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의 원조는 미국 기업이다. 성과위주의 계약사회인 미국에서연봉제는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연봉제가 80년대에 일본으로도 건너가 일본기업에서도 점차 확산되고있는 추세다. 물론 연공서열식 임금체계가 뿌리 깊은 일본기업에서의 연봉제엔 한계가 있다. 미국기업의 연봉제와는 분명히 다르다.미국의 경우 개인주의적 계약문화를 바탕으로 연봉제가 발달했기때문에 일본에 비해 개인간 연봉액의 차이나 변동폭이 크다. 반면일본기업에선 조직문화 자체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 개인별 연봉액의 차이가 크지 않다. 이밖에 연봉산출 방식이나 업적평가 방법 등도 다르다. 어쨌든 미국과 일본 기업의 연봉제 도입과정과 실태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기업의 연봉제가 걸어갈 길을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연봉제일반적으로 미국의 모든 근로자들이 연봉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기업들이 대부분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직무와 직급에 따라 연봉제를 적용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우선 미국의 연봉제를 파악하려면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한국에선 보통 두뇌노동자와 육체노동자 또는 사무관리직과 생산기능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임금지급 형태에 따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나누는게 일반적이다. 통상 블루칼라는 시간급을 받는 근로자를 말하고 화이트칼라는 주급이나 월급을 받는 근로자를 의미한다. 또 직무평가 면에서도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는구별된다. 노동형태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평가방법이나 기준도각각 별개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여기서 연봉제가 적용되는 근로자들이 바로 화이트칼라다. 그중에서도 직무분석과 능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관리직과 전문직들이주로 연봉을 받고 일반 사무직 근로자는 월급제를 적용받는다. 생산직 근로자는 블루칼라로 시간급 형태의 임금을 받는다.이처럼 관리직과 전문직에만 연봉제를 적용하는 이유는 직무내용이복잡하고 직무형태가 어려워 능력과 업적을 시간이나 주·월 단위로 평가하기가 곤란해서다. 반면 생산직은 직무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고 직무분석이 쉬워 단기평가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이직률이 높기때문에 시간급 형태를 취하고 있다.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미국의 노동법은 시간외 수당을 받는 직종과그렇지 않은 직종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1938년 제정된 미국의연방근로기준법은 생산직이나 단순사무직 종사자들은 연장근로에따른 시간외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들은 하루 8시간,주당 40시간을 초과 근무하는 경우 통상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시간외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관리직 전문직 영업사원 중역의 경우는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시간외 수당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바로 이런 기준이 시간급 근로자와 연봉제 근로자를 구분짓는 또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요컨대 시간급 근로자는 사무직과 생산직 구분없이 직장에서 비관리직으로 분류되는 하위직 근로자들이 포함된다. 반면 전문기술직이나 기업의 임원 관리자 감독자 등 고위직의 경우엔 시간급이 아니라 월급제가 적용되는데 이들이 일반적으로 연봉제급 보수를 받는다.미국기업에서 연봉은 고과급(merit system)형태로 산정된다. 고과급은 다른 기업들의 임금수준과 기업 내부의 각 직무간 상대적 가치, 난이도 기여도 등을 종합 평가한 직무평가(job evaluation)를토대로 산출된다. 기업들은 직무별 임금을 기본으로 개인별 고과성적에 따라 임금을 차등 결정하는데 대개 1년에 1~2회 정도 연봉수준을 갱신한다. 실제 연봉이 결정되면 12개월로 똑같이 나눠 매월일정한 날짜에 지급하게 된다.미국기업들이 실시하는 연봉제의 경우 95% 이상이 이런 고과급을활용하고 있다. 고과급은 한번 인상되면 다음에 연봉을 정할 때도기준이 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연봉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특징. 이와는 달리 일시적인 임금인상을 실시하는 개인별 인센티브와개인별 보너스 제도도 이용되고 있다. 또 개인별 고과를 평가하기가 어려운 경우엔 집단의 업적을 평가해 개인의 연봉을 결정하는방식도 있다. 공장별이나 부서별 성과배분제도 및 이익배분제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일본의 연봉제일본 기업중 연봉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는 소니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지난 69년 관리직 사원에 대해 연봉제를 본격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일본에서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로 일본내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의 비율은 지난 83년 5.4%에서 89년 8.7%로 늘었고 90년대 들어선 10%를 넘어선 상태다.일본기업들이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뻔하다. 국제화의 진전, 업무의 다양화, 가치관의 변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 경영환경변화에 직면하면서 종전의 연공급적 임금체계로는 이런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무와 직능을 중시하는 임금결정형태인 연봉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했던 것이다.물론 일본에서도 연봉제를 적용하는 대상은 부장 이상의 고위 관리직과 전문직에 국한돼 있다. 따라서 그 비율은 회사내에서 1~2%에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회사는 하위 관리직인 계장과 과장 등에도 연봉제를 실시했다가 1년만에 이들에 대해선 월급제로 다시 되돌린 사례도 있다. 그만큼 연봉제 도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얘기다.일본기업에서 연봉액은 본인급 업적급 직능급 등 몇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연봉갱신은 본인의 자기신고와 직속상사의 근무평정, 전년도 업적 등을 종합 평가해 연봉 대상자와 경영간부가 협의를 통해결정짓는 것이 보통이다. 지급방법도 미국처럼 연봉을 12등분해 매월 주는 경우도 있고 18등분해 매월 18분의 1씩 지급하고 나머지18분의 6은 상여금으로 나눠 주는 형태도 있다. 또 문화적인 전통때문에 연봉제를 실시하면서도 가족수당 주택수당 등을 별도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본생산성본부가 일본내 3백74개사를대상으로 연봉제 도입실태를 조사한 결과, 연봉제를 실시중인 회사중 순수한 연봉제인 단일 연봉급을 실시하는 기업은 33.3%에 그쳤다. 나머지는 월급과 상여금을 단순 합산한 형태인 복합적 연봉제(33.3%)나 고과에 따라 월급과 상여금을 정하고 이를 합산하는 형태의 변형된 연봉제(20%)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봉 이외에도 조사대상중 86.7%의 기업이 통근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60%는 단신부임 수당을 주고 있다. 이밖에 주택수당(26.7%)식사수당(20%) 가족수당(16.7%) 관리직수당(16.7%) 등 각종 명목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처럼 일본기업들이 연봉제를 실시하면서도 기존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일부 병행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종신고용제처럼 집단과 조직을 중시하는 일본적 고용관행이 워낙 뿌리깊은데다 연봉산출을 위한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고과를 매기는 사람이나 고과를 받는 사람이 모두 정에 치우친동양적 가치관 탓에 능력평가를 냉정하고 엄격히 하는데 한계가있다는 얘기다. 즉 연봉제의 도입과 정착은 기업의 결정 이외에도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영향을 적잖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