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후 승자기업 노리는 산업 정책

중국이 연초부터 주력 산업 육성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내수와 수출 촉진을 통한 경기 부양과 함께 금융 위기 이후 승자 기업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4조 위안(80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에 이은 추가 부양책이라는 지적이다.중국 정부는 지난 1월 철강 및 자동차 육성책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린데 이어 이달 초 섬유와 기계장비 진흥책을 발표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해 말 10대 지주산업 육성책을 내놓겠다고 밝힌데 따른 것으로 석유·화학 경공업 비철금속 전자정보 조선 부동산 등 나머지 6개 산업 육성책도 이달 중 나올 예정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기술 및 독자 브랜드 개발 지원과 함께 인수·합병(M&A)을 적극 유도하는 게 골자다.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육성 대상에 한국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 부문이 적지 않아 우리 정부와 산업계에서도 이들 정책이 미칠 영향을 곰곰이 따져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출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률이 14%에서 15%로 인상된다. 지난해 8월 이후 4번째 인상이다. 수출 시 세금을 더 많이 돌려줌으로써 수출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농촌 시장 개발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또 첨단 기술 개발과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는 유명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자금을 재정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싸구려 의류나 만들던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다.반면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거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기업의 퇴출을 촉진하고 M&A 기업을 우대함으로써 구조조정도 가속화하기로 했다. 특히 동부 연안지역을 고부가가치 섬유 생산 기지로 업그레이드하는 대신 섬유 가공무역업을 중·서부로 이전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가공무역에 치중해 온 한국의 섬유 업체들도 중·서부로 공장을 옮기든지,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전환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또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면제품 생산 기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중국의 섬유 기업은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 발생 후 20% 정도가 도산했다고 중국 경제일보가 전했다.= 중국 정부는 재정 자금을 동원해 철강 자동차 섬유 관련 장비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초고압 변전기, 광산 채굴 장비, 고속철도, 기초 기계 개발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 국산 장비를 처음 사용하는 기업에 발생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바이 차이나(중국산 제품 구매)’를 유도하기로 했다. 특히 국내 대규모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들이 참여, 첨단 기계를 개발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향후 경기 회복을 하더라도 기초 기계 등 중간재 중심의 한국의 대중 수출은 쉽게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해 한때 하루 1억 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를 누리던 한국은 중국이 국산화하는 중간재가 늘면서 대중 무역 흑자가 감소해 왔다. 최근 중국의 경기 둔화로 수입 수요가 더욱 줄면서 대중 수출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1월 전년 동기 대비 32.2% 감소했다. 기초 산업 기계의 경우 무려 65.2% 감소했다.중국 정부는 기계장비에 대한 무역 신용 확대를 통해 수출도 지원한다. 그러나 국산화하지 못한 첨단 부품 및 원재료에 대해서는 수입 관세를 낮춰주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올 한 해 동안 1600cc 이하 승용차 취득세율을 10%에서 5%로 낮춰주기로 했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다. 또 농촌에서 3월부터 연말까지 삼륜차와 저속 화물차로 경차 화물차 또는 1300cc 이하 소형 버스로 전환 시 재정 보조를 해주기로 했다. 가전제품에 이어 자동차도 농촌 소비를 키워 내수를 부양하려는 샤샹(下鄕) 정책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기술 개발 및 독자 브랜드 개발을 돕기 위해 3년간 100억 위안(2조 원)을 지원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중대형 도시에서의 신에너지 및 에너지 절약형 차량 시범 운영도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 위기 이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우위를 갖기 위한 포석이다. 지난 1월 사상 처음 미국을 제치고 월간 기준으로 세계 1위 자동차 판매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내수 시장에서 토종 자동차 업체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자동차 및 부품 수출 기지 건설도 가속화하기로 하는 등 중국 자동차 업계의 해외 진출도 적극 돕기로 했다. 이미 중국 정부는 국책은행을 통해 국영 치루이자동차와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인 지리자동차에 자금을 지원했다. 지리자동차는 중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을 토대로 미국 포드자동차 계열의 볼보자동차 인수를 추진 중이다. 치루이자동차는 중국수출입은행이 제공한 100억 위안(2조 원)을 해외 사업 확대 및 첨단 기술 수입 등을 위해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자금과 세제 지원을 통해 철강 업체들의 M&A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낙후된 시설 도태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도태 대상을 종전 300㎥ 이하 고로에서 400㎥ 이하 고로로 확대했다. 철강 유통시장도 정비하기로 했다. 시장의 과당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식 커미션 대리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증치세 환급률 인상 방침도 정했다. 1분기 중 냉연 및 도금강판 수출 증치세 환급률이 5%에서 8%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수출 억제에서 수출 촉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5000억 위안(100조 원) 규모에 이르는 석유화학산업 진흥책도 심의 중이다. △석유제품 품질 제고에 1000억 위안(20조 원) △신규 석유화학 프로젝트와 해외 석유 자원 확보에 4000억 위안(80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가 급락세를 보인 이때가 석유 비축을 늘릴 시점이라는 중국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중국 정부는 4대 석유 비축 기지를 지난해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추가로 8개의 석유 비축 기지를 세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3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인터넷망, 디지털방송 등을 구축하는데 6000억 위안(120조 원)을 투입해 내수를 부양하는 전자정보산업진흥책을 검토 중이라고 중국증권보가 전했다. 이 과정에서도 중국 정부는 자국산 장비 사용을 적극 유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에 있는 조사 기관인 BDA차이나에 따르면 중국 3세대 이통시장에서는 외국 장비 업체들이 누렸던 지배적인 지위가 토종 업체에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릭슨, 알카텔-루슨트, 노키아시멘스 등이 중국의 3세대 이통장비 시장에서 차지할 점유율은 다 합쳐도 50%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화웨이와 중싱통신 등 중국 업체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2세대까지 중국 이동통신 장비 시장에서는 에릭슨과 모토로라가 무려 90%를 점유해 왔지만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는 또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디지털TV 개발도 적극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이 외에도 중국은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는 조선 산업에 대해서도 기술 수준을 높이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내용의 진흥책을 마련 중이다.중국 언론들은 10대 산업 중 부동산을 제외한 9개 산업은 중국 공업 생산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과 고용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를 웃돈다며 이들 주력 산업 육성책의 경기 부양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