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4급 이상 공무원 205명이 지난 4월 1일 거짓말처럼 보직을 잃고 중앙공무원교육원으로 떠났다. 이렇게 많은 고위 공무원이 교육원에 모인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모두 정부 조직 개편으로 정원 초과가 생긴 부처에서 정식 직제에 없는 각종 태스크포스(TF) 등으로 발령받았던 공무원들이다. 그런데 ‘TF를 모두 해체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특별 교육’을 받는 처지가 됐다.공무원들은 보통 교육 파견을 교육을 받고 오라는 의미보다는 ‘대기발령’쯤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의 교육원행은 말로만 떠돌던 ‘구조조정의 공포’가 본격적으로 현실화된 것을 의미한다. 교육 결과를 보고 보직을 주겠다지만 누군가가 돌아오려면 다른 공무원이 날아가야 한다.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자 이날 과천 공무원들은 너나없이 우울한 표정이었다.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작은 정부’를 향한 부처 통폐합이 있으면서 어느 정도의 공무원 감축은 예고된 바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법령이 정한 바에 의하지 않고는 자를 수 없어서 정부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연 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해나가겠다고 밝혀 왔다. 각 부처는 직제 개편으로 불가피하게 자리가 없어진 관료들을 국정과제TF 규제개혁TF 등에 임시로 보내 일하게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같은 ‘가설 조직’을 만드는 것까지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형의 선고, 징계 처분 또는 공무원법에 정하는 사유가 아니면 휴직·강임·면직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무를 볼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정년도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일반직 공무원 5급(사무관) 이상은 60세, 6급(주사) 이하는 57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 이번에 교육을 받게 된 205명의 공무원들 역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아예 관복을 벗어야 하는 일은 없다.하지만 문제는 이번 조치로 어쩔 수 없이 공직사회에서 ‘낙오자’로 찍히게 된다는 점이다. 교육을 주관하게 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들은 6개월간의 교육을 받은 뒤 그 안에 새로운 보직을 받지 못하면 2, 3차 추가 교육을 받게 된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서울시가 하고 있는 무능력자 퇴출 제도와 ‘오버랩’되면서 교육 대상자들이 ‘쓸모없는 공무원’으로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다”며 “3차까지 교육을 받으면 최대 18개월을 본부에서 떠나 있다는 얘기인데, 그 정도면 사실상 ‘명예퇴직’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교육 입소’ 대상자 가운데는 규제 개혁이나 국책 과제 수행 등 중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TF로 배치 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부처에서 상당히 실력 있는 이들을 일부러 발령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TF를 ‘편법 조직’이라고 비난하면서 도매금으로 넘어가 하루아침에 ‘무능력자’로 분류됐다. 자리를 지키게 된 관료들까지 억울한 희생자들이 많다고 지적하는 상황이지만 서슬 시퍼런 이 대통령의 기세에 눌려 ‘관운이 없나 보다’는 식으로 체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공직사회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자기 자리를 감당할만한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우선 재교육의 기회를 주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시퇴출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대통령의 뜻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작은 정부를 하겠다고 조직을 개편해 놓고도 인력을 줄이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려 한 일부 부처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하지만 대통령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용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면 면밀한 직무 분석을 통해 꼭 필요한 TF는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퇴출 후보군을 정할 때도 공정한 인사 평가를 거쳐 진짜 ‘세금 도둑’이 누구인지 찾아내 몰아냈더라면 국민의 박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요령 있는 사람은 빽 써서 미리 다 빠졌다”라든지 “고시 출신이 아니라서 끌려 왔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