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이 쌍용제지를 P&G에 팔고… 삼성중공업은 중장비 사업부문을 볼보에 넘기고… 두산의 음료공장은 코카콜라에 팔리고… 현대전자는 미국내 반도체 자회사인 심비오스로직을 현지업체에 매각하고….작년말부터 한국기업들이 하나 둘씩 외국기업에 팔려 나가고 있다.올 들어선 그 빈도가 더욱 늘었다. 한국기업의 해외 매각이 러시를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3~4년간 한국기업들이 세계화의 기치아래 너도 나도 밖에 나가 왕성한 식욕으로 유럽이나 미국 기업들을 사들이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이유는 뻔하다. IMF한파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국내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계열사 등을 M&A시장에 내놓고 있다. 한데 이들 매물을 살여력이 있는 국내기업은 거의 없다. 돈 줄이 말라 붙어 있기는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외국기업 뿐이다. 게다가 외국인 입장에서 지금 한국기업은 헐값이다. 원화가치 주가 부동산 가격이 모두 떨어져 있어서다. 실제로 코카콜라 지분 15% 정도 돈이면 한국의 상장사 7백76개 기업의 주식 모두를 살수 있다는 분석도있다. 정부도 기업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외국인의 한국기업 인수문턱을 대폭 낮춰 놓았다. 때문에 한국기업 M&A 시장에서 외국기업의 「쇼핑」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코카콜라 지분 15%면 상장사 모두 매입지난해 11월 이후 시작된 한국기업 바겐세일은 물론 아직까진 개장단계다. 기업 전체가 통째로 외국기업에 팔린 건 쌍용제지 정도다.나머지는 일부 공장의 자산을 외국사에 매각하거나 합작기업의 지분을 합작파트너에 넘기는 등 상대적으로 손쉬운 형태의 거래들이대부분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한국기업의 해외매각 사례를 보면 크게 3가지가 주류다.첫째 국내 공장이나 사업부문을 자산매각방식으로 외국사에 파는것. 삼성중공업이 굴삭기 등 일부 중장비사업과 지게차 사업을 각각 스웨덴의 볼보와 미국 클라크사에 팔기로 한 것이나 고합그룹이울산의 필름공장 2개 라인을 독일의 유러피언 멀티미디어에 1천9백억원을 받고 매각한 것 등이 그런 류다.둘째 합작기업의 지분을 외국기업에 넘기는 케이스도 많다. 한화그룹은 한화NSK와 한화바스프우레탄의 한국측 지분 50%를 각각 일본의 NSK와 독일 바스프사에 팔았다. 한라그룹도 독일 보쉬사와 50대50 합작으로 설립한 (주)캄코의 지분 50%를 보쉬에 매각했다. 코오롱도 한국화낙의 지분(36.4%)를 일본 화낙사에, 동양화학공업은 동우반도체약품 지분 50%를 합작사인 일본 스미토모화학에 각각 넘겼다.마지막으로 해외에서 인수한 회사나 자산을 다시 외국기업에 파는형태도 유행이다. 현대전자가 지난 2월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있는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심비오스로직을 현지 컴퓨터 부품업체인어댑텍에 매각한 게 대표적이다.지난 95년 2월 미국 AT&T사 비메모리 사업부문을 3억4천만달러에인수해 설립한 심비오스를 현대는 이번에 7억7천5백만달러에 넘겨상당한 매매 차익을 남겼다. 그 이전에 삼성전자는 화합물반도체업체인 미국의 SMS사를 와트킨스존슨사에 1천만달러를 받고 팔았으며서통도 미국의 공업용 테이프업체인 ATG를 캐나다에 본사를 둔 IPG에 4천만달러에 매각했다. 이밖에 쌍용 한라그룹 등도 미국에 있는호텔 등 부동산을 자구노력 차원에서 현지 업체에 잇달아 팔았다.한국기업들이 줄줄이 외국기업에 팔려나가는 바겐세일의 본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당장은 손쉬운 합작회사 지분이나 해외 법인을팔았지만 지금부터는 한국내 알짜배기 회사들도 시장에서 거래될게 분명하다. 기업들 스스로 손발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서다. 그래서 요즘 바빠진 곳이 한국기업의 해외매각을 중개하는 M&A전문중개사나 로펌회계법인 등이다. 이들 회사엔 이미 상당한 규모의 한국기업들이매물로 나와 있다. 그중엔 30대 그룹 계열사는 물론 건실한 중견기업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 IMF시대를 맞아한국기업 바겐세일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치밀한 전략 세워 제값 받고 팔아야문제는 팔 때 팔더라도 제값을 받고 파는 것. 현재 한국기업 바겐세일에서 아쉬운 쪽은 우리다. 그런만큼 사는 쪽인 외국기업들은배짱을 부릴 수 있다. 말하자면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아니라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 이란 얘기다. 때문에 자칫하다간 국내 산업기반을 형편없는 푼돈에 넘겨주는 비극이 발생할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 바겐세일에도 보다 치밀한 「마케팅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지피지기(知彼知己)가 M&A전략에선 필수라는 것.『외국기업들은 한국기업을 단순히 싼 맛에 사는 게 아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산다. 특히 한국기업은 인력이나 기술 수준등 펀더멘탈이 좋아 동남아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 매력적이다. 외국인들은 그런 한국기업을 인수해 중국이나 동아시아에 대한 진출교두보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이용한다면 국내기업을 팔 때 보다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다.』(윤영각 삼정M&A파이낸스 대표) 따라서 외국 바이어로 어떤 기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파는 기업의 가격도 천차만별로 매겨진다는 것. M&A야말로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매기는 작업인만큼 기업을 시장에 내놓을 때 최대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를 하는 게 긴요하다는 말이다.어쨌든 한국기업 M&A시장에 좌판은 벌어졌고 바겐세일 전단도 뿌려졌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바어어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이미 여기저기선 값을 부르고 깎고 하는 흥정도 한창이다. 조만간 거래 성사를 알리는 뉴스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팔려나가는 기업들중엔꽤 귀에 익은 대기업들도 포함될 수 있다. 그 거래에서 과연 누가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