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분산으로 비상시 통제 저향력 갖게 돼... 정부 차원의 규제 효력 없다고 판단한 미국
[비트코인 A to Z]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이 티핑포인트에 와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수용하고 국제 결제에 사용되든지 아니면 파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야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전망의 방점은 주류화에 있다. 비슷한 시기에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거래 창구를 다시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투자은행은 2018년 암호화폐 거래 창구를 오픈했지만 시장이 침체되자 폐쇄한 바 있다.한편 비트코인 가격은 테슬라의 비트코인 투자 보고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비트코인 비판으로 크게 출렁거렸다. 투자자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구입한 저의를 ‘현실의 비트코인’과 결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장난기 어린 말대로 고객들로 하여금 테슬라 자동차 구입에 비트코인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몇몇 언론들의 분노에 찬 저격처럼 가격을 끌어올려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정부가 빼앗을 수 없는 비트코인
머스크 CEO를 이해하려면 그의 상황을 가정해 질문해 봐야 한다. 당신이 1000억원 이상의 자산을 외국에 가지고 있다고 하자. 미래에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 상황이 악화될 때를 대비해 당신은 그 자산을 필요할 때 긴급하게 본국으로 옮길 수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공장이나 기계는 확실히 가치 있는 실물 자산이긴 하지만 옮길 수 없다. 금융권에 맡긴 예금은 은행이 동결할 가능성이 있다. 실물이면서도 옮길 수 있는 자산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달러 묶음이나 값비싼 보석일 것이다. 그런데 국경 검문소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을까. 1000억원이 넘는데 과연 가능할까.
현실 비트코인은 이 조건에 부합한다. 비트코인은 무게가 없고 금융권에 의해 동결되지도 않는다. 국경을 빠져나갈 필요가 없는 이유는 비트코인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없기 때문이다. 지구 어디서나 비밀 키를 넣으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현실 비트코인은 10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규모도 크다.
정변이나 위기가 아니라고 해도 테슬라와 같이 중국에서 발생한 수익을 중국 밖으로 인출해야 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자본 통제 대상이다. 평소 자산의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분산해 놓으면 통제에 대해 대항력을 갖게 된다.
어마어마한 자산을 여러 나라에 분산해 보유하느라 발생하는 행복한 고민을 해 본 적인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논리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부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는 비트코인을 정부가 빼앗을 수 없는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의 자산을 빼앗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다른 하나는 그냥 빼앗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법치가 무너지고 혼란에 휩싸인 국가의 국민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될 운명으로 발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이런 속성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의 시장 가격이 1달러를 넘어 유의미해진 이후 줄곧 그랬다. 그래서 ‘현실의 비트코인’이라고 수식어 하나를 애써 덧붙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비트코인을 외면하고 없어질지도 모르는 또 다른 비트코인을 가정하곤 한다. 그런 현실 외면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기회를 거듭 놓치는 것이다.
현실의 비트코인은 전 세계 주요 통화로 24시간 거래되고 있고 5000만원 이상이다. 머스크 CEO가 1조7000억원을 투입한 것은 바로 이 현실의 비트코인이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이 현실이 일시적 착각이라고 지난 10년간 외쳐 왔다. 가격이 없어지는 자산이라면 아무리 국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가졌어도 무용지물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이고 현실의 비트코인은 어쨌건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디커플링이 비트코인에 미친 영향
회의론자들의 남은 희망은 미국 재무부나 중앙은행(Fed)이 비트코인을 금지해 주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선언만 해 줘도 된다. 선언만으로도 가격이 폭락하고 테슬라가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연쇄 작용이 일어나 비트코인에 투자한 개인과 기업들이 위기로 치닫는다. 앞으로 제정신이 박힌 기업이나 부호들은 다시는 비트코인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면 그 직후 가격이 폭락하고 시장이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 정부의 선택과 무관하게 비트코인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회의론자들의 희망처럼 0에 수렴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될 것이었다면 미국 정부는 좀 더 일찍 나섰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일찌감치 비트코인을 불법화하지 않은 것은 실행할 수단이 마땅하지 않을 뿐만 아니나 실효성도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 정부가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비트코인의 부상을 용인할 리 없다’는 논리가 정말로 설득력이 있다면 왜 미국은 일찌감치 비트코인이 미약할 때 제압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트코인을 검토해 왔다. 2013년 마약과 불법 총기류의 아마존이라고 불렸던 실크로드가 사회 문제가 됐을 때 미국 연방 검찰은 비트코인의 기소를 검토했었다. 2017년 암호화폐 붐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을 미국 의회에 불러 비트코인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를 묻기도 했다. 지난 8년 동안의 미국 정부와 관계 당국의 대응에는 잡음이 많이 끼어 있기는 해도 일관되게 수용 쪽으로 기울고 있다. 2017년 CFTC가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허가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미국의 은행들로 하여금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 창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바둑에는 축이라는 형세가 있다. 축에서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더 많은 집을 상대에게 헌납하게 된다. 그래서 축에 빠지면 미련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실속을 차리는 선택이 전략적이다. 비트코인이 유의미한 가격을 가진 어느 시점에 ‘현실의 비트코인’이 됐고 정부들은 축에 빠졌다. 비트코인을 금지하려는 어설픈 조치들은 오히려 비트코인이 강하다는 것을 대중과 시장에 각인시켜 줬다.
비트코인에 대해 일관되게 규제적인 태도를 보여준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2017년 비트코인 거래소를 전면 금지했고 2021년에는 채굴도 금지할 기세다. 비트코인 가격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비트코인 생태계를 오히려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인식이 몇 차례 증명됐다. 차라리 중국이 위협만 하고 거래소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중국 정부의 으름장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비트코인이 달러의 패권을 위협하고 중국이 달러 패권이 약화되는 것을 기대한다는 통념이 맞는다면 중국은 비트코인을 활성화해 미국이 어려움을 겪도록 했어야 한다. 즉 중국 정부의 과민한 반응이야말로 ‘달러 대 비트코인’이라는 대립항을 전제로 미국 정부의 규제적 조치를 추론하는 논리가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비트코인을 금지하려는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비트코인은 미국보다 자본 유출에 민감한 국가들에 위협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머스크 CEO가 비트코인 쪽으로 간 이유도 자본 이동의 자유를 찾아서라고 추론할 수 있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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