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자가 본 1년
지난 1월 말 고용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울산을 다녀왔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유학생 시절 여행 삼아 울산을 방문했을 때 추운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장대한 스케일의 공장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보고 압도된 느낌을 받았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그러나 2년 만의 울산은 한창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울산 시내의 종합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일자리를 잃은 이 지역의 실업자들이 실업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가 작년 말에 수주 부진으로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었다는 30대의 남성은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갑자기 일감이 줄었다”며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40대의 한 남성은 “수출이 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됐던 1997~98년의 외환위기 때보다 세계 전체의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의 상황이 훨씬 더 나쁘다”고 말했다.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거점인 공업도시이지만 취재할 때 갖고 있던 지난해 12월의 데이터로 본다면 1년 전과 비교한 실업 증가율은 한국에서 가장 높았다. ‘산업 수도’의 침체는 수출과 생산의 급격한 감소에 휘말린 한국 경제의 오늘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나는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서울에 부임해 왔다. 정치 및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무엇이든 취재하지만 주로 경제를 담당한다. 세계적 금융 위기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썼던 200건 이상의 기사도 경제 관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번에 이들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한국 경제, 성장률 둔화’ ‘경상수지 적자로’ ‘치솟는 연료 값에 화난 트럭 운전사들 파업’ ‘원화 추락, 바닥이 없다’ ‘주택거품에 이상기류’ ‘쌍용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등. 확실히 한국 경제의 난기류와 역경을 전하는 기사가 많았다. 기사 제목을 쭉 훑어보면서 험난한 1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보통 서울 등에서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 들어가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확실히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졌다. ‘손님이 반으로 줄어 힘겹다’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피곤하다, 은퇴하면 아이들이 유학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살고 싶다’는 등이다.이러한 1년이 될 것을 이 대통령은 예상이나 했을까. 대통령선거에서 ‘7% 성장’을 내걸고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경제성장률은 2.5%로 전년의 반에 불과하고 고용은 작년 말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숫자만으로 판단하면 이명박 정부 1년은 완전히 ‘기대 이하’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경제 악화는 한국만이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세계 전체의 경기가 회복된다면 한국도 일정 수준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1년간의 취재를 통해 한국의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성장의 엔진을 수출에 의지하는 경제 및 특히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원유 값이 급락한 덕에 한숨을 돌렸지만 에너지 효율이 나쁜 산업구조도 약점이다. 대일 무역 적자도 ‘압축 성장’ 전략에 바탕을 둔 핵심 기술의 축적 부족이 원인인 셈이다.내수 부진도 단순한 경기 요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확대되는 빈부 격차 및 불충분한 사회복지, 비정규직의 증가 등 불안정한 고용 문제가 한데 얽혀 있다.이상 언급한 어느 것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오래됐으면서도 새로운 문제’다.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통화 위기를 극복한 한국 경제이지만 사실은 그 과정에서 상당히 무리해 왔으며 그 탄력이 점차 한계를 맞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환기의 한국에서 현 정부에 던져진 과제는 ‘위기로부터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위기에 다시 빠지지 않는 체질 만들기’를 위한 발상과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는 도쿄와 후쿠오카에서 5년 정도 주로 경제 분야를 취재한 후 서울에 왔다. 특히 후쿠오카에서는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 두 나라의 경제협력 및 인적 교류 확대를 피부로 실감했다.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큰 관심사다. 앞으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싶다.약력: 1972년 생. 1997년 아사히신문사 입사. 도쿄와 후쿠오카의 경제부 근무. 도쿄의 외교, 국제문제 취재그룹 등을 거쳐 2008년 4월부터 서울특파원으로 근무 중.이나다 키요히데·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