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회고록모두가 알다시피 국졸이 내 학력의 전부이고, 나는 문장가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다.또 평생 일만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새겨질어떤 고귀한 철학을 터득하지도 못했다.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본금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한 분야에서 내가 성공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나는 신념의 바탕 위에 최선을 다한 노력을쏟아부으며 이 「평등하게 주어진 자본금」을 열심히 잘 활용했던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다.나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다. 조부님은 여기서 아버님을 비롯해서 7남매를 두셨는데 아버님이 장손이셨다. 그러나다 같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대였기에 소학교를 졸업하자 아버님은 나를 농부로 키우기 시작했다.그러나 나는 어쨌든 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몇번의 가출을 시도한 끝에 네번째만에 서울로 직행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나는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러다가 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47년현대토건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이어 50년 이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오늘날 현대의 뿌리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건설업에 성공하는 조건은 모험적인 정보, 모험적인 노력, 모험적인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 건설사를 보면 헤아릴 수없는 흥망성쇠가 있었다. 그러나 힘든만큼 성취감도 큰 것이 건설업이다. 나는 그 성취감을 좋아한다.그래서 많은 업종의 회사를 갖게 돼 그룹 명예회장으로 불리고 경제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혼자 내심으로는 어디까지나 건설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건설인이다.기업은 기업가가 확실하고 착실하게 다지고 이끌어서 어떤 정치적변동에도 휘말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종업원 공동의 것이요, 나아가사회와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도 나라도 이제 이 나라의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국제경쟁 시장에서 고군 분투해가며 적응하고 성장, 발전해가는 것을 대견하게 여겨주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할 때이다. 큰 기업을 운영하면서 애국애족하지 않는 기업가는없다.거듭된 정치적 불운으로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른 이 나라 경제는 이제 다시 새로운 각오로 제2의 도약을 향해 달려야 할 때이다. 현재의 제반 여건들이 그리 좋다고는 할수 없으나 모든 것은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체득한 기업인이다.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 나라 경제발전의 제2, 제3의 도약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기업은 절대적으로 현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심어놓은 「현대」의 정신이고 사명이며, 국가발전에 대한 막중한 「현대」의 의무이다.나는 성실과 신용을 좌우명으로 삼고 오로지 일하는 보람 하나로평생을 살았다. 일하는 것 자체가 그저 재미있어 일에 묻혔고 그러다 보니 일과 한몸이 되어 살았다. 좋은 옷이나 음식이나 물건에한눈 팔 겨를도 없이 그저 일이 좋아 일과 함께 살았다. 타고난 일꾼으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오늘의 나일 뿐이다. 일꾼으로서 지금의 나는 아직 늙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에는 늙음이 없다. 최상의 노동자에겐 새로운 일감과 순수한 정열이 있을 뿐이다.● 정주영 지음● 솔/1998/436쪽/9천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