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비즈니스계를 파티가 평정했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 바, 압구정·청담동의 음식점,홍대 앞 클럽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가 열리고 있다.파티는 더 이상 낯선 문화가 아니다.파티 참여자를 뜻하는 파티홀릭, 파티어, 파티즌은 새로운 소비자 코드로 부상했다.파티플래너라는 직업과 전문업체에 쏠린 관심 또한 뜨겁다.하루가 다르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 파티 비즈니스의 세계로 떠나보자.12월 12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 잠실점 지하 메가CC. 레드, 화이트, 그린 등 크리스마스 컬러 옷을 맞춰 입은 젊은 여성들이 300여 손님들 사이를 누비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무대에선 크리스마스 재즈가 연주되고 와인, 칵테일 잔을 든 이들은 때론 음악에, 때론 대화에 빠져 순간순간을 즐겼다.한국인터넷마케팅협회가 주최한 이 파티는 ‘제7회 인터넷 마케팅 페스티벌’. 인터넷 마케팅 분야를 결산하고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송년회 모임이다. 신원수 인터넷마케팅협회 사무국장은 “파티 형식을 빌려 송년회를 개최한 지 3년째”라면서 “딱딱한 형태의 시상식과 세미나로 이뤄졌던 이전 송년회에 비해 반응이 훨씬 좋다”고 밝혔다.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만큼 참여자들끼리 사교나 정보 교환에도 무척 효과적이라는 게 신 국장의 설명이다.연말연시 대한민국은 파티 중이다. 개인이 주최하는 소규모 파티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이 주최하는 대형 신제품 런칭 파티,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사설 파티, 송년·신년회를 대신한 친목 파티 등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파티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서양의 문화인 줄로만 알았던 파티가 불과 몇 년 사이 평범한 이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직장인 사이에선 라이프스타일의 한 종류로, 인적 네트워크 관리의 중요한 방편으로 파티가 자리 잡는 추세다. 낯선 문화라는 꼬리표는 떼어버린 지 오래다.한국 땅에 파티가 상륙한 것은 재미교포 등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한 이들이 지인들을 모아 중소규모 파티를 연 데서 계기가 만들어졌다. 때마침 클럽프렌즈와 같은 업체들이 정기 파티를 개최하면서 사교를 위한 파티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략 9~10년 전의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엔 글로벌 패션 브랜드, 화장품 업체, 주류 업체, 수입차 업체 등이 파티 형식의 마케팅 이벤트를 잇달아 열면서 일반인들도 미디어를 통해 파티를 간접 체험하게 됐다.여기에 미국 TV시리즈 ‘섹스앤드더시티’ ‘프렌즈’의 인기도 한몫했다. 끊임없이 파티를 즐기는 뉴요커들을 보면서 어느새 친숙한 문화로 받아들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젊은 직원들의 요구를 수용, 송별회 송년회 신년회 등을 파티 형식으로 개최하면서 음주 일색이던 직장 문화 바꾸기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압구정동, 청담동, 홍대 앞 등에서 크고 작은 파티를 접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패션비즈’라는 업체가 지난 7월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젊은층에 파티가 얼마나 가깝게 다가왔는지 잘 나타나 있다. 20~30대 남녀 직장인과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파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들처럼 파티를 즐기는 젊은층을 파티홀릭(Partyholic), 파티어(Patier), 파티즌(Partizen)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신종족이자 새 소비자 코드인 셈이다.마케팅 효과 ‘기대 이상’특히 파티가 주목받는 것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서 선호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열리는 파티의 70~80%가 상업적 목적을 띠고 있다. 브랜드 런칭 행사나 공개 프로모션 수단으로선 최고의 지명도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 마케팅 전문 업체 쥬스컴퍼니의 이한호 사장은 “기업 관련 파티는 크게 PR파티, IR파티, 기업문화파티 등 세 가지 분야로 종류를 나눌 수 있다”면서 “각기 뚜렷한 목적 아래 프로그램 내용과 참여자가 달리 결정된다”고 밝혔다.PR파티는 말 그대로 홍보를 위한 파티다. 신제품 런칭 파티가 대표적이다. 연예인을 초청해 주목도를 높이고 기자들을 불러 이를 미디어를 통해 알리는 건 필수다. 이 경우 파티는 신제품 관련 메인 프로그램과 패션쇼, 콘서트 등 여흥을 돋우는 보조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 유수 전자제품 메이커는 물론 명품 패션브랜드, 수입차, 주류 업체 등이 PR파티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IR파티는 좋은 기업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다. 투자자 등 VIP에게 실적, 사업현황을 알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결국 좋은 인상까지 심는 게 개최 목적이다. 대부분의 기존 IR 행사가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지만 파티의 형식을 빌리면 좀 더 여유롭고 신선하면서도 인상적인 IR가 가능하다. 수치 위주 브리핑을 줄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와인으로 자유로운 환담을 이끌어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다. 기업들도 이 점에 착안, 속속 IR파티를 도입하고 있다.기업문화파티는 일명 CC(Corporate culture)파티라고도 한다. 체육대회 야유회 송년회 신년회 송별회 등 다양한 기업 내 행사를 파티로 만든 경우다. 최근 젊은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파티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한국인터넷마케팅협회의 송년 페스티벌 역시 CC파티의 일종이다.기업들이 파티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고기능성’ 때문이다. 방송, 신문 광고와 같은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타깃 고객을 직접 만나는 현장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한호 사장은 “제한된 시간 동안 같은 공간 안에서 원하는 고객들과 같은 관심사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케팅 효과가 크게 높아진다”면서 “신제품 런칭 행사인 경우 파티를 통해 향후 소비자 반응과 시장성을 점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원하는 고객층에 입소문을 내는 한편 이들의 반응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이야기다.이런 장점이 알려지면서 기업들도 파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P홍보대행사의 한 부장은 “젊은층이 서양식으로 먹고 마시는 게 파티인 줄 알던 기업들이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면서 “새해엔 광고비 지출 개념으로 파티에 예산을 편성하는 곳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한편 마케팅 목적의 파티가 늘어나면서 파티의 형태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파티 참가자와 개최 횟수가 늘어나면서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황의건 오피스h 대표는 “브랜드나 제품을 강요하는 파티를 거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음악, 조명, 장소 선정, 문화 프로그램 등 콘텐츠 구성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케팅과 관련한 직설적 표현 대신 여러 문화적 장치와 이미지 표현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쪽으로 파티가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소비자의 감각이 세련되고 취향이 고차원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황의건 대표는 또 “파티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야 참가자와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서 “브랜드 특징을 면밀히 파악한 후, 한국적 정서를 접목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스탠딩 파티라 하더라도 공간 곳곳에 탁자를 마련해 동선을 배려하는 것과 같은 한국인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가미돼야 한다는 것이다.기업들 ‘고기능성’에 주목파티가 확산되면서 전문업체들도 크게 늘었다. 게다가 파티플래너는 화려한 직업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파티 전문업체는 줄잡아 200여 개 업체가 활동하는 가운데, 톱10 정도가 시장의 80~90%를 나눠 갖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지미기 스웨이프로덕션 대표는 “과거 이벤트 업체들도 파티 전문업체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면서 “몇몇 손에 꼽을 만한 곳을 제외하면 수행 능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실적이 전문업체를 평가하는 바로미터라는 것이다.대표적인 업체는 스웨이프로덕션을 비롯해 클럽프렌즈, 파티즌, 파티숲 등이 꼽힌다. 사교클럽인 클럽프렌즈의 경우 1997년 창립된 이후 그동안 500여 회 이상의 파티를 개최했다. 임정선 클럽프렌즈 이사는 “연간 80여 회 이상의 파티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파티 대행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홍보대행사 오피스h는 기업 및 브랜드 홍보의 일환으로 파티를 적극 활용하는 업체다.파티의 주축인 파티플래너는 최근 몇 년 사이 양성기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학원은 물론 전국 대학 부설 교육원에서 앞 다퉈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하지만 파티플래너는 일정한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황의건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마켓을 꿰뚫는 시각과 지식, 다양한 경험, 풍부한 아이디어, 인적 네트워크 등이 갖춰져야 파티플래너가 될 수 있다”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미기 대표도 “음식, 꽃, 음악, 실내 디자인 등 파티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에 대해 기본 이상의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쉽지 않은 일임을 강조했다.하지만 파티 비즈니스의 미래는 밝다. 최근 4~5년간 파티 문화가 급속히 확산된 이상으로 앞으로 소비생활 구석구석에 파티가 자리 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한호 대표는 “향후 10년 정도 파티문화가 여러 계층으로 퍼질 것”이라면서 “마케팅적 측면에서도 더욱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INTERVIEW 지미기 스웨이프로덕션 대표‘파티플래너는 고도의 전문직’“기업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전체의 70%가량 차지해요. 그만큼 기업들이 파티를 선호하게 됐다는 거죠. 처음 일을 시작한 5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입니다.”지미기 스웨이프로덕션 대표는 직업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멀티플레이어다. 우선 패션모델이자 CF모델이다. 1998년 한 스포츠음료 광고에 삭발한 수영선수로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최근엔 의류 브랜드 ‘미기인뉴욕’과 가방 브랜드 ‘미기앤타쉬’를 런칭하면서 패션 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11월엔 압구정동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무엇보다 그는 1세대 파티플래너로 유명하다. 2001년부터 스웨이프로덕션이라는 파티 전문업체를 운영하며 명성을 쌓고 있다. 소니 아우디 등 다국적 기업들과 위니아 등 다양한 국내 기업이 그의 고객이다.지미기 대표가 말하는 파티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요약된다. 처음 파티를 기획하게 된 계기도 상업적 목적이 아니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지만 마땅히 즐길 문화가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직접 파티를 열었고 그게 직업이 됐다. 지금도 전체 일의 30%는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해 좋은 이들과 함께 즐기는 파티로 만들고 있다. 지 대표는 “나를 위한 즐길 거리를 만들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본의 아니게 사업이 돼버렸다”면서 “하지만 최근 파티 문화가 퍼지는 걸 보면 뿌듯하다”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시장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파티플래너를 자처하며 ‘물’을 흐리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한다고.“파티는 음악, 패션에 대한 감각과 함께 기획력, 추진력이 필수예요.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맡을 수 있는 일종의 디렉터라고 할 수 있죠. 파티를 사랑하는 마음과 능력을 제대로 갖춘 이들이 이 비즈니스를 가꾸고 이끌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