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화려한 휴가〉
27년 만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외침이 스크린에 되살아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전에도 광주를 경유하는 영화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개인의 상처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회로를 택한 〈꽃잎〉, 사건의 후유증과 후일담에 집중한 〈박하사탕〉 등 비극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는 여태껏 없었다. 2007년, 기성세대들은 광주를 잊고 신세대들은 광주를 아예 알지 못하는 지금,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화려한 휴가〉는 그래서 작품의 등장 그 자체만으로도 일정한 무게감을 갖는다.영화의 도입부는 “역사적 사명이 아니라 민초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김지훈 감독의 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들의 일상은 그저 평온하다. 12·12쿠데타 이후 민주화의 요구가 높아져 가던 시점이지만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들은 역사적 인식도 정치성도 없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불우한 노인을 무료로 태워줄 만큼 착한 심성의 택시운전사 민우(김상경 분)는 1등을 도맡아 하는 영민한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사랑하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는 남자다. 찬란한 햇살 아래 수채화풍으로 펼쳐지던 이들의 행복은 느닷없이 도시에 진입한 계엄군에 의해 부서진다. 영문을 알지 못하던 시민들을 상대로 군인들은 무차별적인 폭행과 살육을 일삼고, 결국 시민들은 퇴역 대령 박흥수(안성기 분)와 동생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힌 민우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형성해 반격에 나선다.〈화려한 휴가〉가 주목하는 것은 사건이나 이념이 아닌 사람들이다. 과연 그들은 왜, 어떻게 시민군이 되었으며, 왜 끝까지 그곳에 남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영화는 ‘민주주의라는 대의가 아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는 대답을 던져놓는다. 내 친구가, 내 동생이 이유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참혹한 도살의 현장. 〈화려한 휴가〉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을 이들의 공포와 분노, 절망을 거쳐 연대와 희망의 순간까지, 역사의 페이지 안에 숨겨져 있던 ‘사람’을 되살려 놓고자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선택한 길은 지극히 대중적인 화법이다.김상경과 이요원의 애틋한 사랑이 그리는 멜로 라인, 박철민 박원상 등의 감초 조연을 활용한 코미디 등 익숙한 장르적 요소를 배합한 것이다. 역사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대중의 감성에 좀 더 쉽게 다가서겠다는 의도겠지만 공식에 끼워 맞춘 듯한 전형적인 캐릭터들은 영화적 생명력을 반감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되며 승승장구하던 에반(스티브 카렐 분) 앞에 갑자기 신(모건 프리먼 분)이 나타나 워싱턴 한가운데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임무를 내린다.에반은 코웃음을 치며 이를 무시하지만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쌍쌍이 그를 따라다니고 면도를 하자마자 수염이 자라는 등 그의 삶은 어느새 기상천외한 사건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짐 캐리가 주연해 흥행에 성공했던 〈브루스 올마이티〉의 속편.▶레미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생쥐다. 어느 날 하수구에서 길을 잃고 최고급 레스토랑에 떨어지게 된 그는 요리의 세계에 본격 입문하려 하지만 주방 퇴치 대상 1호라는 운명 때문에 쉽사리 성공하지 못한다. 그의 재능을 알아차린 견습생 랑귀니와 의기투합, 멋진 요리를 선보이고자 한다. 픽사 스튜디오가 〈카〉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3D애니메이션.▶톰(비고 모텐슨 분)은 어느 날 자신의 가게에 들이닥친 강도를 죽이고 사람을 구한 뒤 마을의 영웅이 되어 매스컴에 대서특필된다.그러나 며칠 후, 거대 갱단의 두목 포가티(에드 해리스 분)가 찾아와 그가 톰이 아닌 킬러라며 가족을 위협한다. 아내 에디(마리아 벨로 분)와 아이들 역시 톰에게서 문득문득 보이는 킬러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점점 그를 멀리한다.〈플라이〉 〈비디오 드롬〉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작품.최하나·씨네21 기자 raintree@cine21.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