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실패사례 타산지석 삼고, 총제작비 급증 막아야

올해 영화시장에서는 연일 대작영화(일명 블록버스터)가 개봉되고 있고, 비수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관객유인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영화시장 성장의 주요 동인은 삶의 질 추구의 레저문화, 멀티플렉스 개관을 통한 대기수요 흡수, 주5일 근무제 등 사회적 환경변화,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 등이다.올해 영화시장은 공급주도시장이라 할 수 있다. 수요 기반이 튼튼해 공급 측면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영화만 제공될 경우 유효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연간 관객수가 1억명을 넘은 상황에서 수요 기반은 나름대로 구축됐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추세는 수요부문이 성숙될 것으로 보이는 2005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5년에 국내 가계 최종소비지출 중 오락문화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수준인 10%선에 도달하고, 2인당 관람회수가 영국, 프랑스 수준인 2.8회에 근접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2005년 이후에는 상황이 다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특히 영화시장 참여자들의 시장경쟁구도, 멀티플렉스의 시장견인력 한계 등을 고려할 경우 2005년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할 전망이다. 또한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 영화시장의 진입 기회를 늘리고 있는 해외 영화사들과의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즉 2005년부터 수요가 한계에 직면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둔화 속에서 경쟁심화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90년대 초 호황을 구가하던 홍콩 영화산업이 현실의 영광에 기댄 채 미래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한 결과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자본이 떠났고 스타배우들도 할리우드 등으로 떠났다. 현재의 영화시장 참여자들은 1~2년의 단기적 호황보다 2005년 이후의 시장성숙을 준비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그렇다면 2005년에 닥칠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영화시장의 개선할 점과 대안은 무엇일까. 우선 전체 영화시장에서 볼 때 시장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 고성장의 과실 중 상당부분이 일부에게 국한돼 돌아간 편이다.멀티플렉스로 대변되는 상영업체들과 일부 대형 배급사들의 영향력은 확대됐지만 아직까지 영세하고 교섭력이 약한 제작사들은 늘어나는 제작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늘어나는 제작비 부담이 제작사들에 전가되는 현 구조에서는 제작사의 리스크는 증대될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제작 공동화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영화라는 것이 창의적 상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제작사들의 입지위축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영화공급의 약화를 초래해 한국 영화시장이 유통시장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총제작비의 급증도 개선돼야 한다. 올해 기준으로 마케팅비의 비중이 순제작비의 40% 수준으로 증가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의 경우 순제작비의 100% 수준으로 마케팅비가 집행되는데 이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이며 한국영화와 같이 아직까지 로컬시장에 국한된 영화에 있어 마케팅비 수준이 40%라는 것은 다소 과하다. 콘텐츠의 질을 위해 집행돼야 할 돈이 마케팅에 상당부분 유입되는 것이다.이는 결국 마케팅비를 충당할 수 있는 대작영화 위주로 영화시장이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흥행상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리스크를 감당할 만한 수준의 제작비를 투자할 만한 여력이 있는 제작사가 현재 국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이를 위해 제작ㆍ투자부문의 대형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사의 시스템과 비슷한 구조인데 대형 제작사가 일정 비율로 영화를 자체제작하는 동시에 외주 제작사의 작품을 배급하는 구조이다. 물론 희망은 있다.최근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미디어플렉스 등 일부 영화사들의 대형화는 이러한 산업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은 기존 극장 상영에서 벗어나 CATV, 비디오, DVD, VOD, 해외수출 등 다양한 채널의 유통망으로 영화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영화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또한 이들은 과거 영화산업의 주요 자금원이었던 금융자본이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장기 투자 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편 산업화로 인한 지나친 상업성 부각의 부작용을 감안할 경우 가장 이상적인 구도는 대형 영화사 2~3개, 중형 영화사 4~5개, 전문영화사 다수 등으로 세분화된 구도라 판단한다. 이럴 경우 일명 ‘충무로 사이클’이라는 영화시장의 주기를 견딜 수 있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작품이 공급될 수 있을 것이다.이와 더불어 영화인들에 대한 처우개선도 중요하다. 영화는 창의력이 상품가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상품보다도 인력의 중요성이 크지만 현실은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일부 스타급 배우, 감독들의 개런티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데 반해 이들을 지원하는 스태프의 근무여건은 아직까지 열악한 편이다.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영화인들을 발굴, 양성하기 위해 등용문의 확대, 체계적인 교육시설과 현실적인 보수체제 등이 필요하다.‘주마가편’이라 했다. 영화인들이 현재의 호황에 안주하기보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