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경제부처 차관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과천 관가에 뒷말들이 무성하다. 학연(學緣) 인사다, 발탁 인사다, 코드 인사다 등등이 대표적인 뒷얘기들.새삼스럽게 ‘학맥((學脈)’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특정 부처 고위직에 특정 고등학교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부터다.우선 재경부는 김석동 전 금감위 부위원장이 1차관에 임명되면서 장관-1차관-차관보-금융정책국장 등 과거 재무부 라인이 모두 경기고 동문들로 구성됐다. 경기고 졸업 연도를 보면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1971년이며 김 차관은 1972년, 임영록 차관보 1973년, 임승태 금정국장 1974년 등 각각 1∼3년 선후배들이다.산자부는 서울고 출신들이 휩쓸었다. 김영주 장관(1968년 졸업)을 필두로 오영호 1차관(1971년), 이승훈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직전 무역투자정책본부장, 1973년) 등이 모두 서울고를 졸업했다. 기획원과 재경부에서 주로 일해 온 김 장관이 산자부로 자리를 옮기고 오 차관이 임명되면서 서울고가 “로열 패밀리로 부상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전 본부장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이동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후문이다.공무원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갈리고 있다. 우선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니냐”는 쪽이다.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입시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명문고와 명문대를 거쳐 고시에 많이 합격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재경부에선 전임 박병원 1차관도 권 부총리와 경기고 동기이며 권태균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상당수 간부들이 경기고 출신들이다.하지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같은 고등학교 후배라면 능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우선 기용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특정 고등학교 편중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시각은 특히 평준화가 확산되고 민주화의 맛을 본 386 공무원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이런 논란과는 별도로 관가에선 행시 23회가 차관으로 중용된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재경부의 김 차관과 산자부의 오 차관은 둘 다 23회다.재경부는 경기고, 산자부는 서울고두 차관은 특히 복수차관제에서 1차관 자리를 꿰차 연공서열을 중시해 온 관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전임 재경부 박 1차관이나 산자부의 김종갑 1차관·이원걸 2차관이 모두 17회였다는 점에서 한꺼번에 6년이나 젊어진 셈이다.이에 따라 재경부에서는 채수열 국세심판원장(17회)과 유재한 정책홍보관리실장, 조성익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이상 20회) 등 선배들이 사표를 던졌다. 임영록 재경부 차관보(20회)는 지난해 말 승진해 일한 기간이 짧은 데다 김 차관보다 행시 기수는 빠르지만 고등학교 기준으로 후배여서 별 무리가 없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김 차관보다 행시 기준으로나 고졸 연도 기준으로나 모두 후배인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한 중간 간부의 자평이 나올 만큼 상당수 간부들이 쇼크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재경부에서 김 차관과 행시 동기인 조원동 경제정책국장, 임승태 금융정책국장, 노대래 정책조정국장, 권혁세 재산소비세제국장, 김교식 홍보관리관 등이 주요 국장을 맡고 있다. 이중 일부는 재경부 외 다른 부처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한편 관료사회 내에서도 ‘코드 인사’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사가들이 대표적인 타깃으로 꼽고 있는 인물이 재경부의 김 1차관. 그는 참여정부 부동산 대책의 핵심 중 하나인 ‘8·31 부동산안정대책’이 만들어질 때 반장으로 일했었다. ‘8·31대책’은 2주택자 양도세 중과 및 종합부동산세 강화가 핵심이다. 대책 발표 후 잠시 주춤했던 아파트 가격은 이후 급등, ‘8·31대책’이 무색해졌는데도 김 차관을 중용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색깔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재경부 내에선 “김 차관만큼 추진력이 강한 관료도 없으며 당연히 될 사람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산자부의 오 차관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일해 ‘눈도장’을 찍었으며, 윤용로 금감위 부위원장은 노 대통령 집권 초기에 ‘매우 똑똑한 관료’로 칭찬받았다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