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인사위원회 때문에 꼬였습니다.”재정경제부 한 고위 간부의 토로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만들어 중앙인사위가 부처 간부들의 승진 및 이동을 제한하다 보니 인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고위공무원단 제도란 각 부처의 1∼3급 공무원들을 하나의 풀(pool)로 만들어 부처 직급 나이 등에 관계없이 직책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아 쓰도록 하는 제도다. 각 부처 장관은 실·국장(1∼3급)을 해당 부처 내에서 50%를 쓸 수 있지만 나머지 50%는 다른 부처 및 민간과 경쟁시켜 더 나은 인사를 채용해야 한다. 다른 부처 고위공무원이 지원할 수 있는 자리는 공모직(전체의 30%), 다른 부처 고위 공무원 및 민간인이 지원할 수 있는 자리는 개방직(전체의 20%)으로 정해져 있다.경제 부처 간부들도 고위공무원단의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최적임자를 선정하는 것 자체는 폐쇄적인 공무원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공모직이나 개방직에 한 번 임명되면 최소 1년간 다른 고위직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지난달 재경부는 홍보관리관(옛 공보관)에 김광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행시 27회)을 내정하고 중앙인사위에 승인을 신청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김석동 1차관, 진동수 2차관 등이 김 국장이 홍보관리관으로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인사위는 ‘불가’ 통보를 내렸다. 김 국장이 개방형인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에 임명된 지 7개월 만에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것은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됐다가 지난해 9월 공모를 통해 공자위 사무국장을 맡았다.이 때문에 김교식 홍보관리관은 보름 가까이나 늦게 세제실 재산소비세제국장으로 옮겼으며, 공자위 사무국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견됐던 최규연 국장이 홍보관리관이 됐다. 물론 최 국장도 재경부 업무를 두루 아는 데다 대인 관계가 원만해 홍보관리관으로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다. 그러나 재경부 장·차관이 그리던 인사 구도가 완전히 흐트러져 다음 인사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많다.비슷한 사례는 산업자원부에도 있다. A 본부장은 행시 기수가 앞서는 데다 산자부 주요 국장 자리를 거쳐 1분기 인사에서 1급으로 승진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하지만 해당 본부장에 임명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진이 뒤로 미뤄졌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특히 A 본부장이 장·차관의 뜻에 따라 현재 자리로 옮긴 만큼 의지와 관계없이 고위공무원단 제도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위공무원단 제도는 당초 취지에 어긋나게 편법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처 간 개방을 통해 최적의 인사를 뽑으라고 했는데도 각 부처는 타 부처 출신 인사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주고받기’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재경부는 산자부에, 산자부는 재경부에 각각 1명씩 국장급을 보내는 방식이다. 해당 부처는 공식적으로는 공모와 심사를 거쳐 적임자를 뽑았다고 하지만 심지어 내부 인사들까지도 ‘바터’했음을 인정하고 있다.모 부처는 한 국장 자리를 공모직으로 뽑기 직전 내부 인사를 임명했다. 이 때문에 이 국장은 ‘1년 제한’에 전혀 걸리지 않고 1급으로 승진했다. 만약 공모직을 내걸고 해당 국장을 임명했다면 1년 뒤에나 승진이 가능했을 터인데 이를 피해간 것이다.고위공무원단의 형식적 평등주의도 공무원들의 불만 사항 중 하나다. 고위공무원단에 소속되면 과거 1∼3급에 따른 차이를 없앤다는 것이 중앙인사위의 생각이다. 대신 직무별로 ‘가 나 다 라 마’ 등의 구분을 해놓고 있다. 하지만 일선 부처에선 과거 1급은 가급과 나급, 과거 2급은 다급과 라급이 대부분이다. 내부에선 여전히 과거 1∼3급이 남아 있으며 연공서열이 중시되고 있다. 결국 가급 나급 등의 구별은 무의미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고위공무원단 제도에 융통성을 두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개방직이나 공모직이라 하더라도 능력이 뛰어나고 더 중요한 업무를 맡을 능력이 충분하다고 해당 부처 장·차관이 인정한다면 1년 내라 하더라도 승진·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인사위가 이 같은 불만과 제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