과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엄밀히 말해 이들을 천거한 사람이 바로 정 내정자다. 제자인 이성규 하나금융지주 전략담당 부사장(CSO)을 비롯해 서근우 하나금융지주 경영지원 부사장과 첫 여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출신인 이성남 민주당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과는 정 내정자가 “언제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로 친하다. 1960~70년대 서울대의 ‘엘리트 기숙사’라고 할 수 있는 정영사에서 같은 방(305호)을 썼던 사이다.대학 후배로 역시 정 내정자와 가까운 한덕수 주미대사는 그 당시 기숙사 옆방(306호)을 썼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찾아다니는 사이로 소문난 김정태 서강대 교수(전 국민은행장)와도 친분이 두텁고 강정원 국민은행장, 권영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은 대학 후배다.◇= 정 내정자는 자신의 얘기를 할 때 “나는 운이 좋은 사람. 인생을 나눌 사람들이 많아 행복하다”고 말하곤 한다.사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열한 번째 아기가 생기자 이를 지우려고 독초를 먹었다. 정 내정자는 그래도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역에 통달한 마을 어른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사주에 운이 꽉 차 있구먼.” 운이 찼다고 해서 운찬이라고 했고 돌림자인 구름 운(雲)에 빛날 찬(燦)을 붙였다.정 내정자는 김중수 전 경제수석, 장승우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경기고 동문으로, ‘경기고가 낳은 3대 천재’로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온화한 성품으로 친화력이 뛰어난 반면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소신파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학업이나 진로의 고비마다 은인들이 나타나 길을 뚫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학비를 도와준 독립운동가 멘토(mentor) 스코필드 박사, 경제학과로 이끌어준 고교 1년 선배 김근태(전 열린우리당 의장), 사회의식을 일깨워준 가정교사 선배 신영복(통혁당 사건 20년 복역, 현재 성공회대 교수), 미국 유학으로 인도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등이 그의 은인이었다.가까운 지인들에게 정 내정자는 “나는 아버지가 4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을 낳아준 생부, 그리고 자신을 길러준 양부(숙부), 경기중 재학 중 등록금을 지원해 준 스코필드 박사, 그리고 스승인 조순 교수를 모두 아버지라고 부른다. 특히 조 교수는 가난한 집안 형편상 졸업 후 한국은행에 취업한 정 내정자에게 유학을 권한 학문적 아버지다. 또 중매를 주선해 서양화가 최선주(59) 씨와 백년가약을 맺게 했다.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조 교수가 직접 나서 설득했다. 2007년 대선 출마를 고민할 때 ‘출마하지 말라’고 조언한 것도 조 교수였다. 정 내정자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 김종인 전 의원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총리직 수락도 김 전 의원의 권유가 있었다.예체능계 인사들과도 친분이 많다. 특히 야구를 워낙 좋아해 두산 베어스의 광적인 팬이다. 두산 김경문 감독과 친하고 가수 조영남 씨와는 ‘막말하는(?)’ 친구 사이다. 한 지인은 “정 내정자의 휴대전화에 2500여 개의 번호가 저장돼 있다”면서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몇 십 명씩 전화를 돌려 안부를 묻고 격려하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이준혁·한국경제 기자 rainbo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