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한국 최고 기업이자 최고의 주식이다. 8월21일 KOSPI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시가 총액의 21%나 된다. 이 종목은 최근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그 비중을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외국자본. 한국증시의 최고 큰손이다. 8월25일 외국인투자가의 시가총액 대비 주식 보유비중은 38.11%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거래소 시가총액중 120조2,167억원어치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주식 소유만으로 보면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주인은 외국인이다. 680여개 상장사 중 외국인이 3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만 90여개다.요즘 이 큰손들이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대표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열심히 사들이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의 외국인 비중이 높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떤 외국인투자가든 추천종목을 말하라면 예외 없이 꼽는 것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포스코, 국민은행,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뻔한’ 블루칩이고 또 거의 예외 없이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고 있다.그런데 블루칩을 좋아하는 이 외국인투자가들이 최근 꾸준히 지배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키우고 발언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크레스트증권(SK의 대주주로 등장한 소버린 펀드의 증권사)의 자문사이자 국내 대변인 격인 라자드아시아의 오호근 회장은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면 SKT 주가가 40% 오를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공개발언이 아니더라도, 외국자본의 펀드 운용 책임자나 기타 외국인투자가들은 예외 없이 유사한 의견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지배구조의 개선은 한국 대표 초우량 기업의 주가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는 것이다.물론 ‘외국인투자가’라고 해서 모두 한묶음, 같은 성격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주식투자가의 성향이 제각각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IMF 이후부터 꾸준히 비중을 높여온 외국인투자가들의 그간의 행동양식을 보면 이들의 움직임에서는 거칠게나마 일관성 또는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외국인투자가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맨날 하는 같은 소리’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외국인투자가들은 IMF 직후 법ㆍ규제 완화를, 그다음에는 투명성을, 이후 지배구조를 집중적으로 언급해 왔고 국내 주식시장은 상당부분 이들의 주장대로 변해왔다. 외국인투자가들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언급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항상 ‘코리아 디스카운트’(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한국기업의 주가가 현저하게 싼 것)의 주요 요인으로 ‘재벌’로 대변되는 지배구조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왔다. 하지만 어째서 최근 지배구조에 대한 발언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무엇을 근거로 ‘지수가 1000은 간다’느니 ‘40% 오른다’느니 하는 위험하기까지 해 보이는 수치를 던져놓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지배구조 개선 없으면 돈 뺀다” 강력 경고그 속내를 추적하기 위해 먼저 많은 외국인투자가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높고 직접적이기로 으뜸인, ‘SKT 40% 상승론’을 주장한 오호근 라자드아시아 회장을 찾았다. 그는 대뜸 “40% 오른다는 게 내 얘기가 아닙니다. 리먼브러더스, 노무라증권, 도이치증권, ING증권 등 세계 유수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다 이렇게 전망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굳이 오회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배구조에 대해 앞장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외국인투자가라면 그 근거가 될 만한 논리를 생산해내는 것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외국계 증권사들이다. 이들은 서로 고객과 주식브로커의 관계이다.아시아시장 분석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모건스탠리증권의 이코노미스트 앤디 셰이는 “(한국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만큼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도 이렇게 적은 부를 가지게 되었을까?”(6월4일 ‘재벌문화의 종결’ 리포트)라고 물으면서 심지어는 해석하기에 따라 경고로도,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까지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만약 한국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해 실제로 주식을 소유한 사람이 회사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외국인투자가들은 떠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투자가들은 한국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잃었다”면서 “이들이 더 투자를 지속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인내심에 대한 보답으로 결국은 한국이 개혁을 할 것이라 희망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진작부터 투명성과 재벌개혁을 외쳐온 시민단체와 일단의 학계, 민간연구소도 주가에 대한 관심은 덜하지만 이와 일맥상통하는 논리를 개발해 왔다.이에 반해 정작 거론되는 해당 기업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에 주가나 신용등급에서 덕을 본 경우도 발견되며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시장을 바꾸려 이 같은 주장을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정하고 있어 지배구조가 주가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의 옳고 그름은 추후에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주주가 재벌 계열에서 외국인으로 바뀐 후 변화를 겪었던 에쓰오일이나 한국전기초자의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주장에 근거로 사용됨과 동시에 한국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향후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를 추측하게 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로 대변되는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의 유용성을 주장하거나 외국인투자가들의 지적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 앤디 셰이가 말한 것처럼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일 뿐’인지, 아니면 오히려 주가를 받쳐주고 국부를 최대화하는 적합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