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성장잠재력 ‘공통점’

브릭스(BRICs)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가능성 있는 신흥시장 찾기에 얼마나 혈안이 돼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연히 브릭스와 포스트 브릭스는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포스트 브릭스는 브릭스 4개국에 비해 위험부담이 있는 선택이다. 현재의 총인구 등 입증된 근거보다 인구 구조나 천연자원 보유 같은 잠재 조건을 더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브릭스가 이미 많은 외국 투자자들의 진출로 레드오션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과 달리 포스트 브릭스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것도 두 신흥 국가군 사이의 차이점이다.브릭스는 지난 2003년 짐 오닐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앞으로 다가올 50년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즉 브릭스(BRICs) 경제가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데서 나온 용어다. 2050년이 되면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되며 2위 미국보다 30% 가까이 앞설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브릭스 4개국이 선정된 기준은 거대한 영토와 인구, 풍부한 지하자원 등이다. 이들 4개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40%가 넘는 27억 명(중국 13억, 인도 11억, 브라질 1억7000만, 러시아 1억5000만 명)에 달해 막강한 내수시장을 형성한다.인구 규모의 차별성, 즉 거대한 내수시장은 브릭스로 주목받은 국가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이미 1990년대부터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경제의 위협적인 존재로 떠 오른 중국의 경우 골드만삭스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3년의 8.1%에서 2020년에는 5%, 2030년까지는 3.5%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막대한 노동 인구와 높은 투자율로 2041년이면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 브라질 역시 GDP성장률이 낮음에도 2025년에는 이탈리아를, 2031년에는 프랑스를, 그리고 2036년까지는 영국과 독일을 넘어서는 경제 규모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현재 브릭스 4개국의 성장세는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빨리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들 4개국에서는 오히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해외 투자자들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경향이 나타날 정도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중국은 아예 스스로 투자국이 돼 저소득 다인구 경제권(LIME·Lowe Income Mass Economies) 시장에 적극 진출,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LIME는 1인당 소득이 미화 600달러에서 5000달러 정도, 인구가 1000만 명 이상 되는 신흥 경제권이다. 약 38억 명 규모 시장으로 추정된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38억 명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저소득 국가의 소득 수준에 맞는 저가격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대당 약 300만 원 수준의 저가 자동차를 개발해 LIME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동차 수요는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를 넘어야 본격화된다는 통념이 있지만 중국 기업은 저소득층도 구매할 수 있는 저가 자동차를 내놓고 저소득국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으로의 중국 자동차 수출이 증가했다.브릭스, 자국보호 경향 나타나결국 브릭스는 가능성보다는 시장성이 입증된 시장에 가깝다. 정치적 안정과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등을 기본 조건으로 주로 내수시장의 사이즈 면에서 주목받은 시장인 셈이다. 실제로 메릴린치와 컨설팅회사 캡제미니(Capgemini)가 매년 공동으로 조사 발표하는 ‘세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 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고액순자산 보유자(HNWI)의 수가 이들 브릭스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인도의 HNWI는 66%가, 중국 HNWI는 52%가 늘었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이들 지역의 소비도 자연히 활기를 띠게 된다는 이야기다.그런 면에서 포스트 브릭스가 브릭스와 단연 차별화되는 부분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점이다. ‘Next-11’(골드만삭스가 브릭스 이후 내놓은 용어로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한국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터키 베트남이 해당된다)이라든가 TVT(태국 베트남 터키), E7(브릭스+인도네시아 멕시코 터키), VRICs(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 BRICK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신조어와 함께 여러 국가가 동시에 지목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특히 차세대 시장 발굴에 주목하는 경제 전문가들은 브릭스가 소득 수준을 간과한 채 경제 규모, 특히 인구 규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포스트 브릭스는 제조업 생산기지이거나 떠오르는 소비시장인 경우, 또는 천연자원을 보유한 국가 등 다양한 기준을 복합적으로 적용해 새로운 집합을 설정한 지역이다. 다만 이들 국가들은 그 가능성에 비해 위험도도 높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대표적인 포스트 브릭스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각종 자원 가격 상승과 자원 개발 프로젝트 투자 확대로 중산층이 늘고 있어 포스트 브릭스군에 당당히 입성한 케이스다. 특히 남아공은 아프리카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해 시장 잠재력이 각종 대외 통계 자료 상에서는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남아공의 HNWI는 15.9%나 늘었다. 최근에는 흑인 중에서도 중산층이 늘고 있어 내수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남아공은 복잡한 각종 규제와 절차, 비즈니스 관습의 차이, 낙후된 비즈니스 환경으로 많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지만 아프리카의 장래성을 고려한다면 포스트 브릭스 지역으로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2004년 이후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한 남아공은 노동 인구가 늘고 있고 금 철광석 백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포스트 브릭스의 공통 조건 중 하나는 정책 변화로 인한 경기 확대다. 베트남은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 고성장을 지속했다. 일본판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베트남은 정책 변화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2005년 실질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7.5%에 달한다. 이에 따라 내수확대의 지속, 국영기업 민영화, 상장기업 증가 등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제2의 중국’으로 떠오르고 있다.남아공 역시 정부가 적극적인 대규모 외자 유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6%까지 끌어 올린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남미 지역 중 경제 규모나 인구 차원에서 브라질에 이은 두 번째로 꼽히는 멕시코 역시 지난해 8월 이후 금리인하와 자유무역 확대 등으로 경기가 확대 기조로 전환되고 있다. 내수는 금리인하에 힘입어 내구소비재와 기업의 설비 투자를 중심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교육열 높은 아시아 지역 ‘각광’인구는 신흥 시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브릭스의 경우 중국, 인도만으로도 24억 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 형성된다. 포스트 브릭스에서도 인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조건이다. 다만 포스트 브릭스가 브릭스와 다른 점은 평면적으로 현재 인구가 많은 나라를 선택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시장 규모를 따져 투자할 곳을 결정하는 투자자를 위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태국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는 6400만 명에 불과하지만 태국에 투자함으로써 5억 명 아세안(ASEAN) 시장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단순 크기 비교 대신 인구 구조를 중시하는 것도 브릭스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E7 중 하나로 주목받는 멕시코의 경우 선진국이 고령화 진행으로 노동력이 감소하는 것과 달리 풍부한 젊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제성장률이 증가 추세에 있는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브릭스든, 포스트 브릭스든 아시아 시장이 유난히 주목받고 있는 점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고급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이들 신흥시장은 잠재력만큼이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또 경제 규모와 1인당 GDP가 반드시 비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