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론 유감
최근 여러 신문들에 ‘강남권 아파트 가격 상승분 60%는 거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값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는 내용이다. 한 연구 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였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2월부터 6년간 서울 강남구 아파트 값은 평당 2507만 원 올랐다. 이 중 68%인 1710만 원은 거품이라는 것이다.상당히 쇼킹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내포돼 있다.첫째, 이 보고서는 자산 가격이 현재의 배당금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을 전제 조건으로 삼으면서 배당금의 증가보다 높은 자산 가격의 증가는 거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파트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이를 버블 가격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거품에 대한 정의는 일반인의 통념과는 차이가 있다. 주식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연간 12%의 현금 배당을 하는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이 있다고 하자. 수신 금리를 6%라고 가정하고 이 회사의 주가가 2만 원이라면 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얻어지는 주당 배당금 600원은 주식을 현금화해 예금했을 때 얻어지는 이자 1200원보다 적으므로 이 회사의 주식에는 50%의 거품이 끼었다는 이론이다.그러나 주식 시장에서 이런 이론에 근거해 투자하는 투자자는 한 명도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주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현금과 주식을 포함한 배당수익률은 1.5%에 불과하다. 주가가 현재의 4분의 1 토막이 되기 전까지는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놓는 것이 수익률이 낮다는 얘기다. 이런 기준으로 투자한다면 주식시장에서 살 수 있는 주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그러면 이런 현실과 이론의 차이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주가는 현재의 수익이 아니라 미래의 수익을 근거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교통이 나쁜 어떤 지역에 전철이 착공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고 하자. 전철이 개통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5년 이내에는 개통되기 어렵다.그러면 그 사이에 집값과 전세 가격은 어떻게 변할까. 전철 건설 계획이 발표되기 전의 집값이 2억 원이라면 전세가는 1억 원 정도로 전세가 비율이 50%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철 공사가 착공되기 시작하면 집값이 슬금슬금 오른다. 5년 동안 2억 원이던 집값이 4억 원까지 치솟았다고 가정하자. 그동안 전세가는 어떻게 될까. 물가 상승률만큼 전세금이 오를 수 있지만 오르지 않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공사 중 생기는 분진이나 교통 체증 등의 불편함 때문이다.거품론의 시각에서 보면 매매가와 전세가가 괴리돼 있으므로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철이 개통된 후에는 어떻게 될까. 살기가 편해지므로 전세가도 따라서 오를 것이다. 몇 년 후 전세금이 2억 원이 됐고 같은 기간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면 전세가 비율은 다시 50%로 높아지는 것이다.이 보고서의 전제 조건인 자산 가격은 배당금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맞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자산 가격은 ‘현재’의 배당금이 아니라 ‘미래’의 배당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거품론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를 예로 들어봐도 마찬가지다. 낡은 66㎡(옛 20평)대 아파트의 수익 가치, 즉 전세금은 아주 싸게 형성돼 있다. 아무리 입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20~30년이 지난 낡은 아파트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그러나 재건축 아파트의 매매가는 상당히 높게 형성돼 있다. 그것은 재건축 공사가 완공된 후 얻게 될 132㎡(옛 40평)대 새 아파트의 사용 가치를 근거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자산의 가치는 현재의 배당금보다 미래의 배당금을 기준으로 형성되는 것이다.두 번째 문제점은 배당금을 계산하는 기준으로 전세금을 잡았다는 데 있다. 연구원들이 보고서에도 밝혔듯이 월 임대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세금을 대리변수로 삼고, 전세금을 금융 회사에 예치해 얻어지는 이자를 배당금으로 추정했다.대부분의 선진국은 우리와 달리 전세 제도가 없고 월 임대료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비싸다. 그러므로 임대료 수입의 목적만으로 자산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고, 수백 채를 임대하는 기업도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개발된 분석 방법으로 전세금을 분석하니 거품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그러나 2억 원의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해 그 이자를 얻으려고 4억 원짜리 주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4억 원짜리 집을 2억 원에 전세를 주는 이유는 지렛대효과를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 돈 2억 원만 가지고 4억 원짜리 집의 상승분을 모두 취하려는 것이 전세를 주는 목적이다.세 번 째 문제점은 보고서에서 인용한 기간을 작위적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2001년은 주택뿐만 아니라 주식 등 모든 자산이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다. 경제 상황이 안정되고 유동성이 증가하자 그동안 저평가됐던 자산들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만을 떼어 놓고 보면 주택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오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어떤 해의 코스피지수가 1000이었다고 하자. 다음해에는 800으로 떨어졌다가 그 다음해에는 1200으로 반등했다고 하자. 2년 동안 투자한 사람의 연평균 수익률은 단리 기준으로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1년간만 투자한 투자자 입장에서의 수익률은 무려 50%에 달한다. 전자는 주식시장을 은행보다 약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곳으로 인식할 것이고 후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할 것이다. 어느 해를 샘플링하느냐에 따라 그 분석의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그러면 몇 년간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앞서 지적한 대로 1990년대 말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와 그 이후 반등기를 맞아 자산 시장도 왜곡된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외환위기가 터지기 이전인 1997년 이전부터의 통계 수치를 인용해야만 왜곡된 결과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의 주택 상승률을 살펴보면 전국 주택 상승률은 78.3%, 서울시는 137.4%, 강북 지역은 73.3%, 강남 지역은 185.4%였다. 반면 1997년 482조 원이었던 통화량(M₂ 기준)은 2007년 1197조 원으로 148%가 늘었다. 강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만큼 집값이 오른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물론 여기에도 반론은 있을 수 있다. 1997년 이전 가격에도 거품이 심하게 끼어 있다면 그 가격을 기준으로 거품이 더 끼었는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7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국민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8.5년에 한 번씩 주택을 갈아타기 한다고 한다. 서울은 9.2년이고 5대 신도시는 9.7년이다.이 말은 10년이면 평균적으로 한 번씩 새 주택을 산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10년이라는 기간은 시장 가격을 인정한 사람들에 의해 평균적으로 한 번씩은 모두 거래됐다는 의미다. 어떤 짧은 기간 내에 시장에서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국적으로 거래된 것을 모두 거품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시장 가격에 거품이 끼었는지, 저평가됐는지는 시장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마케팅 회사의 최고재무관리책임자(CFO)로 재직 중이며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이자 저명한 부동산 칼럼니스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인 사고와 통계적 근거를 앞세우는 과학적 분석으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기조를 정확히 예측한 바 있으며 기존의 부동산 투자 이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신간 ‘부동산 비타민’을 내놓았다.아기곰 a-cute-bear@hanmail.net©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