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 공무원 박신형 씨

기계 설계→ 프로그래머→ 공무원. 성북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신형(34) 씨는 길지 않은 그간의 인생에서 두 번의 도약을 거쳤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도약’이라기보다는 ‘변화’에 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박 씨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길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얘기하고 있다.2000년 국민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박 씨는 졸업 전 자동차 부품 업체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그룹 계열 회사였다. 박 씨는 그 비결을 학점 관리와 영어 공부를 착실히 한 결과라고 했다. 지금은 토익 고득점자가 넘쳐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토익 점수는 공대생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940점이었다.입사 후 부품설계팀으로 발령받은 그는 평택의 공장으로 내려갔다. 당시 그는 회사가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순 반복적인 일만 하면서 개인적인 비전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원치 않은 지방 근무도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한 원인이 됐다.결국 입사 6개월 만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만 막상 뭘 할지 결정하는데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마침 전산 일을 하고 있는 누나를 통해 대기업 계열의 시스템통합(SI) 회사에서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동부 지원으로 50%의 수업료를 감면받을 수 있어 5개월 동안 200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들었다. 착실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는지 2002년 1월 그 대기업에 프로그래머로 취업할 수 있었다.이때의 기대는 첫 직장과는 남달랐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업종에 뛰어든 데다 첨단산업이니만큼 능력 발휘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대신 시간이 가면서 사기업체의 과중한 업무, 계속적인 실적 압박감, 경쟁 부담감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창의적 업무는 조직의 논리에 치여 보이지 않았다.2년의 직장 생활 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지친 그에게 ‘나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덧 서른이 넘으면서 무작정 관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했던 그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새벽 5시에 일어나 수험서를 보기 시작해 출근길, 퇴근길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퇴근 후에도 밤 12시까지, 주말에도 바깥출입을 삼가고 책을 봤다. 이렇게 제2의 ‘고3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를 그는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바빴음에도 결혼 준비까지 했다.이렇게 9개월(실제 공부한 시간은 7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현재의 직장에 만족하고 있을까. “안정적이라는 점과 개인 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업무적으로도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여러 기관을 돌아가며 다른 업무를 하면서 많은 일을 배울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그렇지만 대기업에서 받던 월급과 비교해 보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봉급이 줄어든 데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받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충분히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박 씨의 전직 과정을 보면 전문가들의 조언대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업에서 준비하라’는 것. 회사를 다니면서도 공무원 시험에 7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 준비를 했더라면 그동안 수입이 없을뿐더러 그 이전에 모아놓은 돈도 썼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결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대의 첫 전직은 전산 업종에 종사하는 누나의 조언을 충분히 듣고서 선택했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실패가 없었다. 약력: 1975년생. 2000년 12월 국민대 기계공학과 졸업. 자동차 부품 회사 설계팀에 입사. 6개월 만에 퇴사. 2002년 1월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 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입사. 2004년 12월부터 9급 공무원시험 준비. 2005년 9월 시험 합격. 성북구청 근무(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