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이후 SK와 중국 배터리 물량 늘린 현대차
책임 소재 따지던 LG “리콜 비용 70% 부담”

[비즈니스 포커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구광모 LG 회장이 2020년 6월 22일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LG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구광모 LG 회장이 2020년 6월 22일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LG 제공
현대차의 주력 전기차 모델이었던 ‘코나 일렉트릭(EV)’이 국내외에서 화재 소식이 잇따르면서 끈끈한 협력 관계를 이어 오던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사업 부문)의 관계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현대차의 전기차 모델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로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명가’의 자존심에 흠집을 입게 됐다.

현대차도 난감한 상황이다. 2021년을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전기차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첫 모델인 아이오닉5를 출시하며 전기차 시장 주도권 선점에 나섰는데 코나EV 화재로 품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발목을 잡히게 됐기 때문이다. 화재 이후 현대차가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사의 배터리를 대거 채택하면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동맹 관계에 금이 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월 23일 대구에서 충전 중이던 코나 EV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월 23일 대구에서 충전 중이던 코나 EV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LG, IPO 앞두고 ‘리콜 충당금’ 감수 왜?
코나EV 등 화재 원인 조사에 나선 국토교통부는 2월 24일 “LG에너지솔루션 중국 난징공장에서 초기(2017년 9월~2019년 7월)에 생산된 고전압 배터리 일부에서 셀 제조 불량(음극 탭 접힘)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며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BSA)을 모두 교체하는 시정 조치(리콜)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를 통해 고객 안전을 위해 배터리 불량으로 화재 발생 우려가 있는 차량 총 8만1701대를 전 세계에서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코나EV와 아이오닉 전기차 등 총 2만6799대가 리콜 대상이다. 리콜 비용은 3 대 7(현대차 30%, LG에너지솔루션 70%)로 최종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사는 3월 4일 리콜 비용에 대한 최종 합의 내용을 2020년 4분기 실적에 반영했다. 현대차는 이날 실적 수정 공시를 통해 코나EV 리콜 충당금 3866억3400만원을 지난해 영업이익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7813억원에서 2조3947억원으로 줄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도 지난해 영업이익을 6736억원에서 1186억원으로 수정한다고 공시했다. 약 5550억원이 리콜 비용으로 빠지면서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은 화재 원인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3월 4일 현대차와 리콜 비용 분담 비율을 3 대 7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자사의 책임을 70% 인정한 셈이 됐다. 당초 리콜 비용이 약 1조원 규모로 추산되면서 리콜 비용 분담률을 두고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의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명확한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토부 조사 발표 직후 성명문을 내고 “리콜의 사유로 언급된 배터리 셀 내부 정렬 불량(음극 탭 접힘)은 국토부의 발표대로 재현 실험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배터리 셀 불량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오작동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양 사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법정 분쟁까지 벌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리콜 비용을 분담하게 되면 향후 글로벌 배터리 수주전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올해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데 대규모 리콜 충당금을 쌓게 되면 적정 기업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를 감수하고 이번 리콜 건에서 현대차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된 이유는 결국 현대차와의 동맹 관계 유지와 불확실성 해소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판매량으로 글로벌 4위 업체인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의 중요한 고객사 중 하나다.
‘20년 동맹’ 현대차 3차 수주전에서 고배
최근 현대차가 2023년 이후 출시하는 전기차 플랫폼 E-GMP 3차 물량의 배터리 공급사로 중국의 CATL과 SK이노베이션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동맹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코나EV 화재 이후 공교롭게도 현대차가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사인 중국 CATL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물량을 늘리고 있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CATL이 총 9조원대로 추정되는 3차 물량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중국 업체의 ‘K배터리’ 추격에 대한 우려도 상당한 실정이다.

물론 현대차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중국산 배터리 물량을 늘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 회사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또한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납품사를 복수로 선정해 공급사 다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현대차에 더 유리하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동맹 관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3차 물량 발주에서 빠진 아이오닉7의 배터리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합작법인(JV)에서 생산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이오닉7이 3차 물량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3차 물량 수주전에서 빠지면서 현대차가 LG에너지솔루션을 염두에 두고 제외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와 LG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업은 20년간 이어지고 있다. 2002년부터 하이브리드차에 사용되고 있던 니켈수소전지를 대체하기 위해 2차전지인 리튬폴리머전지를 공동 개발해 왔다. 전기차 시장이 만개하기 전인 2010년부터 이미 배터리 관련 합작사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51%, LG화학이 49%를 출자해 설립한 ‘HL그린파워’ 얘기다. HL그린파워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팩을 만들어 현대모비스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 리콜이 결정된 코나EV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셀)→현대모비스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인 HL그린파워(배터리팩)→현대케피코(BMS 시스템)→현대모비스(배터리 모듈)→현대차(최종 조립) 등의 단계를 거친다. 2020년 6월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LG화학 오창공장에서 구광모 LG 회장과 전격 회동해 장수명 배터리, 리튬-황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배터리 개발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오랜 시간 협력해 온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에는 미래 먹거리인 배터리 리스(대여) 사업 협약을 맺는 등 사업 협력을 이어 가는 모습”이라며 “리콜 이슈가 문제가 됐다면 다른 프로젝트도 보류되거나 영향을 받았을 텐데 협력 관계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