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엔지니어링의 박명선사장은 요즘 모스크바에 자주 간다. 올들어 벌써 3번째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서 관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모스크바근교에 있는 무치시인스티튜트로 곧장 향해서다. 무치시인스티튜트는 구소련시절부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필터 전문연구소. 오폐수정화장치를 생산하는 환경설비업체를 경영하는 그가 이곳을 계속 찾는 이유는 오수를 맑은물로 처리해낼 수 있는 한외여과막인 슈퍼멤브레인제조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곳에 도착하면 기술에 대한 조사 및 토의를 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이미 스위스의 메토바우사와 기술제휴로멤브레인디퓨저를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세계최고의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박사장의 의지가 그를 이렇게 부지런하게 만들고 있다. 청우엔지니어링은 이미 김포에 약 5천평의 공장에서 오수정화장치인슈퍼탱크를 첨단컴퓨터시스템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이 슈퍼탱크는 오수를 생화학적으로 처리, 5ppm이하의 맑은 물로 걸러내는 플랜트다. 이 처리장치는 한번 설치하면 20년간 보수없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세계에서 인정받아환경설비업체로서는 드물게 싱가포르 러시아 등으로 대규모수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기술을개발하기 위해 또 며칠뒤에는 혹독하게 추운 러시아 민스크에 있는한 연구소를 찾아나설 참이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기술개발을 앞세우긴 하지만 실제 경영내부에서는 자금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데비해 박사장은 실질적으로 기술개발을 경영에 최우선으로 삼는다.왜 그럴까. 물론 그가 기계공학과를 나와 기술분야에 밝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지난 79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한가지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기업이란 돈으로 뭉치기보다는 신의와 기술로 뭉치는 것이 튼튼하기 때문 이라고 밝힌다. 기업이란 돈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것이다. 박사장이야말로 맨손으로 시작해 청우엔지니어링을 국제적인환경업체로 끌어올렸다. 따라서 창업초기엔 박사장만큼 돈에 시달린 기업인도 드물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와 기술이 있는 곳엔 돈은저절로 따라 온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기업을 시작한 과정을 보면 그의 신념이 옳은 것같기도 하다. 지난 79년 박사장은비장한 마음으로 사우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하기힘든 첫사업을 사우디에서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의 호주머니엔 단돈 1천달러밖에 없었다. 그 돈으로는 숙소를 얻고 한달정도 생활하기도 빡빡했다. 박사장이 믿을 것이라곤 삼환기업에서5년간 사우디근무를 한 경험이 전부였다. 이 곳에서 냉난방 공조설비 및 위생 소화 전기설비등 부닥치는 대로 무슨일이든 하겠다고마음먹었다. 그는 알코바란 도시에서 일제 중고혼다트럭을 한대 사서 영업을 시작했다. 이 트럭은 설비운송수단을 겸한 그의 첫사무실이자 숙소가 되기도 했다. 박사장이 이곳에서 건축설비사업을 시작하자 마침 현대건설 담만현장에서 폭동이 일어난 후라 인력을 구할 길이 없었다. 더욱이 사우디정부는 당시 한국인에 대해 오픈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한국인 기술자를 구할 길이 없어진 것이다.이때 그는 색다른 지혜를 짜낸다. 사우디에서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조기퇴근을 하는 것을 알아내고 이들을 설득하면저녁에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판단은 맞았다.네델란드기업인 발라스트네담사는 5백여명의 한국인이 근무하는데오후 4시 30분이면 퇴근했다. 이들중 몇사람과 5시에서 10시까지일했다. 이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니 그의 근무시간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매일 4시간정도만 잠을 자고 끊임없이 일했다. 작은 공사라도 발주자에게 신의를 지켰다. 설계 재료사용 시공을 꼼꼼히 챙겼다. 공조설비 등에 조그마한 틈이 생겨 발주자가불만을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전히 다시 시공해 주었다. 3개월이지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자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건축업자들이 큰규모의 공사용역을 주기시작했다. 특히 알코바 시내에 있는 전기도매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전기도매상은 박사장이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실천력이 강한 점에 매료되어알코바의 공사용역을 알선해 주는가 하면 자기집으로 초청하기도했다. 3개월간의 비자기간이 지나 불법체류중인데다 저녁이면 알암코의 영어방송을 듣는 것이 오직 낙인 그에게 저녁초대는 참으로반가운 것이었다. 그는 사우디인들과 친하기 위해 음식도 아랍식으로 맨손으로 먹고 양고기 새우요리 등을 맛있게 먹었다.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이런 먼나라에 와서도 철저히신용을지키면 사업을 잘해 나갈 수가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제그는 서울로 돌아가 이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기업은 자아실현의 장82년 4월 서울 강남구청앞에 사무실을 차리고 오수정화조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사업자금은 사우디에서 번 돈과 잠실 32평 아파트를송파 22평으로 옮겨 줄인 차액으로 조성했다. 첫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가족회의를 열어 사업을 하다보면 잘안될 수도 있는데 이경우 집도 절도 없이 나가 앉을 수도 있으니 그럴 때라도 서로 이해하며 힘을 합치자고 다짐했다. 어머니와 부인 누이까지 그의 단호한 태도에 응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첫 사업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작하고 반년이 지나도록 그는 단한건의 공사도 따내지 못했다. 직원들의 월급날이 어찌나 빨리다가 오던지라며 당시를회고 한다. 매일 건설회사의 문전을 찾아다녔지만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된 채 빈손으로 되돌아왔다는 것. 드디어 6개월을 넘어서자처가 친구 등으로부터 더이상 돈을 끌어대는 것도 한계점에 이르렀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을 하려해도 일거리가 없어 허탈하기만 했다. 역시 사업은 큰 돈으로 밀어붙여야 되는 것이구나라며 이제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려는 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삼환기업에 다닐때 신용을 쌓아 두었던 김영정설계사무소를 찾아갔다. 마침 박사장은 동신주택의 월계아파트공사에 오수처리설비를 발주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동신주택 발주담당이사를 처음 찾아갔을 때 그는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수주 실적이 없으니 발주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담당이사에게 공사를 따낼 만한 자격은 갖추지 못했으나 만약 발주를 해준다면 성의를 다해 시공하겠다며 솔직하게 대면했다. 자신의 설계실력도 차분히 설명했다. 이로부터 일주일뒤 동신주택으로부터 계약을 맺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서는 믿기지 않았다. 반년만에 얻어낸 첫공사였다. 박사장은 이날의 기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공사를 꼼꼼히 처리해주면서부터 업계에서 청우엔지니어링의 기술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공사마다 사우디에서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다 지키면서 성실히시공했다. 이어 박사장은 롯데월드에 하루 3천8백t을 생산할 수있는 오수처리설비를 수주받으면서 중견설비업체로 성장했다. 결국그의 신념은 맞아 떨어졌다. 기업은 돈으로 뭉치는 것이 아니라 신의와 기술로 뭉쳐져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것이다. 오늘도 박사장은 오전에는 김포공장에 들러 오수를 5ppm이하의 맑은 물로 정수하는 슈퍼탱크를 만드는 생산직 사원들과 땀을 흘리고 오후에는 3백50평에 이르는 사내연구소에 들러 개발중인 기술에 대해토론하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