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광약품이 B형 간염 치료제용 신물질에 대한 상품화권을 미국 제약회사에 거액을 받고 수출함에 따라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에만도 LG 화학과 한미약품이 신약 후보물질과 새로운 제조기술을 해외에 잇달아 수출, 「제약 기술 입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독자 개발 신약 하나도 없다신약 개발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신약을 개발, 상품화에 성공한다면 그 약품 하나만 가지고 매년 1조∼2조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게다가 신약은 특허 보호를 받을수 있기 때문에 거의 15∼20년간 독점적인 이익을 누릴 수 있다.영국 글락소 웰컴의 위궤양 치료제 「잔탁」, 미국 암젠의 빈혈치료제 「에포겐」, 미국 엘리 릴리의 우울증 치료제 「프로잭」 등이 우리 돈으로 환산해 매년 1조원 이상씩을 벌어들이는 대표적인신약들이다. 스웨덴 아스트라의 소화성 궤양 「로섹」의 경우 이약 한 품목이 2000년에는 약 36억달러(5조4천억원: 1달러=1천5백원)의 매출액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약산업은 또 부가가치율이나 매출액이익률이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아 이익 규모도 큰 편이다. 신약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고 있는 국내 제약기업의경우만 봐도 부가가치율(부가가치/매출액)이 37.1%로 제조업 전체의 26.4%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매출액이익율(매출총이익/매출액)도 47.5%로 다른 산업에 비해 2배 이상 높다.(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96년 자료)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런 「21세기 엘도라도 산업」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 있는가. 제약업계에서의 잇단 「수출 낭보」가 우리의귀를 즐겁게 해주긴 하지만 우리 현실과 미래가 마냥 밝고 화사한「장미빛」은 아니다.우선 아직까지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약은 하나도 없다.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외국에 수출했다고 전해지는 신약은 신약이아니라 신약후보물질일 뿐이다. 국내 기업이 제약 관련 기술을 해외에 수출했다고 하는 것은 외국에서 국내 기업이 개발한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상품화 권리를 사 갔다는 의미일뿐이다. 그 물질이 실제로 신약이 돼서 시장에서 팔릴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어떤 신약후보물질이 신약으로 인정받아 판매되기 위해서는 오랜시간과 실험을 거쳐야 한다. 특히 세계적인 신약이 되기 위해서는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 미국 시장에서도 판매될 수 있어야 하는데FDA의 허가를 얻는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어떤 질환에 효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물질 합성에 성공하면일단 전임상을 거쳐야 한다. 전임상이란 약효와 안전성을 검토하는단계로 시험관 실험과 동물 실험으로 이뤄진다. 이 단계가 끝나면FDA의 허가를 얻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에 돌입한다. 임상실험은 1상, 2상, 3상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1상에서는 건강한 지원자에게 약물을 투여, 인체흡수율과 약물의 체내 동태, 안전성 등을 알아보고 용량을 결정한다. 2상에서는 환자 지원자를 대상으로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하고 3상에서는 다수의 환자들에게 약물을 장기 투여하면서 장기 투여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을 검사한다. 임상실험에 성공하면 FDA의 조사가 이뤄지고 별다른 문제점이 없으면 신약으로 허가를 받게 된다.◆ 5∼10%만 신약으로 개발 성공약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실험과정을 거치는데 대략 10∼15년의 기간이 걸린다. 게다가 신약후보물질이 이 모든 단계에서성공, 신약으로 인정받는다는 확신도 없다. 전임상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임상 1, 2, 3상을 거치는 중에 「신약」의 꿈이 좌절되는후보물질이 부지기수다. 미국의 지에 따르면 전임상에 성공한 신약후보물질 중에서5∼10%만이 FDA의 승인을 얻어 최종적으로 신약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신약은 일종의 「도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투자한 돈과 시간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셈이다.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해외에 수출한 신약 후보물질들은 대부분 전임상 성공 직후나 임상 1상 단계에서 해외에 판매된 것들이다. 그물질에 대한 임상실험은 기술을 수입해간 외국 업체가 주도하게 되며 성공한 뒤 상품 판매에 대한 권리도 수입업체에서 갖는다. 만약5∼10%의 가능성을 뚫고 그 물질이 신약으로 인정받는다면 그 물질을 사간 외국 업체는 엄청난 이익을, 국내 업체로서는 엄청난 손해를 본다고 할수 있다.그럼에도 국내 제약업체들이 개발 도중에 신약후보물질을 해외에판매하는 것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김규돈 LG화학 의약품사업부 해외프로젝트팀 부장은 『국내 기업은 임상실험을 수행할만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험에 들어가는비용을 대기도 힘들고 설사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상품을해외 시장에 판매할만한 마케팅력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신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려면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뤄져야 하고 세계시장에 판매하려면 미국 FDA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미국 FDA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공신력있는 미국이나유럽의 제약업체가 임상실험을 수행하는게 더 낫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국에서의 임상실험 결과를 믿지 않는 경향이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국내 업체가 5∼10%의 성공률을 보고 신약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1억∼5억달러의 비용을 쏟아붓기도 힘들다. 외국의 다국적 제약업체는 여러 가지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어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또 국내기업은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할 만한 영업력이나 마케팅 조직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국내 기업 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소규모 벤처기업이나 연구소도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한 후 다국적 제약회사에 판권을 파는 사례는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바이오젠이 개발한 항암제인 알파 인터페론은 미국의 쉐링 플라우가, 카이론이 개발한 B형 간염백신은 미국의머크가 판매하고 있는게 대표적인 예다.◆ 세계적 영업력·마케팅 조직 필요김규돈 LG화학 부장은 『현재로서는 전임상을 마친 신약후보물질이라도 많이 수출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다국적 제약업체와 제휴를 통해 임상실험과 마케팅에 노하우를 쌓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간 삼진제약 연구소장도 『신약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개발비를 못 건지는 경우가 있다』며 『중소기업으로서 경쟁력 있는 분야에 효율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국내 기업이 해외에 신약후보물질을 수출했다고 할 때 알아야할 또한가지는 금액에 대한 부분이다. 기술 수출로 받는 돈은 크게 초기계약금과 마일스톤 페이먼트(Milestone payment), 로열티 등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계약금은 기술 수출 계약 때 받는 돈이고 마일스톤 페이먼트는 개발단계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을 때마다받는 금액이다. 예를 들어 임상 2상에 성공했을 때 얼마, 3상에 성공했을 때 얼마를 받는 식이다. 국내 기업이 기술료로 얼마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마일스톤 페이먼트까지 포함한 금액으로FDA의 허가를 얻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모든 돈을 합한 것이다.로열티란 신약이 시장에 팔려 매출액을 올리게 됐을 때 매출액 대비 몇 %씩 받게 되는 돈이다. 결국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과 「수억달러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할 때 수억달러의 돈을 모두받기 위해서는 그 후보물질이 모든 임상실험에서 성공한 뒤 신약으로 판매돼기까지 5~10여년이 걸린다. 신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되 알을 낳을 확률이 적고 알을 낳기까지의 기간도 상당히 긴셈이다.★ 인터뷰 / 조윤정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최근 신약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약 관련 주식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제약산업 전문 분석가인 교보증권의 조윤정 애널리스트는 『신약을 개발 중에 있는 몇몇 제약회사의 경우 이미IMF 이전 주가를 회복한 것은 물론 계속 추가 상승 중에 있다』고밝혔다. 조 애널리스트는 『제약업체의 매출액이나 수익률 등 기본적인 내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올해 제약주는 탄력적으로 움직이며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 애널리스트가 제약관련 주를 유망하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때문이다.첫째는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 조 애널리스트는 『국내 기업이 신약을 개발한 사례는 없지만 전임상이나 임상단계에 있는 물질들이 꽤 있다』며 『최근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기술을조기에 해외에 수출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트라이앵글에 신약 관련 기술을 수출한 부광약품의 경우 주가가이미 10만원대에 육박하고 있고 유한양행 종근당 삼진제약 등 신약을 개발 중인 제약회사의 주가도 계속 오르는 추세라는 설명이다.제약 관련 주가 유망한 두번째 이유는 M&A(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희망 때문. 조 애널리스트는 『외국 기업의 M&A 가능성이 높은 업종으로 금융 유통과 함께 제약이 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의 적대적 M&A에 대항, 국내 기업끼리의 전략적 제휴나 M&A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 애널리스트는 『외국 기업은국내 제약업체의 생산시설과 영업망, 유통망 등에 관심을 보이고있기 때문에 부도난 제약업체에도 눈길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