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 뜨거워지는 그린 벤처 열기

#1.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D 빌딩 5층. 그린 벤처기업인 씨티앤티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친환경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이 회사는 매출액이 해마다 100%씩 증가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중국에 골프카를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출시한 시기는 2007년부터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시기에 오히려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2.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에 있는 테크랜드 사무실은 요즘 밀려드는 주문으로 전 직원이 쉴 틈조차 없다. 이 회사는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기초 장비를 만든다. 직원 수는 연구 제조 인력을 합쳐 5명. 중소기업 경기가 바닥이던 지난 2월 창업한 신생 기업이지만 대기업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세계경제 위기 등으로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던 벤처 업계가 그린 전략을 내세우면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그린 벤처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연료, 전기자동차, 배터리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다. 벤처기업은 작년 상반기 매달 평균 40여 개씩 사라지다 올 들어 매달 300여 개씩 다시 늘어 나는 추세다. 이 중 상당수가 그린 벤처기업이다. 2007년 718억 원이던 그린 벤처기업 매출액은 작년 1276억 원을 기록했다.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 가운데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투자는 16%로 작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며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등이 포함된 제조업, 환경 복원 분야 비중은 작년 25%에서 올해 33%로 늘어났다”고 말했다.그린 벤처 중에는 매출액 1000억 원 이상의 중견 업체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그간 ‘1000억 클럽’에 들어간 벤처는 IT 기업과 반도체·LCD 제조업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린 벤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엔투비, 현진소재, 서울반도체, 엔케이 등이 매출액 1000억 원을 넘어섰다. 당기순이익이 1000억 원을 넘는 기업은 씨에스윈드, 엘에치이, 엔케이, 국제엘렉트릭코리아, 인선이엔티 등이다.세대에너텍은 매출액이 현저히 상승한 경우다. 매출액이 2007년 456억 원에서 세 배가량 껑충 뛰어 올라 2008년에는 1591억 원을 달성했다.세대에너텍 관계자는 “발전설비 및 석유화학, 환경 산업 분야의 설비를 공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김해공장과 창원공장 등을 설립, 고객의 욕구를 적기에 만족시킬 수 있는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우진산전 매출액도 2007년 531억 원에서 작년 1156억 원으로 1년 사이 두 배 이상 뛰었고 인선이엔티도 작년 매출액이 1년 전보다 200억 원 증가한 1061억 원을 기록했다. 팅크웨어는 2007년 1622억 원에서 2008년 2143억 원으로 상승해 2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동화엔택은 2007년 1220억 원에서 2008년 1809억 원으로 증가했다. 가장 높은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씨에스윈드(CS Wind)는 짧은 기간 급성장했다. 2006년 당기순이익 6억 원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75억 원, 2008년에는 294억 원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전체 1만7000여 벤처기업 가운데 10위다. 매출액도 작년 2007년에 비해 4배 한 1486억 원을 기록했다.씨에스윈드 관계자는 “현재는 품질과 기술면에서 인정받으면서 매년 10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향후 세계 풍력 발전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베트남 제 1, 2공장, 중국 공장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공장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최근 그린 벤처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의 영향이 크다. 정부는 작년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성장과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녹색 기술 및 청정에너지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인 ‘저탄소 녹색 성장’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 성장’을 위해 조성하고 있는 7500억 원 규모의 신성장 동력 펀드 중에서 1000억~2000억 원이 녹색산업에 투자될 전망이다. 특히 그린 펀드는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LED, 전기자동차, 차세대 배터리 등 산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또 중소기업청은 녹색 중소기업 창업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녹색 기업 창업 인프라를 구축할 방침이다. 녹색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을 2012년까지 20%로 확대할 계획이며 녹색산업 영위 기업에 대한 민간 자금 조달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 상당수 그린 벤처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보다는 정부의 각종 지원책에만 의존하고 있어 자칫 ‘그린 버블’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창업진흥원 송윤희 박사는 “예전 IT 버블 때처럼 그린 버블도 발생할 우려가 없지 않다”며 “정부가 녹색산업 정의를 명확히 내려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산업의 기준과 범위 등이 확실하면 버블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벤처기업협회 이미순 박사는 “자칫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만 믿고 의욕만 너무 앞설 경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기술적 역량 증가와 마켓 창출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이 없을 경우 도산할 수 있다”면서 “너도나도 참여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그린 벤처 창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창업에 성공하기 위한 전략 등이 초미의 관심사다. 박행귀 벤처기업협회 경영기술지원팀 팀장은 “무조건 그린 벤처 창업에 뛰어들기보다 기술력과 협력 파트너 등을 구축하라”고 조언했다. 또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R&D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는 등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전 세계적으로 녹색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벤처기업들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많은 기업들이 동일한 시장에서 유사 기술로 승부를 걸게 돼 과거 타 산업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대규모 자금과 조직을 갖춘 모든 기업들이 녹색산업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린 벤처 창업 기업들이 초기 단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인력과 자금 등 내부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녹색산업은 현재 세계 각국 대부분이 정부 정책 주도로 진행되고 있고 국내에도 다양한 R&D 자금과 지원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다. 미국 정부의 R&D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는 등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녹색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과 정부 정책으로 사업 환경이 웬만큼 조성됐다고 볼 때, 초기 벤처 창업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된 기술이 시장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자본을 가진 투자가는 시장성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확고한 지식재산권, 즉 특허를 갖고 있어야 한다. 글로벌 FTA 시대에는 지재권 없는 사업은 영속성을 갖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기술과 연관돼 있는 수직적 관계 네트워크에 자기만의 협력 파트너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협력 방식은 기업 간 자본 결합, 기술 제휴, 유통 협력 등 사업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채택할 수 있다.”“전체 신설 법인은 지난 5월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2% 감소했지만 LED 등 그린 벤처기업들이 속해 있는 전기·전자, 기계·금속, 화학 분야 신설 법인 수는 42.5%의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EU 등 선진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녹색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관련 분야 창업 증가 추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