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향수 디자이너 박성희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향기가 있다. 그 향기의 숫자만큼 향수도 무수하게 많다. 그 많고 많은 향수 중에서 오직 나를 위한, 내게 맞는, 나만의 향수를 찾아주는 사람, 바로 퍼스널 향수 디자이너다.혹자는 그녀를 ‘맞춤 향수 전문가’라고도 부른다. 또 누구는 그녀를 ‘퍼스널 향수 컨설턴트’라고 부른다. ‘퍼스널 향수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 그 모두가 향수 디자이너 박성희(36) 씨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하는 일은 조향사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조향사와 퍼스널 향수 디자이너는 같지만 조금 달라요. 향을 다루는 일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조향사가 기존에 없는 새로운 향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퍼스널 향수 디자이너는 개개인에 맞는 향수를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향수를 연구하는 일만큼이나 사람을 연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원하는, 혹은 연상하는 자신의 향기가 있어요. 그 향기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죠.”그 때문에 향수를 만들기 전에 세심하고 꼼꼼한 일대일 상담은 기본이다. 상담을 통해 고객의 성향이나 라이프스타일, 내면에서부터의 욕구 등을 종합해 고객이 추구하는 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부합하는 향들을 선택한다. 향료 키트로 직접 향기를 맡으면서 좋아하는 향을 정하고 고객의 취향을 반영해 그 사람만의 향수를 제조해 낸다. 다양한 향료나 향기, 그리고 새로 나오는 향수들에 대한 공부만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다행히 한때 항공사에 근무하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봤던 경험이 이 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향에 민감했다던 그녀다. 비누 한 장, 샴푸 하나, 로션 하나를 쓰더라도 꼭 향기를 따져 사용하곤 했다. 그 덕분에 어른이 된 뒤에 향수 마니아가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항공사에 근무하면서 외국에 나갈 때마다 향수 매장부터 들렀다. 새로운 향수가 나올 때마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향수에 쏟아 붓는 시간과 돈이 늘어날수록 아쉬움도 점점 커졌다. 세상의 많고 많은 향수 중에서 그녀 자신이 원하는 ‘이거다!’ 싶은 향기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어 1996년부터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아로마 하우스, 조향 스쿨 등을 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취미 생활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향은 정말 매혹적인 분야였다. 공부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취미가 아닌 본격적으로 조향사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을 정도로 남다른 능력도 인정받았다.그로부터 몇 년 후, 항공사를 그만두고 향수 전문가로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앞날이 불확실한 일에 뛰어들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향사로서 향을 만들며, 또 사람들이 불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향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일을 하며 비로소 그녀 자신도 행복감을 느꼈다.“그 후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향수 컨설턴트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미 나와 있는 향수 중에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향과 향수를 추천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사실 외국에서는 향수 매장에 들어가면 향기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스태프들이 고객의 취향에 맞는 향을 찾아주기 위해 상담을 해 주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향기나 향수에 관해 컨설팅을 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을 신기해하고 제게 물어보는 분들도 많아지고 저를 찾는 분들도 늘더군요.” 그녀의 실력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각종 특강이나 백화점 문화 강좌, 언론 등에서 찾는 일이 많아졌다. 향수를 추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찾는 법 등을 가르치곤 했다. 향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쳤다.“사실 한 사람이 가진 시각적인 요소 못지않게 그 사람의 향기도 그 사람의 이미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기분 좋은 향을 풍기는 사람과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 어느 쪽에 호감이 갈 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잖아요? 예의에 맞는 옷차림이 중요한 것처럼 예의에 맞는 향기도 중요한 법이고요.” 그녀에게 향수 스타일링을 제의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성 고객들도 많다고 한다.“신혼부부라든가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들의 의뢰도 많지만 의외로 비즈니스맨들도 많죠.” 그럴 경우 단순히 어떤 향수가 좋다고 추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취향과 지위, 상황에 맞는 향수를 권해 주기 때문에 향수 스타일링에 대한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당연히 개개인에 따라 권해주는 향수도 달라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주로 중후하면서도 클래식한 향기를 추천하는 편이고, 좀 더 젊게 그리고 활달하게 보이고 싶은 분들께는 부드러운 이지 캐주얼한 향기를, 자신만의 이미지를 어필하고 싶은 분들께는 감각적이면서 센슈얼한 향기를 권해 드리는 편이죠.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나무 계열의 아로마틱 우디 향을 추천하곤 해요.”어떤 상황에 어떤 향이 어울릴 것인지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에 나와 있는 향수들만으로는 제각기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향기를 찾기 위해 고민했던 경험이 있어 그런 이들을 위해 직접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직접 들여 온 원료와 100% 천연 에센스 오일 등을 조합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퍼스널 향수가 벌써 1000여 개가 훨씬 넘는다.그녀는 남들이 쉽게 인쇄해 가지고 다니는 명함을 돌리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 그 사람에게서 받은 이미지로 즉석에서 간단히 향을 만들어 키트지로 만든 명함에 뿌린 후 손으로 정성들여 자신의 정보를 적어 건넨다.“향수를 만들어 드리면 어떤 분은 깜짝 놀라곤 해요. ‘아니, 이건 진짜 제 향수네요! 나도 몰랐는데, 이건 딱 내 향수가 맞아요!’라고요. 심지어 저보고 신기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하신다니까요?(웃음)” 하지만 그 모두가 향에 대한 이해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어우러져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다.“요즘에는 한창 패션 디자인을 공부 하고 있어요. 조만간 패션 스타일링과 향수 스타일링을 접목한 본격적인 이미지 컨설턴트 작업을 해 보려고 해요.” 하지만 그녀의 진짜 꿈은 따로 있다. “전 향기가 가진 파워를 믿어요. 좋은 향은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고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좋은 향, 좋은 에너지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을 좀 더 고운 향기로 물들이는 게 진짜 제 꿈이에요.”약력: 1973년생. 인하공업전문대 항공운항과 졸업. 아로마하우스 조향 기본과정, 갈리마드 퍼퓸스튜디오 조향과정, 강사과정 수료. 아로마테라피스트 자격증 취득. 2005년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향수디자이너전문가과정 담당교수. 주요 백화점 문화센터 향수 문화 강좌 진행.김성주·객원기자 helieta@empal.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