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자 모 종합일간지의 ‘머니’면. 한 개의 고정 연재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증시 관련 기사다. 증시가 지수 800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상승장에서는 내재가치주가 유망하다는 분석, 상장기업 주가수익률을 미국과 비교할 때 저가 메리트가 있다는 기사 등이 그 내용. 주식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지면이 ‘도배’돼 있다. 같은날 또 다른 모 경제지 증권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적으로 자못 흥분한 어조로 ‘강세장’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H증권의 리서치센터장은 “증시 전망 좀 해주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항상 같은 말로 대답을 시작한다. “제가 무슨 신입니까.” 그의 말대로, 주가를 맞히는 것은 신의 영역. 그럼에도 요즘 국내 증권사들은 열심히 긍정적인 전망을 대량생산하면서 분위기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개인돈이 시장에 들어오길 목마르게 기다리는 증권사와 꿈쩍도 않는 개미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최근 5개월 연속 상승장이 이어지는데도 개인투자자들은 무정할 정도로 미동도 않는다. 외국인들의 주도로 상승장이 이어지면서 종합주가지수가 770선을 넘보고 있지만, 개미들은 팔아치우기로 일관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거래소시장에서 지수가 720대로 올랐다가 704로 밀린 8월11일부터 766으로 마감된 9월3일까지 약 한달 동안 계속해서 매도우위를 나타냈다. 팔자보다 사자가 더 많았던 날은 8월26일과 9월1일, 딱 두 번뿐이었다.이런 양상 때문에 연속 강세장에도 불구하고 별로 재미를 본 사람이 없다. 여의도는 증시가 상승세를 타면 몇 개월 후행해 덩달아 흥청거리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여의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의도에 위치한 T단란주점 업주는 “올해 초나 지금이나 영업이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다만 올 3~4월에 주식형 수익증권에 가입했던 일부 투자자, 외국인들의 활발한 거래로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입을 챙긴 외국계 증권사들이 이번 상승장의 수혜자에 속한다.증권사, 장밋빛 주가전망으로 분위기 띄워사정이 이렇다 보니 속타는 국내 증권사들이 개미들의 투심잡기에 나서고 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은 역시 주가가 더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강조하는 것. 본래 브로커회사(증권사)에 시황이나 전망을 내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마케팅은 없다. 많은 고객이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거래가 활발해질수록(약정 증가) 회사의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영업일선인 지점에 근무하는 증권사 직원들과 분석가들은 개미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처방 역시 확신을 불어넣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인지 최근 증권사들이 내놓는 주가 전망은 한결같이 상승장을 외치고 있으며, 회사들 간에 차별화된 모습도 없는 편이다. LG, 삼성, 대우, 현대 등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는 9월 증시 전망은 거의 대부분 ‘조정 있을 수 있으나 상승기조 유지’이며, 고점 지수대도 거의 800 이상을 언급하고 있다.또한 최근 증권사들은 부쩍 잦아진 설명회로 바람몰이를 도모하고 있다. 각 증권사들이 8월에 개최한 투자설명회는 약 4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여건에 비해 2배 이상 크게 늘었다. 본사에 보고하지 않고 지점에서 자체 투자설명회를 여는 경우까지 포함할 경우 50건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증시침체기에 투자설명회 규모와 횟수를 크게 줄인 증권사들이 시황 개선과 더불어 늘어난 개인투자자의 설명회 요청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것. LG투자증권 기업분석팀 박종현 팀장은 “그동안 애널리스트들이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만 나가곤 했는데, 자산관리영업에 도움이 되는 자산관리 영업직원 교육이나 고액투자자를 위한 설명회 횟수를 늘릴 계획이다”고 말했다.또한 고객에 대한 1대1 설득작전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시청지점 김성회 지점장은 “아직까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고객들에게 간접상품 위주로 추천하면서 조심스럽게나마 강세장에 대비하라는 기조로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런 갖가지 ‘투심잡기’는 아직까지 별로 약효가 없는 듯하다. 그러자 최근에는 좀더 강력한 비난성 또는 야유성 어조까지 등장하고 있다. 소위 ‘개미들의 상승장 실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개미들은 원래 후행성을 나타낸다’ ‘지수가 800선을 넘으려는 순간, 그제야 상투 잡으려고 들어오는 게 개미들이다’ ‘결과론이기는 하나 개인들이 지나치게 망설이다가 매수시점을 놓쳐 돈 벌 기회를 내쳤다’ ‘벗어나야 할 투자패턴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는 등 개미들을 야단치는 목소리다. 그러나 삼성증권 C지점의 브로커는 “요즘에는 직원 성과를 고객 수익률로 평가하기 때문에 예전 같은 막무가내식 설득은 많이 사라졌다. 요즘 개미들은 똑똑해져서 브로커가 강권한다며 말을 듣지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