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염료제조업자였던 펠릭스 호프만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원소들을 혼합,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신물질은 바로 아스피린이었다. 호프만은 신물질을 바이엘로 넘겼고 이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 제약회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아스피린이 발견된 이후 주식투자자들이나 환자들은 과학자들을20세기의 연금술사로 대접했다. 고대 연금술사들이 구리처럼 별볼일없는 금속을 이용해 값비싼 황금을 만들려고 한 반면 현대의 과학자들은 소량의 화학물질을 합성해냈지만 효과는 똑같았다.금의 가격은 1g당 10달러에 불과하다. 제넨테크가 만들어낸 인간성장호르몬은 1g당 2만달러를 상회한다.물론 인간성장호르몬은 일년이 가도록 1g도 다 못쓰는 특별한 약품이기는 하다. 그러나 머크가만들어낸 항에이즈제제인 크릭시반 같은 경우도 1g당 5달러나 되니까 의약품을 「황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이러한 현대 연금술사들의 활약으로 제약산업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중의 하나로 발돋움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글락소 웰컴과 스미스 클라인 비참이 예정대로 통합한다면 새로운 회사는 GE에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가 된다.제약전문 컨설팅업체인 배리제임스에 따르면 전세계 의약품 판매량은 1년에 3천억달러에 달한다. 제약산업은 수익성도 매우 높은게장점이다. 게다가 대부분 특허권으로 무장된 독점 생산 기업들이많아 시장지배력도 강한 편이다. 96년 기준으로 세계의 상위 10대제약회사들의 평균이익률은 30%에 달했을 정도다.그러나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직면해 있다. 생명공학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시장구조의 변화는 세계 제약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신약 개발 과정 전문화우선 미국의 경우 최대의 의약품 구매집단인 정부와 건강관리기구는 제약회사들에 약값을 인하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또 불법적으로 특허기술을 훔쳐 해적약품을 만들어 내거나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약효를 가진 유사제품(Me-too Product)을 만들어내는 경쟁사들도 늘어나고 있다.생명공학 등 제약산업의 양적 분화외에 병을 사전에 진단하고 처방하는 신기술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제약산업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하나의 신물질이 세계적인 신약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해 성공하겠다는 모든 과학자들의 꿈을 제약업계에서는 파이프드림(PipeDream)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신약개발과정이 입구는 넓지만 출구는 아주 좁은 깔데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그림1 참조 designtimesp=7747>전통적인 신약개발과정은 우선 약품의 기초원료가 되는 화합물들을광범위하게 훑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통해 신물질을 찾아내더라도 대개는 자연계에서는 보존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많아이를 보정해주는 작업이 다음 단계가 된다.이렇게 선행물질(lead compound)이 만들어지면 다음은 동물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생명체에 얼마나 잘 흡수되는지, 독성은 없는지 등 기본적인 특성들을 점검한 후 본격적인 인체실험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난뒤에야신약으로 만들어지고 국가기관 등의 인증을 거쳐 상품으로 팔리는것이다.이러한 신약개발과정을 끝까지 통과하는 신물질은 극히 드물다. 동물실험단계에서 인체실험단계로 넘어오는 약품은 10분의1에 불과할정도다. 또 엄청난 투자비가 소요된다. 평균적으로 신물질 하나가신약개발과정을 모두 통과하는데는 3억달러가 들어간다.신물질이 최종관문을 통과했다고 과학자들이 기뻐할 시간은 별로없다. 신약이 특허권의 보호를 받는 기간은 보통 20년간이다. 문제는 특허권이 발효되는 기간은 신물질을 등록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신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상품화하는데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리므로 그동안 투자한 연구개발비와 수익을 회수하려면 수년만에 승부를 내야하는 것이다. 특허권을 획득한 후 상품화가 늦어질 경우 보통 하루에 1백만달러의 손해가 난다는게 정설이다.결국 제약업체들은 어떻게 광범위한 치료범위를 가진 약품을 개발할 것인가, 어떻게 연구개발비용을 낮출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좀더 오랫동안 특허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정을 빠르게 만들 것인가 등 세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전통적으로 대형 제약회사들은 신약개발과정의 전단계를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제약기술의 발전은 신물질의 연구에서상품화되기까지 신약개발과정의 각 단계별로 특화된 전문기업들을등장시켰고 업계의 분화와 통합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등장, 대형 제약회사들과 경쟁 또는 협력을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의 등장은 제약산업에 있어 규모의 경제효과가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신규 진입장벽도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벤처기업들의 난립은 대형 제약회사에 단기적으론 도움이 될 전망이다. 1~2개의 신물질을 보유한벤처기업들은 신약개발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위험을 견디지 못해 대개는 대형 제약사에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결국 대형제약사들은 싼 가격에 신물질의 공동개발권을 확보할 수 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대형 제작사들이 무서운 호랑이를 키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암젠이나 겐자임 등의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은단순한 연구개발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상품화하고 마케팅하는데까지 손을 됐다. 이들은 비록 머크나 노바티스, 글락소 웰컴 등과 같은 규모는 못돼도 점차 중견제약회사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새로운 제약기술의 발전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첫째는 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약품의 효과가 정확해지면서도 높아지고 있다는점이다. 셋째는 병을 사후에 치료하는 것보다 아예 발병가능성을예측하는 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기술의 발전방향은 제약산업의 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약품으로 치료 가능한 병 많아진다첫번째 사안의 경우 제약회사에는 아주 긍정적이다. 환자들에게 아프다는 것은 곧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수술이나 입원을 하지않고도 단순히 약품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병들이 늘어나면서 제약산업은 새로운 시장기회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게 글락소 웰컴이개발한 위궤양 치료제이다. 이 약품의 개발로 미국내에서만 일년에3백억달러의 수술비용이 절감됐다. 반면 그 돈은 글락소 웰컴으로몰려가 이 회사는 신약개발이후 모두 3천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있었다.두번째 사안은 환자들이 지금까지 남용해왔던 약의 복용을 중단할것이란 점과 정확한 효과의 약품은 더욱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구매할 것이란 점에서 제약업체에는 양면의 칼날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의약품은 아직까지 왜 그러한 약효를 내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세번째, 병의 사후치료보다는 사전예방기능이 더 커져가고 있다는점은 제약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직까지 시장규모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건강진단산업은 21세기의 유망산업으로떠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미 상당수의 제약회사들이 단순히 약을 팔기보다는 종합건강관리서비스업체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슈는 1백10억달러를 투자해 보링거 만하임이라는 건강진단회사를 설립했다. 이회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진단회사이다. 로슈의 라이벌업체인노바티스는 생명공학업체인 카이론과 제휴해 DNA진단법이라는 대체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스미스 클라인 비참은 인사이트사와 조인트벤처를 만들었다.앞으로 대형 제약회사들은 기존의 건강관리업체들과 경쟁 또는 협력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신약개발업체를산하에 거느린 지주회사로 변신하든, 아니면 자사의 마케팅기능에신약개발회사와 건강관리업체의 서비스를 연결시킨 가상기업으로변신하든 이러한 경향은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앞으로 신약개발과정은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국제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와 통계학을 기반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예전처럼 우연하게 신물질을 발견하게 되는 사례는 적어질 것이다. 제약산업의 새로운미래속에서 과학자들은 더 이상 연금술사로 남지 못하는 것이다.최신호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