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미국 보험 시장의 여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보험회사들이 향후 치열한 경쟁의 금융시장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하는지 설문 조사를 했다. 이때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3가지로 요약된다.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품 개발과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다. 소비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수 있는 상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고비용의 보험 판매 채널 구조를 개선, 사업비가 적게 드는 판매 채널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 두 번째다. 세 번째로는 보험사들의 자산 운용과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능력을 향상시켜 고객에게 보다 높은 수익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상 3가지 요소는 시장 원리를 대변하는 생존 요소라고 볼 수 있다.국내 보험사들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선 고객이 원하는 욕구를 제대로 파악해 보험 본래의 보장적 기능에 충실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자본시장의 발달과 연계된 융합형(fused) 보험 상품의 개발도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최근 자통법 제정 후 보험의 기능은 보험회사만의 배타적 영역이 아니라 증권 업계도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법에서는 금융 상품의 명칭과 형태를 불문하고 원본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품을 ‘금융 투자 상품’으로 정의하는 포괄주의 규율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기존 보험사의 상품 중 많은 보험 상품이 만기 전에 중도 해약하면 원본 손실이 발생하므로 금융 투자 상품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험 상품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자본시장의 채권(bond) 상품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생명보험과 유사한 사망위험채권(mortality risk bond)이나 대형 자연재해보험과 비슷한 재난위험채권(catas trophe bond; cat-bond) 등이 그 예다.국내 보험 업계에서도 변액보험과 같은 투자형 보험 상품의 개발이 본격화됐다. 변액보험상품은 자본시장의 주식이나 채권에 보험료를 투자해 장기적인 물가 인상 위험을 완충(hedge)하고자 하는 융합형(fused) 상품이며 보험 금액이 투자 실적에 따라 변동(variable)한다. 변액보험상품은 원본 손실도 가능하지만 저금리 시대에 가계의 금융자산이 자본시장으로 크게 유입되는 구조적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이익을 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견해가 많다.미국의 주식시장 발달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식 투자의 대가이자 벅셔해서웨이 보험그룹사 회장인 워런 버핏이 과거 34년(1964~98)간 미국 주식시장의 변화를 검토했는데 초반 17년은 다우존스지수가 874에서 시작해서 875로 끝났다.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그러나 1981년에서 1998년까지 후반 17년은 875에서 시작해 9181까지 급상승했다. 그 후에도 주가는 더욱 급속히 상승해 최근에는 1만4000을 넘게 됐다.장기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주가가 1981년 이후 지속적 상승으로 반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버핏은 저금리 시대로의 진입, 확정기여형 기업 연금의 확대, 투자 심리의 안정, 그리고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서 답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이러한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주가 상승을 기대해 볼만하다. 따라서 보험사들도 위험 관리 능력을 기본적으로 확충하면서 보장과 주식 투자가 융합된 다양한 상품 개발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그동안 우리 국민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었던 부동산의 경우 이제는 수익률이 떨어질 전망이다. 저출산과 베이붐 세대의 노령화와 퇴임 후 현금 흐름의 불안 등 인구 통계적 구조의 변화로 주택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현금 흐름이 적은 은퇴 생활자들의 부동산 매물이 늘어나 향후 부동산 가격의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저금리 시대에는 은행 예금 역시 매력을 크게 상실할 수밖에 없다. 2005년도 한국산업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 중 현금 및 예금 비중은 2004년 55.3%에서 2020년에는 25.5%로 크게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보험은 동 기간 20.9%에서 30%로, 주식은 7.6%에서 21.5%로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보험시장과 자본시장은 확대 과정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자의 장점을 융합하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다음으로 보험 판매 채널의 개선 측면에서 전통적인 설계사 및 대리점 채널 외에 국내에도 방카슈랑스가 도입돼 저축성 보험 등이 은행에서 판매되고 있다. 아울러 1990년대 중반 이후 보험에서도 인터넷이 비용 절감의 새로운 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상품의 설명, 가격 비교 및 판매는 물론 보험사고의 접수 및 보상 처리 과정에서 매우 편리하게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보험과 같이 이해가 쉬운 상품의 판매를 위해서는 매우 유용한 채널로 인식되고 있다.보험사의 새로운 판매 채널인 방카슈랑스는 정상적으로 활용하면 보험회사에는 판매 확대 및 사업비 절감, 은행에는 규모의 경제 달성과 평균 생산비 절감,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편리한 쇼핑 서비스와 보험료 인하 혜택 등을 주는 3자간 호혜(triple wins)가 발생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는 방카슈랑스가 오로지 은행의 수수료 수입 확보 수단으로 전락함으로써 사업비 절감과 요율 인하를 통한 소비자 후생 증대는커녕 대출과 연계된 꺾기 식의 보험 판매(tie-in sales)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병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은행이 우월적 시장 지위를 이용해 보험 판매 대리점의 지위(agency)에서 보험 생산의 주체(principal)인 보험사를 오히려 통제하게 된다면 대리 비용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카슈랑스 확대는 금융 산업별 균형 발전과 상호 견제 기능이 확보돼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의 효율성 증대가 가능한 시점까지 유보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된다.결국 보험회사들은 시장(market)의 다양한 고객층을 세분화해 각 층별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는 양질의 보험 상품(product)을 개발하고 이를 가장 합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판매 채널을 선택, 적정하게 연계하는 것이 성공적인 보험 판매의 관건이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고객이 맡긴 자금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관리, 보다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요율을 낮추는 것도 핵심 경쟁력이므로 자산 운용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특히 최근에는 시장 공시 규제가 강화돼 소비자들은 쉽게 정보를 찾아 상품 간 수익률을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장에 공시되는 보험회사의 건전성 여부가 해당 회사의 상품에 대한 수요를 결정하고 이를 통해 가격이 조절되므로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수준이 곧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 무한 경쟁의 금융시장에서 보험회사들이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시장 원리에 기초한 고객 중시 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류근옥·서울산업대 교수/보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