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하 정우산기 사장
충남 천안에 정우산기(대표 황윤하)라는 업체가 있다. 이 공장에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바와 히타치의 발전 설비 부문과 NHK스프링, 도요엔지니어링의 기술진이다. 이 공장을 찾는 것은 제품을 수입해 가기 위해서다. 한국의 대일 무역 역조가 연간 300억 달러에 이르고 해마다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회사는 꾸준히 대일 수출을 늘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업체를 통해 세계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이 회사는 발전 설비와 액화천연가스(LNG) 설비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생산품은 크게 기계 관련 제품과 배관 관련 제품으로 나뉜다. 기계 관련 제품으로는 발전소용 주기기인 터빈과 제너레이터의 보조 장치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고압 스팀에 의해 회전하는 터빈의 샤프트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시스템과 제너레이터 내부의 수소 가스 누설을 막기 위한 실 오일 시스템, 고열을 냉각시켜 주는 워터 쿨링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콘덴서의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오토매틱 튜브 클리닝 시스템과 해초류와 같은 이물질을 걸러주는 필터(debris filter) 및 열교환기도 만든다. 이들 제품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중공업 히타치 도시바 등에 공급한다. 이들 기업에 의해 국내외 발전소에 설치된다. 황윤하(50) 사장은 “이들 제품 중 간판 제품인 콘덴서 튜브 클리닝 시스템은 국내 시장점유율이 약 60%에 이른다”고 설명한다.두 번째 제품 그룹인 화력(복합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의 파이프 서포팅 시스템은 열 변화에 따른 배관의 상하좌우 이동을 막는 장치다. 위에서 잡아주는 행어와 밑에서 받쳐주는 서포트 타입이 있다. 이들 제품은 발전소뿐만 아니라 LNG 액화 플랜트 및 인수 기지 운송선 및 석유화학 플랜트 등에 쓰인다. 생산 제품은 두산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및 일본의 NHK스프링을 통해 일본 및 해외 각국의 LNG 플랜트에 공급된다. 황 사장은 “초저온 배관 서포트 시스템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약 80%에 이른다”고 밝힌다.정우산기는 종업원 100여 명의 중소기업이다. 그런데도 한국과 일본 굴지의 기업들에 납품할 수 있는 것은 앞선 기술력과 우수한 임직원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황 사장은 대학 졸업(기계공학 전공) 후 1980년대 중반부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발전설비 플랜트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분야 부품의 국산화가 아주 미흡하고 일본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국산화가 가능한 게 많다고 판단해 사업화에 나섰다. 종업원 20여 명으로 1990년 천안 성남면에서 창업했다.황 사장은 가장 먼저 일본 업체와 접촉했다.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제의를 받은 일본 업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 공장을 짓는 햇병아리 같은 업체에 뭘 보고 기술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 사장은 수없이 현해탄을 넘나들며 일본 업체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수년간 조사해 온 내용을 브리핑하고 어떤 분야에서 제휴하면 한국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포부를 밝혔다.황 사장의 끈질김과 해박한 지식에 감동한 NHK스프링은 창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정우산기와 기술이전 계약서에 사인했다. 처음 제휴한 분야는 발전 설비 및 석유화학 플랜트에 소요되는 ‘파이프 서포트 및 행어(pipe support & hanger)’ 부문이었다. 국내의 천연가스 사용 확대 계획을 감안해 초저온 배관 서포트 관련 기술을 추가로 도입했다. LNG 선박에서 저장 탱크로 이어지는 배관망과 저장 탱크에서 기화하는 프로세스 배관망은 내부 온도가 초저온(섭씨 마이너스 163도)으로 유지되는 설비다. 이 배관으로 이전되는 열을 차단하고 하중을 지탱하는 까다로운 생산 기술과 설비 제조 노하우를 확보한 것이다.이어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설비 공급 업체로 등록하고 미국기계학회(ASME)의 자격을 얻었다. ISO-9001과 ISO-14001 인증,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인증도 받았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 지사를 설립했고 수주가 늘어남에 따라 공장을 천안시 수신면 신풍리로 확장 이전했다. 이 공장은 부지 2만8700㎡에 건물은 7700㎡ 규모다.이 회사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과의 기술 제휴 및 개발에 따른 것이다. 일본 기업과의 협력에 이어 영국 브래킷 그린사와 기술 도입 계약을 맺어 ‘콘덴서 튜브 클리닝 시스템, 해수 여과 시스템 및 발전소 취수 설비 기술도 들여왔다.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독자적인 연구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황 사장은 “공장의 효율적인 공간 배치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설명한다.이 회사는 2002년부터 목표 관리 체계를 도입하는 등 경영 혁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황 사장은 밝힌다. 그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경영 목표를 갖고 있다.첫째, 국내외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국내 시장은 물론 일본 등지에서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둘째, 중기 전략으로 오일 달러가 넘치는 중동 지역 진출이다. 이를 위해 카타르에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작업을 추진 중이다. 황 사장은 “내년부터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걸프만경제협력기구에 속한 6개국에는 무관세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중동 지역은 가스 플랜트와 오일 플랜트에 공급하기 위한 전기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발전 설비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덧붙인다.셋째, 중국 시장 진출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선 플랜트 설비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황 사장은 “처음에는 중국 제품을 구매해 현지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뒤 점차 현지 공장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소개한다. 정우산기는 아울러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확보를 위해 제품수명주기관리(PLM)를 실시해 문제를 제거하고 기회 손실과 낭비를 줄이고 있다.황 사장은 “수주 산업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품질 경영 시스템을 운영해 엔지니어링 단계부터 제작, 설치, 시운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품질 우선 정책을 쓰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최고 품질의 제품 공급만이 고객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작지만 강한 초일류 기업’을 만들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진다.이를 위해선 임직원들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이 회사가 만든 책상용 캘린더에는 직원들이 함께 헌혈하고 봉사하며 단합대회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캘린더에는 전 직원의 생일도 적혀 있다. 사내 지식왕을 찾는 ‘도전 골든벨’ 행사를 실시해 지속적인 학습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한 상호 이해와 단합, 그리고 목표 공유가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가는 원동력이라고 황 사장은 굳게 믿고 있다. 세계시장으로 뻗어가는 정우산기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다.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