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인가?많은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단어만으로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따뜻한 울컥거림을 주는 감동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그리움이나 가슴 뭉클한 아버지는 아니다. 오히려 가슴 울컥하게 만드는 아버지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래”라는 경계의 대상이 되어 버린 아버지였다.어느 날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우리 형제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형님이 “너, 하는 짓이 어쩌면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고 말하자 우리 형제들이 일제히 찬물을 끼얹은 듯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 목표다”라고. 평소 아버지의 유별난 성격만은 닮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화장실에서 불을 켜지 않고 볼일을 보다가 사람 간 떨어지도록 놀라게 하고,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도 선풍기 전기세가 아까워 켜지 않는 전기세의 노예가 되어 버린 아버지의 유별남을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본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를 뒤로한 채 우리의 희생을 강요한 절약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은 것이다.아버지의 유별난 취미 중 하나가 장보기다. 아버지는 신문 전단지를 5개 이상 펼치면서 분석에 들어간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주식을 연구하는 분처럼 보인다.아버지는 “○○마트는 콩나물이 이렇게 싼데 ××마트는 왜 이렇게 비싸, 설탕도 다른 곳보다 300원이나 더 비싸네, 너는 똑똑한 아버지를 둔 덕에 싸게 먹는 줄 알아”라고 말하시며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 행태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아버지 절약 정신 좀 배워’라며 아버지의 유별남을 물려받기를 은근히 원하셨다.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서 싼 반찬거리를 찾아 전전하시면서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생활의 큰 낙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음식 장만은 어머니가 다 하신다. 정말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다. 아버지의 유별남을 감싸주는 어머니의 의리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아버지는 없었을 것이다.분명 아버지의 유별남은 내가 본받기 싫은 것은 맞지만 요즈음은 그 유별남을 지켜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친구처럼 티격태격 즐기시듯이 말싸움을 줄곧 하시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밥을 함께 드시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조근조근 재미있게 이야기하신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부부 싸움이 나한테는 상처였지만 이 또한 지금 나에게는 사랑스럽다.아버지의 유별남은 그 세대면 누구나 겪었을 어린 시절의 가난과 절약을 강조하던 시대정신으로 인해 강하게 세뇌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껴 쓰지 않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두려움이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지냈던 우리 세대와 지금의 어린 세대는 이러한 절약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앞으로 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나 알통 봐라, 계란 하나야!”라며 슈퍼맨처럼 자랑하시던 젊은 날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흰머리를 정성껏 염색하고 옥신각신 어머니와 티격태격하는 약해져 버린 노인의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 그려지고 있다.아버지의 유별남도 지금처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로 시장을 전전하며 장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 평생 내 머릿속에서 떠돌 것이다.아버지의 얼굴을 더 기억에 많이 담고 싶다. 아버지에게 다가가 어느 마트가 장볼 때 가장 싼지 좀 배워둬야겠다.감정 정리서 ‘각인’의 저자로 기업체와 문화센터에서 리더십과 감정 조절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한국마음정리연구소 및 한국감정정리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