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시간대 고객만으로는 성장 한계 인식… 로손, 지하철역 구내 등에 점포 설치 추진

일본 최대의 편의점 체인업체인 세븐일레븐재팬이 지난 8월31일 세계 유통업계 역사에 한획을 새로 그었다. 세븐일레븐재팬은 이날 오전 7시 일본 각지에서 10개의 점포를 동시에 오픈하면서 총점포수 1만개 돌파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8월31일 현재 이 회사의 총점포수는 1만2개로 7월 말의 9,859개에 비해 불과 한달 사이에 143개가 늘어났다.세븐일레븐재팬이 일본 최초로 편의점이라는 신업태를 선보인 것은 29년 전인 지난 74년. 도쿄 도요쓰지역의 후미진 곳에서 문을 연 1호점이 일본 편의점업계의 효시다.세븐일레븐재팬의 점포가 1만개를 돌파한 날 <니혼게이자이신문 designtimesp=24248>은 특정 국가에서 한 업체의 점포수가 1만개를 넘어선 것은 전세계를 통틀어 세븐일레븐재팬이 처음이라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세븐일레븐재팬이야말로 미국에서 태어난 편의점업태를 황무지 일본에 들여와 접목시키고 꽃피운 주역이기 때문이다. 편의점 외길만을 걸으며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고수익 체질과 단단한 근육질의 재무구조를 갖춘 것 또한 점포 1만개 시대의 세븐일레븐재팬의 성가를 더욱 빛내준 요인이 됐다. 이 신문은 세븐일레븐재팬의 고객수는 하루 평균 985만명에 달한다고 지적, 일본 국민 13명 중 적어도 1명이 매일 세븐일레븐의 매장 문턱을 넘나드는 셈이라고 풀이했다.세븐일레븐재팬에 대한 <니혼게이자이신문 designtimesp=24251>의 논조는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세계 유통업계는 물론 일본 재계에서 이 회사가 차지하는 위상과 그동안의 파이어니어적 역할을 감안한다면 지나치지 않다는 평가였다.그러나 세계 유통업계 역사에 신기원을 수립한 세븐일레븐재팬의 1개 업체를 떠나 일본의 전체 편의점업계를 놓고 바라본 신문의 논조는 판이했다.‘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출점 경쟁)‘연령과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고객 확보 전쟁)신문은 일본 편의점업계가 겪고 있는 최근의 변화를 이렇게 진단하고 성장가도를 숨가쁘게 달려온 각 업체들이 저성장시대를 맞아 변신 실험에 몰두해 있다고 지적했다.통행량이 많은 대로변 교통요지나 인구밀집지역의 주택가를 고집했던 일본 편의점업계의 점포개설 전략은 올 들어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장사가 될 만한 목좋은 곳이 동나 매력적인 신규점포 개설장소를 찾기 어려워진데다 불황으로 문닫는 기존 점포가 늘어나자 업체마다 제3의 후보지 물색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로손은 우정공사와 손잡고 지난 8월 도쿄 중앙우체국 구내에 편의점을 개설했다. 하루 종일 붐비는 곳이니 고객확보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로손은 이에 앞서 지방은행인 호쿠리쿠은행과 제휴, 은행 점포 내에 매장을 개설했으며 최근 도쿄의 지하철관리공단과도 제휴계약을 체결했다. 고객만 있으면 땅속 지하철역 구내에도 파고들어가겠다는 각오의 표시다.이와 관련, 이나미 아쓰시 로손 사장은 “더욱 편리한 매장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고 말했다.저성장, 마이너스 역풍의 시련이 업계를 덮친 상황에서 오는 고객만 기다리는 장사, 심야시간대에만 매출이 집중되는 전통적 사업구조로는 변화를 이겨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편의점들의 매출부진이 두드러진 낮시간대의 허점을 일반인들의 왕래가 잦은 은행, 지하철역 구내 등의 점포로 메워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designtimesp=24267>의 조사에 따르면 65개 일본 편의점 체인업체들의 총점포수는 2002년에 4만553개에 달했으며 이들이 올린 매출은 7조2,036억엔으로 집계됐다. 점포수는 전년에 비해 3.5%, 매출은 3.2%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유통업계의 왕자로 군림해 온 백화점업계의 전체매출(8조3,000억엔)과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는 것이며 격차도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신문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새로 늘어난 점포의 몫을 제외한 기존 점포만을 놓고 보면 사정이 달랐다. 중ㆍ하위업체는 물론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의 3대 업체 모두가 기존 점포 매출에서 지난해에 하향곡선을 그렸다.일본 전문가들은 시련에 직면한 편의점업계의 위기돌파 전략이 그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ㆍ노년층 고객을 향한 러브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87년 19%에 불과했던 40대 이상의 중년층 고객 비율을 2002년에 35%까지 끌어올렸다. 중년 샐러리맨들을 겨냥한 고품질 도시락을 오피스타운의 매장에 집중 배치하는 한편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나 볼 수 있던 시식행사를 펼치며 ‘아저씨 손님’들의 마음을 적극 끌어당겼기 때문이다.로손과 함께 매출 2ㆍ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관계인 패밀리마트 역시 고품질 도시락을 중년층 고객 확보의 전략 무기로 내세웠다. 개당 700엔 이상의 고가ㆍ고품질 도시락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이 회사는 특히 40대 이상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앞으로도 이들의 특성에 맞는 상품개발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세븐일레븐재팬은 일본의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40대 이상의 중ㆍ노년 고객 비율이 52%에 이른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업체들의 능력과 정성에 따라서는 아직도 얼마든지 이 연령층에서 고객을 개척할 수 있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일본 전문가들은 편의점업계의 출점 및 고객확보 싸움이 최근 들어 부쩍 달아오른 배경의 하나로 드러그스토어, 슈퍼마켓 등 다른 업종과의 경쟁격화를 꼽고 있다. 다이에 등 불황과 경영난에 지친 대형업체를 중심으로 24시간 문을 여는 슈퍼마켓이 속출하고 있는데다 드러그스토어의 영업시간이 길어지면서 심야의 편의점 독무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도쿄 등 수도권 일대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대형 드러그스토어체인 그린크로스코아는 최근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점포를 늘려나가기로 확정했다. 이미 전체의 60%가 넘는 60여개 점포가 밤 12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지만 성과가 괜찮다고 판단, ‘올빼미 점포’를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영업시간 연장과 함께 심야 고객들의 수요가 많은 생필품 취급 비중을 늘려 편의점으로 가는 고객들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전문가들은 편의점이 독점해 온 것이나 다름없던 심야시간대 시장에 참여하는 업태가 많아질수록 편의점은 경쟁력 유지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마켓과 드러그스토어의 가격경쟁력이 편의점보다 우위인 것이 분명한 이상 이들 업태가 어떻게 공세를 벌이느냐에 따라 편의점들이 받을 충격의 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인 셈이다.이에 따라 공공요금 수납, 택배서비스, 현금서비스기 운용 등 재래식 서비스만으로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업계 내부에서 끊이지 않는다.“세븐일레븐의 비즈니스 모델은 승부가 난 것입니다(더 이상의 성장추진력을 내기 어렵습니다).”한 중견 편의점업체 사장은 세븐일레븐의 파이어니어적 공로는 인정하지만 세븐일레븐의 성공사례가 모든 업체에 교과서가 될 수는 없다며 업체마다 고유의 강점과 색깔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최근 매장 내에 즉석빵 업체를 입주시켜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