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캐주얼 게임’ 인기… 닌텐도·소니·MS 각축전
증권회사에 다니는 이경하(41) 씨. 그는 이번 달 미국 출장길에 비디오 게임기를 구입했다. 이 씨가 처음으로 구입한 이 게임기는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골프연습에 사용할 생각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골프광인 이 씨는 한 달 전 후배가 이 게임기로 골프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구입을 결정했다.이 씨는 “복잡한 조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골프채를 잡고 휘두르는 것처럼 조작법이 쉬워서 구입했다”며 “물론 실제 골프보다는 못하지만 집안에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전자회사에서 가전제품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김지윤(29) 씨는 가방 안에 항상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다닌다. 외근이 잦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김 씨는 그 사이사이에 게임을 즐긴다. 지루했던 시간을 휴대용 게임기를 구입해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데 활용하고 있다.그 동안 10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게임시장이 최근 성과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중년, 여성 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게임과 다양한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기존 게임인구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했다. 슈팅, 액션, 시뮬레이션, RPG 등 특정 장르에 집중돼 수많은 게임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된 지 오래다. 각 업체들이 유행에 따라 비슷한 게임을 앞 다퉈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이 때문에 기존 게임의 틀을 깨고 단순하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Casual Game)’이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가 탄생하기도 했다. 캐주얼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짧은 대신 반복해서 즐길 수 있고, 스토리를 통한 재미가 아니라 짧은 순간 즐길 수 있는 요소에 초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게임 룰 자체도 간단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다.캐주얼 게임의 등장으로 중년층 및 여성층 등 기존에 게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게임에 눈을 뜬 중년 및 여성 게이머들은 콘솔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로 이동하고 있다.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닌텐도 등 콘솔 게임기 및 휴대용 게임기 업체들은 이런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관련 게임을 내놓고 있다. 기존 게임 마니아들을 껴안고 신규수요를 잡기 위해 사실적인 면을 강조한 마니아적인 게임과 단순한 게임으로 나누어 게임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중년층과 게임을 즐기는 여성층은 구매력을 가진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에 기존 게이머들보다 씀씀이가 크다는 점도 매력적이다.게임을 즐기는 계층이 달라짐에 따라 때리고 부수는 게임이 아니라 깔끔한 디자인에 조작이 쉬운 단순한 게임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게임은 당장 게임 제작업체에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준다. 그래픽이나 사운드에 높은 비중을 두는 기존 게임은 제작비뿐 아니라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최근에는 기존 장르와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종류에 따라서는 게임으로 볼 수 없는 제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닌텐도 DS’용 프로그램인 ‘두뇌 트레이닝’은 일본에서만 600만 개, 전 세계적으로 1000만 개가 팔린 메가 히트 게임이다. 두뇌 트레이닝 내용은 숫자퍼즐 ‘수도쿠’, 덧셈과 뺄셈, 책을 소리 내어 읽기 등 기존 게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구성돼 있다.소니가 휴대용 게임기 PSP(Play Station Portable)용으로 내놓은 ‘태고의 달인’, ‘파랏파 랩퍼’ 등은 음악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리듬 게임이다. 처음 하는 사람도 설명서 없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자주 반복해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업체들을 막론하고 게임을 단순하고 짧게 만드는 경향이 뚜렸하다. 이전과 달리 게임 외에도 인터넷, 영화, 음악 등의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어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또 플레이 시간이 짧고, 룰이 단순할수록 신규 게이머들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 쉽게 질릴 수 있는 부분은 인터넷을 통한 대전 기능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이 때문에 PC게임은 물론이고 콘솔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 모두 네트워크 기능을 지원해 다른 게이머와 대전 또는 협력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추세다.게임기용 교육 소프트웨어 시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어, 일어 등을 게임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어학 소프트웨어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역사, 음악, 수학까지 공부할 수 있는 게임까지 등장했다. 이들 게임은 게임기가 가지고 있는 인터렉티브한 기능을 십분 활용해 기존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제공하지 못하는 재미를 통해 학습효과를 높이고 있다.교육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게임을 통해 운동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등장할 전망이다. 닌텐도가 출시 예정인 ‘위 핏(Wii Fit)’은 게이머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입력하면 요가, 체조, 팔굽혀 펴기 등 그에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위 핏은 공개되자마자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전문가들은 다변화되는 게임 환경에 맞춰 국내업체들도 새로운 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PC게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PC방 기반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매달 일정액을 PC방에서 받거나 게임 아이템을 팔아서 수익을 얻는 구조를 갖고 있다.2008년 4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전 세계 게임시장에서 PC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내외지만, 콘솔 게임기 시장은 이 두 배에 달하는 60% 이상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콘솔 게임기 시장이 최소 25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임업계의 새로운 수요자인 중년층 및 여성층은 PC보다 휴대용, 콘솔 게임기를 선호하고 있어 우리나라 게임업체들이 이 시장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전 세계적인 동향을 보더라도 PC게임 시장은 2004년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에 반해 모바일 게임, TV를 이용한 콘솔게임, 휴대용 게임기 시장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이런 분위기를 읽고 게임기용 게임을 내놓는 국내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판타그램이 엑스박스용 ‘킹덤 언더 파이어’를 내놓았으며, 소프트맥스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PSP용으로 ‘마그나카르타’라는 게임을 출시했다.IT컨설팅 업체 이데오그라프의 이성재 대표는 “현 시점의 국내 게임 산업은 온라인 게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이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으로 변질하고 있다”며 “닌텐도 DS가 국내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현재의 국내 게임 업계가 가지고 있는 목표 고객층과 관련한 좁은 범위를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필드 밖에선 나도 ‘골프 황제’최근 중년층 게이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골프게임이다. 골프광이라면 남녀노소 관계없이 골프게임에 흠뻑 빠지고 있다.골프게임을 다른 게임과 같이 봤다간 깜짝 놀랄 것이다. 사실적인 화면구성과 철저히 계산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 움직임, 바람의 영향까지 고려해 실제 골프장 환경과 최대한 흡사하게 구현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유명 골프장을 3차원으로 똑같이 구현해 골프광들의 꿈을 가상으로나마 실현시켜 준다.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골프게임은 PC용 ‘당신은 골프왕’, ‘팡야’, ‘샷 온라인’ 등이다. 이 게임들은 PC상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지만 사실성에서 콘솔 골프게임보다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게임기용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360 ‘타이거우즈 PGA투어’, 소니코리아 플레이스테이션3 ‘모두의 골프’, 닌텐도 ‘위 스포츠’ 등이 있다. 위 스포츠는 아직 국내에 발매되지 않았지만 모션센서를 내장한 리모컨으로 직접 골프채를 스윙하는 것처럼 조작하기 때문에 다른 게임보다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휴대용 게임기를 이용하면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게임이 가능하다. 소니 PSP용 ‘모두의 골프 포터블’은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단순한 조작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서도 인기를 끌고 있고, 닌텐도 DS용 ‘어른의 골프’는 터치펜으로 골프스윙을 할 수 있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