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한화그룹 돌풍이 거세다. 지난해 자산 22조원대의 대한생명을 인수한 데 이어 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올해 상반기 순이익 증가율에서 10대 그룹(공기업 제외)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형적인 성장 못지않게 내실 면에서도 고속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올해 상반기는 잘 알려진 대로 극심한 불황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10대 그룹(전년 동기와의 비교가 불가능한 LG그룹 제외)의 매출액과 순이익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총매출액은 10.0%, 순이익은 34.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한화그룹 역시 상장사(한화석유화학, (주)한화, 한화증권) 매출액에서는 지난해보다 줄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장사가 아닌 대한생명 등의 실적이 빠져 있다. 구체적인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비상장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로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기업이 사업을 얼마나 잘했는가를 나타내는 순이익 증가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화그룹 상장계열사의 순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87억원에 그쳤지만 올 상반기에는 무려 1,717억원으로 증가율이 무려 1,873.79%에 이르렀다. 10대 그룹 가운데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상반기 순이익 증가율 1위한화그룹의 대도약은 지난날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결실을 거두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룹의 취약 부문을 효과적으로 보완해 국내의 대표적인 그룹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그 신호탄은 지난 97년 7월 쏘았다. 김승연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직원들에게 구조조정 단행을 알렸다.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까지 썼다.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기업도 매각대상에 포함시켰다.핵심목표는 부채비율 축소였다. 당시 부채율은 거의 기업의 숨통이 막힐 지경인 1,200%. 수익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견실한 한화바스프우레탄, 한화NSK정밀, 한화GKN, 한화자동차 부품 등의 합작회사를 매각해 1,497억원을 조달했다. 국내 시장지배적 사업이면서 한화의 핵심사업인 한화기계의 베어링 부문 등을 독일 회사에 팔아 3,800억원대의 현금을 확보했다. 보유 중이던 32건의 부동산도 1,800억원에 처분했다.심지어 그룹 매출의 35%를 점유하고 있던 한화에너지와 에너지프라자까지 매각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가리지 않고 처분했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화가 앞으로 무엇으로 사업을 할 것이냐며 의문을 나타냈지만 경영진은 이에 개의치 않고 구조조정을 신속하면서도 단호하게 처리했다. 결국 한화는 구조조정 착수 3년 만인 2000년에 부채비율 130%라는 아주 건실한 재무구조를 갖게 됐다. 한화 구조조정본부 최상순 사장은 “총수의 리더십과 한발 빠른 대응, 협조적 노사관계를 포함한 임직원의 공감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성공적으로 회사의 체질을 바꿨다”고 설명했다.한화의 위상강화에는 지난해 이뤄진 대한생명 인수도 큰 몫을 했다. 3년간에 걸친 준비 끝에 마침내 한화의 식구로 맞아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인수과정에서 많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결국 대어를 낚은 셈이다.재계 랭킹 8위로 급부상대한생명 인수는 한화에 많은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줄곧 사업을 매각만 하던 입장에서 180도 돌아서 새로운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금융부문을 정하고, 이에 걸맞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새주인을 맞은 대한생명은 올해 들어 특유의 신바람 경영으로 외형 면에서 생보업계 2위로 도약하는 한편 실적 면에서도 한화의 주력기업으로 떠올랐다.한화는 현재 자산 기준으로 재계 랭킹 9위(공기업 제외)다. 10위권 밖을 떠돌다 지난해 대한생명 등을 인수하면서 순위가 3단계나 상승했다. 명실상부한 10대 그룹으로 위상을 다져가고 있는 셈이다.특히 고무적인 것은 계열사들의 도약이 눈부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한생명이 업계 2위로 올라섰고, 한화건설도 지난해 32위에서 올해 들어서는 23위까지 수직상승했다. 업계 10위를 맴돌던 한화증권도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5위를 이룬다는 각오 아래 현장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한화S&C도 3년 내 업계 빅5로 올라선다는 목표 아래 하나하나 내실을 다져나가고 있다. 한화콘도를 운영 중인 한화국토개발은 업계 톱브랜드의 이미지를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한화그룹의 올해 경영화두는 내실경영이다. 각 사업군별(화약ㆍ화학사업군, 금융사업군, 유통레저사업군) 경영성과를 극대화하고, 성과가 미진한 사업단위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남영선 구조조정본부 상무는 “올해는 한화그룹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운 10년을 도모하는 기반을 다지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