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숱한 일화를 생각하면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내 아버지다. 내 아버지는 부지런한 농부이자 명의로 이름난 한의사였다. 잔잔한 바다와 소나무 병풍이 그림처럼 어우러진 고향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서 조용히,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며 사셨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던 아버지였기에 주변엔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환자뿐만 아니라 걸인, 행상 등 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성껏 차린 음식까지 대접하게 할 정도로 그 배포와 정이 크고 깊었다. 아버지는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로서 용기를 주신 분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우리 집엔 상주하며 대농을 건사하는 일꾼이 늘 1~2명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그 아저씨들에게 늘 하신 이야기가 있다.“일할 때 코에 넣은 생콩이 콧김으로 익기까지 일하면 부자가 된다. 그렇게 일해서 주인이 되어라. 주인은 의식이 다르다. 병든 주인 한 명이 일하는 젊은 사람 99명을 이끌 수 있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는 ‘사고의 차이’를 말씀하신 것이다. 주인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이 말은 지금의 나를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아버지에게 정말 크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이발소에 가서 이발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오라고 시키셨다. 그때 나는 남자들만 이용하는 그곳에 가서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본 후 아버지에게 가서 “한 천 원”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단박에 “천 원이면 천 원이지, ‘한’이 무어냐. 그렇게 매사에 대충 일을 하면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고 꾸짖으셨다.어렸을 때는 이런 아버지가 아주 싫었다. 더구나 어렸을 때 나는 아픈 곳이 많은 허약 체질이었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학교에 가지 말고 하루 쉬라고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정반대였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너는 뭐냐”고 물어보시고 내가 “나는 학생이다”라고 대답하면 “그럼 네가 할 일은 지금 학교에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파서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야 한다”며 기어이 학교로 보내셨다. 성인이 된 후 위에 병이 나 치료해도 잘 낫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군대에 가서 2년 정도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생활하면 낫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정말로 군대에 입대했고 2년 5개월 만에 병이 다 나았다. 또 나약한 정신력이 강인하게 바뀌었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리더십, 투철한 국가관까지 갖게 되었다. “너는 몸은 아프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시면서 항상 용기를 주고 믿어 주신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의 남다른 품성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또 있다. 아버지는 왼손 약지가 짧았다. 철이 들면서 어머니로부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할머니께서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실 때 아버지는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치유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어느 날 비구니가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오로지 할머니에게 큰절만 하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때가 4월쯤이라 농사일이 무척 바빴을 때지만 식사 시간만 빼고 무릎에 피가 날 때까지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그러나 할머니는 차도가 없으셨고 효성이 지극하신 아버지께서는 급기야 당신의 약지를 잘라 할머니께 피를 먹여 드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할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켰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뜨거운 효성은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겸손과 효심을 갖게 한 우리 집안의 뿌리이자 불멸의 정신이다.어떤 말로 내 아버지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한 숱한 일화를 생각하면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내 아버지다. 아버지는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 삶은 비범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아버지를 떠올려 보니 가슴이 벅차다. 1959년생. 여군학교를 졸업. 육군 인사·작전 등의 분야에서 근무. 1984년 전역 후 건강식품 제조 판매사 인성내추럴 설립. 여성부 신지식인(2001년), ‘한국경제를 살리는 여성기업인(2006년)’ 등에 선정.손인춘·인성내추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