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성장과 분배 논란이 가열되면서 늦더위가 주는 짜증과 답답함이 마음을 옥죄는 느낌이다.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의 현실성과 스웨덴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패하면서 불거진 ‘스웨덴 모델’의 성패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이를 크게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간헐적으로나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국가상이 발표된 시점에 이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선진국 복지정책에 대한 실패여론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성장과 분배 논란이 절정기에 도달한 느낌이다.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보수언론은 연일 정부의 복지 모델에 대한 비판의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질세라 정부는 직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이에 대한 대항논리를 만들고 전파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논란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인 착각에 빠지게 된다. 성장과 복지, 성장과 분배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할일이 없어서 쓸데없는 공론에 자주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성장과 분배(효율과 형평)는 동서양이나 시대적 차이를 떠나 한 국가나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시해야 할 정책목표의 양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총체적으로 원활하고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성장과 함께 복지나 분배 구조의 개선이 실현돼야 하는 것이다. 성장 지상주의 사회는 일부 개도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회갈등의 만연화로, 또 분배와 복지만 추구하는 사회는 사회주의국가나 유럽과 같이 빈곤의 심화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게 됨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직접 체험해 온 사실들이다. 그야말로 성장이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고, 분배 없는 성장은 무가치한 것이다.그런데 요즘 일고 있는 성장과 분배와 같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논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논란을 이어가다 보면 주장하는 바가 결국 같아진다는 점이다.흔히 성장론자들도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분배를 강조하는 측도 성장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강조점과 단어 나열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를 뿐이다. 이에 따라 ‘비전 2030’은 ‘스웨덴식 복지 모델’도 되고 ‘한국식 신성장 모델’로도 변신이 가능해진다. 결국 지향점이 같은데도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너 죽고 나 살기 식으로 언쟁(말싸움)과 문쟁(글싸움)에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왜 그럴까.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해 생산적인 결론을 얻으려 하기보다 현실을 보는 서로 다른 관점과 각자의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소모적인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는 성장과 분배 논쟁을 생산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길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우선은 모두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자세를 일단 갖춰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와 경제가 처해 있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그 진정한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개선시킬 여력은 있는가에 대해 먼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평가를 내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과 방안들을 다 찾아낸 뒤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무엇부터 추진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적인 해결방안이 우리 사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살아나야 한다. 힘을 가진 데서부터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경청하고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믿음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 bkyoo@hri.co.kr1960년생. 82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98년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96~2002년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 2003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