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의 화려한 부활
금융 위기 여파로 지난해 최악의 손실을 기록하며 ‘빈사 상태’에 빠졌던 헤지 펀드 업계가 회생하고 있다. 수익률이 되살아나면서 투자 자금이 다시 유입될 것이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헤지 펀드 자문 업체인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지난 5월 헤지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5.2%에 달했다. 이는 정보기술(IT) 거품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2월 이후 9년 3개월 만에 최고다. 또 다른 자문 업체인 헤네시그룹이 발표하는 ‘헤네시 헤지 펀드 지수도’ 5월에 5.7% 뛰었다. 올 들어 이 지수는 11.4% 상승했다.이 같은 수익률 반등은 사상 최악의 손실을 겪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HFR에 따르면 지난해 헤지 펀드 업계는 평균 19%의 손실을 봤다. 게다가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 시달렸다. 지난해 여름 1조9000억 달러에 달했던 자산 규모는 32%(6000억 달러) 감소, 1조30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1500개에 달하는 헤지 펀드들이 문을 닫았고 일부 새로운 헤지 펀드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2007년 1만96개에 달했던 헤지 펀드 수는 지난 1993년 수준인 8860개로 감소했다.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살아남은 헤지 펀드 매니저들의 경우 경쟁자 수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빌 펑과 나라얀 나이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헤지 펀드가 시장 수익률 대비 가장 높은 성과를 냈던 시기는 1998년 헤지 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붕괴되면서 금융시장을 한차례 뒤흔들고 나서였다.지난해 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땐 헤지 펀드 매니저들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이용해 돈을 벌 궁리를 하기 힘들었다. 환매해 달라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현금을 확보해 둬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지 펀드에 돈을 빌려주던 증권사들도 펀드매니저들이 빌려갈 수 있는 돈의 액수를 제한하는 등 돈줄을 바짝 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금융 위기 이전 수준엔 못 미치지만 어느 정도 돈이 돌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헤지 펀드를 포함해 기관투자가 600곳을 설문 조사한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일단 투자자들이 신뢰를 회복하면 상당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펀드오브펀즈 연기금 민간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이 지난 1월 기준 헤지 펀드 투자 포트폴리오의 약 17.8%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1년 전의 7.5%에 비해 현금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휴 반 스티니스 모건스탠리 유럽금융담당 애널리스트는 헤지 펀드 가운데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은 ‘주식 롱숏 전략(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매수하고,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매도)’과 ‘글로벌 매크로 전략(거시경제 중·장기 전망에 근거해 투자)’ 펀드로는 이미 자금이 순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신규 헤지 펀드의 설립 건수와 자산 규모도 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르빈드 라구나산 전 도이체방크 글로벌 재정거래(arbitrage)부문 대표는 7월 중 ‘록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헤지 펀드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는 올해 세워진 헤지 펀드 중 최대 규모다.신규 헤지 펀드 설립은 주로 금융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을 떠났거나 지난해 손실 때문에 기존 헤지 펀드 운용사에서 제대로 보너스를 받지 못한 매니저들이 주도하고 있다. BNP파리바뉴욕에서 투자자들과 헤지 펀드를 연결해 주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엠마 슈가르먼은 “지난 5월부터 기관투자가나 거부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들이 능력 있는 신규 헤지 펀드 매니저를 소개해 달라고 문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헤지 펀드 부활의 조짐은 환매 감소와 상장 헤지 펀드들의 주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20∼25%에 달했던 헤지 펀드 환매율은 1분기에 10%로 떨어졌다. 또 런던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헤지 펀드들은 지난 12월 순자산 가치보다 30.4%나 할인된 가격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할인율이 18.5%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헤지 펀드 투자가 다시 활성화되더라도 투자자들의 태도는 금융 위기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돈이 별도의 계정(관리계좌)으로 투명하게 운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