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방귀와 하품 외에는 다 쓴다」는 속담이 있다. 뿔은 누가가져가며 똥은 버리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다 쓰임새가 있다.정말이지 하나도 버릴게 없는게 바로 소다.소고기 머천다이저(merchandiser). 상당히 낯설다. 하지만 「하나도 버릴게 없는 소를 출생부터 사망시까지 잘 키워서 좋은 육질의고기를 생산, 공급하는 종합 관리사」쯤으로 이해하면 대충 감을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소 박사고, 조금 문자를써서 말하면 상품으로서 소고기의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하는 직업이라고 할수 있을게다.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주)한국물류 축산사업팀의 허성규 구매과장(38)은 사회에 나온 이래 지금껏 소와 함께 살고 있는 소고기 머천다이저다. 학교 전공(건국대 축산과)도 소와 관련된 것이니 20년가까이 소를 대해온 셈이 된다. 지금은 모 대기업의 계열사로서 시중 유명 대형백화점에 소고기를 납품하고 있으며 국내에 냉동육 아닌 냉장육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그는 소 모습만 봐도 고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한눈에 알고, 잘려진고기 토막만 놓고도 어느 부위에 있는 어느 정도 육질의 고기인지를 단번에 안다.(허과장은 그 정도는 자랑할 것도 못된다고 겸손해했다.) 소의 맛은 생김새와 비례한다. 목이 짧고 다리가 짧은 소는맛이 안나는 반면 등이 잘 발달되고 뱃가죽이 기름지며 사육시 몇가지 주문사항을 잘 맞춘 소는 영락없이 좋은 고기라고 말한다.머천다이저는 바이어(buyer)와 약간 다르다. 바이어는 단순히 시장에 나온 불특정 고기를 골라내는데 그치지만, 머천다이저는 소의평생을 다룬다. 그의 직업은 어쨌든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고 고기의 질은 성장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므로 연원부터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먹는 것부터 돌보기, 가꾸기, 잡기, 가공하기, 공급하기 등에 이르기까지소에 관한 일체의 확립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그에 따르면 소는 이유기부터 육성기, 비육전기, 비육후기, 마무리기까지 통상 5개 단계 정도로 나뉘어 관리된다. 매 단계마다 사료의 양과 공급비율 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볏짚,풀, 밀기울 등의 조사료와 옥수수, 보리 등 고단백 농후사료를 매성장기 별로 달리 공급해줘야한다. 처음에는 위를 발달시켜야 하는데 그때는 조사료를 많이 줘야하고 그 다음은 골격을 발달시켜야하며 마무리로는 살을 연하면서도 풍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사람을 키우듯 정성이 실리지 않으면 소도 사육가가 원하는대로 자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소들도 정성 쏟으면 주인 알아봐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육성기나 비육전기에서 멈춘다. 특히마무리 단계에서 지방을 살속에 고루 퍼지게 하는게 중요한데 우리농가는 지금까지 이 부분에 아주 취약하다고 한다. 마무리기에는소에게도 스트레스를 덜 줘야한다. 여름에는 마사지도 해주고 샤워도 시켜주는 등 소의 컨디션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시켜야한다. 심지어는 소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곳도 있으며 이런 정도의 정성이 가해지면 소들도 주인을 알아본다. 그래서 주인이 먹이를 갖고 오면 마치 주인 알아보는 개처럼 소들이 주인 근처로 모인다는게 허과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소 사육 프로그램을 구축해 데이터화하는 것은 이미 미국 일본 등 선진권 농가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으며 자신만의 노하우(영업비밀)로 간주, 외부에 유출시키지 않는다.그러나 좋은 고기를 만드는 노력은 이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된다.소의 일생 어느 단계도 고기 질과 무관한 시기는 없다. 무엇보다 고기는 잡고나면 「드립」이라고 하는 핏물이 나오는데이것이 고기맛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냉동을 시키면 이 드립이유출되면서 산화가 빨리 되고 그러면 색상도 가장 좋은 상태인 선홍색에서 암갈색으로 변화한다. 냉동육보다 냉장육이 훨씬 더 맛있고 값이 비싼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드립 관리가 좋은 고기를 만드는 첩경이 된다.좋은 고기를 골라 맛있게 먹는 요령이 없을 리 없다. 가장 좋은 고기는 지방 부분이 작고 하얗게 골고루 잘 분포된 고기다. 이를 서리내린 것같다고해서 상강육이라고 부른다. 이 고기도 가장 맛있게먹는 비결은 도축한 날로부터 0℃ 상태에서 보관해 7일째 되는 날에 먹는거라고 한다. 숙성육이라고 하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다. 반면 안 좋은 고기는 윤기가 없고 고기 사이의 드립이 빠져나가 여기저기 구멍이 보이며 지방 색깔이 하얗지 않은 것들이다.◆ 세계적 수준의 패커 소망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이러한 지식을 축산농가에 보급하는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의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그가 농민들을 찾아다니며 소 관리 방법과 지식 등을 전파하는 이유는 한국 축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도 아울러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산지에서 가급적 많은 농민들을 만나 소 사육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컨설팅도 해준다. 예컨대 좋은 등급을 받으려면 이러이러한 사항을 준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의 노하우도전수한다. 지금껏 재래식 사육방식에만 익숙해있던 농민들이기에그가 전하는 현대적 사육기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바로 허과장이 자신의 직업에 보람을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그의 당면 목표는 오는 2001년 국내 축산시장이 완전 개방되기 전까지 가급적 많은 축산농가에 기술을 지도하는 것이다. 현재는 수입고기의 비중이 60%에서 70% 사이에 있지만 완전 개방되면 수입고기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전근대적 방식의 국내축산기법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자신도 전문가적인 역량을 보강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직업을 통해 일군 실무적 사항외에 사육가라면 반드시 알아야할경제 경영 전산 회계 등의 지식 축적작업에 한창이다.그리고 한 걸음 더나아가서는, 세계적 수준의 패커(Packer·전문축산회사)가 되는게 꿈이다. 패커란 유통회사측이 원하는 사항에 맞춰 사육단계에서 도축 가공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담당하는 대형공급자를 말한다. 허과장의 말에 따르면 소와 관련된 전문지식의결정체다. 그래서 수입산의 공세에도 맞서고 우리 소도 해외에 수출할 수 있게끔 저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