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에 터키를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은 1백43만명에 달한다. 매일 4천명이 터키로 관광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소련연방 붕괴후 어려운 러시아의 현실에 비추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통계다. 터키와 가장 밀접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 관광객이 하루 3천명을 넘지 못하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이러한 의문은 이스탄불의 랄렐리(LALELI) 시장을 가보면 쉽게 풀린다. 이스탄불대학 건너편에 자리잡은 재래시장인 랄렐리 시장은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이태원의 중간적 성격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섬유의류 가죽의류 가방 청바지 액세서리 신발 모자 등 각종상점이 널려 있고 새로 단장한 호텔들의 간판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백인 여인들은 분명 터키인은 아니다. 이들은하나같이 짐보따리를 들고 있다. 이들의 억양에서 러시아인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친절한 터키인들은 이들을 끌다시피 상점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대부분의 시장 상인들에게 간단한 러시아 인사말과셈은 필수이다. 간혹 러시아어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도 보인다.우리나라 장급 여관 정도인 이크발 호텔 관계자에 의하면 매일50명내지 100명의 러시아 상인들이 이 호텔에 머문다고 한다. 로비에 들어서니 한쪽에 이들의 짐보따리가 수북이 쌓여 통행이 어려울지경이다. 다른 한쪽에는 의자가 모자라 서있는 사람이 더 많다.이러한 호텔이 시장내에 20개가 넘는다고 한다.이들은 대부분 1박을 하면서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사모은다. 이들이 구입하는 물건은 직물 의류 가죽자켓 진바지 신발 가방에서 화장용솔 화장품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사들이는금액은 적게는 5천달러 내외에서 3~5만달러까지 이른다는 것이 시장상인들의 설명이다.이들은 버스편을 이용하여 육로로 돌아가거나 흑해연안에서 배로건너기도 한다. 최근에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랄렐리 시장 곳곳에는 대형 전세버스에서 짐을 부리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 출발시간이면 대합실밖까지 수하물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터키-러시아간 항공편은 주30회가 넘는다. 매일 1회 페리보트가 러시아로 떠난다.◆ 섬유, 한국 남대문시장서 직접 구입키도러시아 보따리 장수들에게 이스탄불 랄렐리 시장은 가장 인기가 높다. 상품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다양하다. 공항도 가깝고 흑해도 가깝고 육로 국경도 가깝다. 러시아 개방 초기인 92년경에는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이 거리상 이점으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메나타샤?로 불리는 러시아 젊은 여인들의 진출과 함께 터키 남자들의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93년 중반부터 이들의입국자체를 트라브존 행정당국이 규제하면서 삼순지역이 새롭게 부상했다. 삼순은 러시아의 크림, 소치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반정도거리에 있고 하루 왕복 10회이상의 항공편이 운항중이다. 이 지역은 식품류(채소 감자 토마토 양파 등)를 조달하려는 상인들이 주로몰리는 곳이다.최근에는 흑해연안 중심에서 벗어나 멀리 터키 남부의 지중해 연안까지 발길을 넓히고 있다. 남부 중심지 안탈리아 시데 케메르등지는 1천3백개 이상의 가죽의류 제조 및 무역업체가 집중되어 있는5백년 역사의 섬유 피혁산지다.다소 값이 싸고 다양한 가죽제품을 구하려는 상인들이 이곳을 직접방문한다. 가죽제품 제조업체의 후세언 아칼리오글루 사장은 그동안 독일 프랑스 등 EU 국가의 바이어가 주요 고객이었으나 최근 들어 러시아 상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어 이지역 가죽제품의 절반정도는 러시아 상인들이 가져간다고 한다.이들 러시아 상인들이 터키로부터 수입하는 금액에 대해 이스탄불상공회의 조사연구부 아르주 아이딘씨는 약 1백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KOTRA 이스탄불무역관 관계자에 의하여 93년에 25억 내지 30억달러에서 94년 40∼50억달러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며 95년에는 적어도 80억달러는 될 것이라고 밝히고있다.91년말 구소련 붕괴로 러시아가 극심한 생필품 구입난에 직면하자92년에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생필품 수입에 대하여 1년간 수입 관세면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활성화됐으나 95년을 고비로 상승세가주춤해질까 시장상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미그로스 등 터키 기업들이 러시아에 직접 진출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가전업체들도 직접 진출하고 있다. 러시아 보따리 장수들도 수입관세 없는 두바이에서직접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섬유의 경우 한국의 남대문 시장을 직접 방문하여 구입하는 상인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터키·러시아간 투자보장협정등 논의 활발터키 정부는 이러한 형태의 무역을 장려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구소련 붕괴 다음 해인 1992년에 러시아 루마니아 등 11개국을포함한 흑해경제협의회를 결성하여 사무국을 이스탄불에 두고 있다. 이를 매개로 방문비자 간소화, 육로국경 초소 신설, 흑해 순항항로 개발, 흑해무역개발은행 창설등을 추진중이다. 최근에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는 터키와 러시아간에 실무협의회가 열려서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터키 기업들도 대러시아 진출을 가시화 시키고 있다. 이들과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한 흑해연안국 박람회가 열리고 터키 섬유업체들의 대 러시아 투자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유통업체의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과 함께 러시아의 중산층을 상대로한 저가품 공급기지로서 한몫을 해온 터키가 공급기지를 러시아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투자자의 유치가 필요한 모스크바 시정부 식료품관리국도 외국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보따리 무역을 측면 지원하면서 제도화된 무역으로 끌어 들이려는터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터키 기업들의 진출노력이 우리 정부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