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 직장인치고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놈)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올해 들어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이 유행어는 2003년 한국 직장인 사회의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발단은 IMF 위기 때 가차 없이 가해졌던 정리해고 바람이었다. 2000년 들어 잠잠해지나 싶던 칼바람은 이제 ‘상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일상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회사에서는 40대 초반도 ‘말년’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기업의 중추로, 임원후보로, 듬직한 맏형 역할로 소임을 다하던 나이다. 마흔은 ‘중년’이라 부르기 어려운 젊은 나이임에 틀림없지만, 직장은 ‘이제 그만 떠나라’고 등을 떠민다. 어떻게 할 것인가.일본 작가 다케무라 겐이치가 쓴 <마흔혁명(四十革命) designtimesp=24218>은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40대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와닿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비단 40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이제 한국사회에서 직장인은 30대 중반만 되어도 후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이 책은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내면에서부터의 혁신,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방향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필설한다. 이것은 감성의 훈련에 가깝다.그러나 진정한 ‘마흔혁명’은 정신구조의 혁신에 이어 새로운 인생을 찾는 구체적 노력으로 가시화된다. 어차피 직장생활의 수명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고 그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도리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는 일, 즉 ‘창업’과 또 다른 직업을 갖는 것, 즉 ‘부업(투잡스)’만큼 사오정시대를 뛰어넘는 가장 유용하고도 현실적인 해답은 없다.직장인 10명 중 7~8명 ‘창업ㆍ투잡스 희망’직장인들이 창업이나 투잡스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은 ‘상상 초월’ 수준이다. 올해 초 창업전문지 <창업&프랜차이즈 designtimesp=24230>가 직장인 9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창업을 생각하거나 계획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86.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50%) ‘경제적 여유를 원해’(39.6%) ‘고용불안 때문’(10.4%)이라는 응답이 이어졌다. 풀이를 하자면, ‘하루 대부분을 얽매이면서도 봉급은 적고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인 것이다.일반 직장인에 비해 ‘철밥통’으로 통하는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계명대 부설 뉴비즈니스연구소가 지난 6월 공무원 2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72.7%가 창업에 관심이 있고, 이 가운데 2.6%는 실전 창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두 가지 조사를 종합하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적어도 7~8명이 창업에 대해 고민하며 관심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그만큼 고용불안이 심각하다는 의미인 한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직장인도 상당수라는 이야기다.현재의 직업 외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또 다른 직업을 가지는 투잡스도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6월 뉴비즈니스연구소가 직장인 382명을 대상으로 투잡스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74.9%가 ‘투잡스를 희망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이 가운데 11.2%는 아르바이트 등의 형태로 이미 ‘투잡스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10명 중 1명은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투잡스 희망자의 연령은 30대와 20대가 각각 43.4%, 30.8%로 나타나 40대에 가까울수록 직장생활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조사를 진행한 김영문 뉴비즈니스연구소장은 “불투명하고 위축된 경기 상황에서는 직장인들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창업 및 투잡스 희망자 증가는 불황기에 나타나는 직장인 사회의 전형적인 풍속도”라고 분석했다.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높은 관심도에도 불구하고 창업이나 투잡스에 대한 지식과 경험, 사회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이 때문에 철저한 준비 없이 창업 또는 투잡스를 시작했다가 이내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창업의 경우 아이템 선정이나 프랜차이즈 선택을 잘못해서, 투잡스의 경우 돈을 좇다 본업까지 망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다.특히 투잡스족은 본업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직장에 비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사이트에 투잡스 포럼을 개설하고 있는 김정삼씨(L상사 근무)는 “투잡스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지만 자신의 두 가지 일을 당당하게 밝히고 정확하게 선을 그어 일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러니 직장상사 입장에서는 투잡스족이 고울 리 없다. K정보통신사 인사담당자는 “컴퓨터에 능숙한 직원들 중에 투잡스족이 몇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본업에 부정적인 영향 없이 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경우나 또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경우 모두 철저한 준비, 투철한 프로의식이 수반돼야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풍토를 감안, 정부 차원의 창업 및 투잡스에 대한 교육 지원이 확대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