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미소 뒤에 발톱을 감춘 채….’국제 외교 무대에선 의전, 형식 등 겉으로 나타나는 ‘예의’들을 매우 중요시한다. 카메라 앞에선 다정한 것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악수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정상들이 만났을 때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이런 막전 상황과 달리 막후를 들여다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공개 석상에선 점잔을 빼는 정상들은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현안에 대해선 체면을 버리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목소리의 톤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얼굴을 붉히며 면전에서 서로 치열한 말다툼을 벌이는 예가 허다하다.지난 4월 2일 영국 런던 엑셀센터에서 열렸던 G20 금융 정상회의가 단적인 예다. 여러 현안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설전과 물밑 수 싸움, 중재, 주고 받기식 타협 등으로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각국 정상들은 하루 내내 회의장에 갇혀 혹독한 외교력 시험을 치렀다.G20 정상들은 크게 네 가지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첫 번째 유럽의 금융 규제 및 감독 강화 주장과 미국의 거시경제 정책 우선이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정상들은 글로벌 위기의 주범인 금융 체제를 새롭게 개편해 국제기구를 만들자는 기존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이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거시경제 정책 측면에서 경기 부양이 시급하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양측 정상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꺾지 않으면서 정면에서 고성을 곁들여 말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타협은 이뤄졌다. 유럽은 새 국제기구를 만들지 않는 대신 금융안정화포럼(FSF)을 금융안정화이사회(FSB)로 개편해 글로벌 금융 경찰 기능을 강화하는 선으로, 미국은 재정지출 2% 증가 대신 내년까지 세계 경기 부양에 총 5조 달러를 투자하는 수준으로 각각 한발 물러섰다.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FSF를 FSB로 확대 개편하기로 하자 이번엔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한 신흥국 정상들이 발끈했다. 선진국들이 FSF를 FSB로 확대 개편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포럼 형태론 국제금융 경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었지만 속셈이 따로 있었다. 이미 회원국 수가 크게 늘어난 FSF의 느슨한 체제로는 선진국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힘든 구조가 됐다. 선진 금융 체제를 갖춘 국가들 위주로 좀 더 구속력이 있는 이사회를 만들면 G7(서방 선진 7개국)의 통제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렸다. 신흥국의 반발에 선진국 정상들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후진타오 주석 등은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조세 피난처 문제는 막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정면충돌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조세 피난처 등 금융시장 규제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회의장을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후진타오 주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세 피난처 리스트를 G20이 승인하는 것에 결사반대했다. 결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을 구석으로 불러내 설득하면서 겨우 타협점을 찾았다.차기 G20 정상회의 개최지 문제를 놓고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아소 다로 일본 총리, 케빈 러드 호주 총리가 막후 양보 없는 결전을 벌였지만 다른 정상들이 “세 나라 모두 아직 역량이 안 된다”고 제동을 걸면서 미국 뉴욕으로 낙착됐다.지난해 워싱턴에서 가졌던 첫 G20 회의 때도 일부 국가의 보호주의 움직임과 관련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간의 의견 대립이 심했다는 게 외교관들의 전언이다. 국제금융 기구 설치 문제를 놓고도 말싸움이 이어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지만 유일한 파워인가? 그렇지 않다”며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정면으로 맞섰다.아소 일본 총리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4월 11일 태국 파타야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놓고 한 시간 가까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두 정상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회담이 상당히 지연되면서 아소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장에 40분가량 늦게 도착하는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