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태 파이온테크놀러지 사장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평촌아크로타워. 평촌신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 안에 파이온테크놀러지(대표 정승태)가 있다.이 사무실 안에 들어서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유리로 된 뾰족지붕 모양의 작은 박스 위에 책을 얹어놓으면 책 내용이 음성으로 변환돼 흘러나온다. 한글 동화책을 얹어놓으면 우리말로 읽어 준다. 영어책은 영어로 나온다. ‘도서 음성 변환기’다.“아마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제품일 것”이라고 정승태(50) 사장은 설명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 원리는 이렇다. 유리지붕 위에 책을 올려놓으면 안에 있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찍힌 문자를 그 안에 들어 있는 장치가 해독하고 이를 음성으로 전환한다. 그것도 불과 몇 초 걸리지 않고 금방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보는 사람은 깜짝 놀란다.이 회사가 개발한 것은 신기한 게 많다. 최근에 수도권 지하철에 설치된 ‘광역전철 신분증 인식 장치’도 마찬가지다. 고령자나 복지 카드 소지자, 국가유공자는 우대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그러려면 신분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동시에 신분증이 위조나 변조된 것은 아닌지 가려내야 한다. 더구나 길게 줄을 서는 러시아워에 우대권을 발급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순간적으로 이런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기존의 스캐너 방식은 사진과 글자를 스캔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회사의 시스템은 사진을 찍어 진위 여부와 우대권 해당 여부를 순간적으로 파악한다. 만일 누군가가 남의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떼어내고 자신의 사진을 붙였다면 신분증 조회 때 빨간 글씨로 위조됐다는 게 표시된다. 골퍼의 회전 동작을 센서를 달아 감지해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장치도 만들었다.정 사장은 이같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KAIST 물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어릴 적부터 부수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제주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새로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문짝만은 자신이 직접 만들겠다고 떼를 써서 톱과 대패 끌을 들고 나무 문짝을 만들기도 했다. 집 앞에 있는 바닷가에 큰 배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자신도 직접 나무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다가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곧바로 뒤집어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그는 이런 개발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대학원 졸업 후 1985년 삼성종합기술원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그의 끼는 유감없이 발휘돼 그 누구보다 많은 특허를 출원했다. 16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한 뒤 2001년 독립했다. 결국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5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물리학과 광학을 전공한 그는 특히 광학과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제품을 속속 개발했다. 개발은 그의 유일한 취미이기도 하다. 창업 후 첫 제품은 ‘1.3메가 픽셀 카메라’와 ‘화상통신용 카메라’였다.그 뒤 ‘소형 평면 피사체 촬영 장치’도 개발했다. 학생이 노트에 필기를 하면 선생님의 컴퓨터에 리얼타임으로 필기 내용이 뜨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원격으로 학생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지적하고 지도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을 선생님이 컴퓨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원격으로 이 학생이 어느 부분에서 실수하는지 찾아내 바로잡아 줄 수 있게 된다.초고속 명함 정리기를 만든데 이어 ‘신분증 스캐너’를 개발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납품했고 기업체용 신분증 인식기와 고객 출입 시스템도 제품화했다. 이같이 기업체용 신분증 인식기를 주로 만들어 공급하다가 작년에 서울 지하철에 위·변조 식별 신분증 인식기 납품 계약을 하면서 도약의 기틀을 만들었다.“그동안 제품 개발에만 열중해 실제 매출로 연결된 것은 많지 않았다”고 정 사장은 설명한다. 매출은 2007년 4억 원에서 작년엔 8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그동안 제품 개발과 회사 운영엔 많은 돈이 투입됐다. 자신의 아파트로 담보대출을 받고 외부 투자를 받아 회사를 운영해 왔지만 아직까지 매출은 미미한 편이다. 정 사장은 “올해는 이미 5월 말까지 12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연말까지 목표는 30억 원으로 잡고 있다”고 밝힌다.정 사장은 창업 후 12건의 발명 특허를 출원하는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접이식 휴대용 카트, 촉감형 마우스 장치,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골프 스윙 분석용 장치, 골프 스윙 분석 레이저포인터, 시온 도료가 도포된 골프 연습용 타깃, 영상 카메라를 이용한 컴퓨터용 좌표 입력 장치, 스포츠 동작 촬영을 위한 디지털카메라 등이 들어 있다. 또 10건의 실용신안을 출원했거나 등록했는데 이 중에는 LED를 이용한 독서용 전등,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용 컴퓨터, 소형 평면 피사체 촬영 장치도 들어 있다.이 가운데 그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는 ‘신분증 스캔 시스템’과 ‘치과용 덴털 스코프(Dental Scope)’, 그리고 ‘도서음성 변환기’다. 이 가운데 신분증 스캔 시스템은 이미 서울메트로 등에 납품을 시작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치과용 덴털 스코프는 고정밀 카메라와 동영상 압축 기술을 채택한 치과용 디지털카메라다. “소형 포터블 기기인데다 충전 방식이어서 사용할 때 전원 코드가 필요 없기 때문에 이동이 간편한 게 특징”이라고 정 사장은 설명한다.“도서 음성 변환기는 시각장애인이나 노안 등으로 인해 독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으로 이미 개발을 마친 상태”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할 것”이라고 정 사장은 밝힌다. 그는 “시중에는 오디오북도 나오고 있지만 종류가 한정돼 있는 반면 도서 음성 변환기는 어떤 책도 바로 음성으로 들을 수 있어 콘텐츠의 양과 질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또 “영어 동화책을 얹어놓으면 바로 읽어주기 때문에 어린이 교육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영어는 한글보다 더욱 정확하게 인식하고 발음하기 때문에 수출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정 사장은 “한글 인식률은 93%이지만 영어 인식률은 99%에 달한다”며 “일단 제대로 인식한 것은 정확하게 음성으로 전환해 전달한다”고 설명한다.정 사장은 창업 후 여타 중소기업인이 겪는 것처럼 숱한 어려움을 경험했다. 나름대로 유망한 제품이라고 생각해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했고 자금난에 봉착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때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겪기도 했다.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은 전혀 별개인 것을 그는 제조업체를 경영하면서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그런데도 그의 표정이 비교적 밝은 것은 몇 년 전 자금과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함께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데다 그동안 제품 개발을 위해 뿌린 씨앗이 점차 싹을 틔우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와 의료 분야에도 진출할 구상을 세워 놓고 있다.“사명인 파이온테크놀러지에서 파이는 원을 의미한다”며 “원처럼 둥글게 사회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게 정 사장의 소망이자 꿈이다. 그는 “뭔가 한 가지라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며 “내 자신이 갖고 있는 물리학과 광학 기술을 접목해 끊임없이 신제품 개발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힌다.약력: 1959년 제주생. 83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85년 KAIST 물리학과 석사 및 박사(99년). 1985~2001년 삼성종합기술원 선임 연구원. 2001년 파이온테크놀러지 창업 및 대표(현).〈 회사 개요〉창업: 2001년본사: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주요 제품: 신분증 스캔 시스템, 도서 음성 변환기 등납품처: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등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